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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년 07월 15일
지하철 한 칸의 권력지도
지하철에서 사람들을 관찰해보면 확실히 미디어업계의 동향이 보인다. 예전에 비해 신문을 읽는 사람은 대폭 줄었다. 읽는다고 해도 무료 신문이 많고. 대부분은 mp3를 듣거나, 최근에는 PMP 혹은 DMB 폰으로 동영상을 보는 이들도 늘어났다. 지하철 내 광고 TV를 보는 사람도 꽤 많다. 그리고 연령에 따라서 명확히 갈린다. 신문을 읽고 있는 사람은 대체로 40대 이상의 직장인 남성. 그나마 이 사람들이 일간지도 읽고 경제신문도 읽는다. 30대 이상 여성층의 경우는 주간지 등 잡지를 읽거나 책을 읽는 경우도 많다. 10대들은 거의 엄지족들이다. 매일같이 반복되는 이러한 지하철 한 칸의 모습에서 나는 미래의 권력지도를 본다.
나는 주로 책이나 신문을 읽는다. 그러나 나는 내가 출판물을 읽는 건 자연스럽게 습관적으로 나오는 현상이 아니라, 상당한 노력을 동원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가끔씩 지하철 내 광고방송이 재밌을 때면, 머리 아프게 인쇄된 활자에 집중하는 것보다는, 편안하게 방송을 보면서 시간을 보내고 싶은 유혹을 받는다. 어쩌면 이건 인간 반응인지론상 자연스러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난 기본적으로 인쇄매체 속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사람이고, 출판물을 접할 때의 "피곤함"이야말로, 바로 인쇄매체의 가치라는 것을 안다. 하지만 그런 걸 전혀 모르는 상태에서 백지상태로 았을 때, 과연 이 미디어 환경에서 어떤 태도를 보였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
예전에 초등학생이던 친구 동생을 과외하다가 상당히 문화충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영어단어 모르는 게 나왔길래. 좀 사전을 찾아보라고 했더니 태연하게 휴대폰 사전을 꺼내는 것이다. 과외가 끝나기 무섭게 다시 폰으로 DMB 방송을 본다. 한 집에서 가장 비싼 폰을 쓰는 사람은 그 집 막내라더니. 누가 이렇게 비싼 폰을 사 준 거냐. 방안에 뒹굴며 폰을 보며 희희낙락 거리는 이 아이를 보자니 앞이 깜깜해졌다. DMB 폰이란 언제 어디서든 TV를 볼 수 있다는 의미. 더 이상 TV 사각지대는 없다. 그리고 때로는 TV가 없어서라도 책을 보게 될 기회 역시 없다. 그런 점에서 애초에 책을 보고 살다가 어른이 되서 DMB 폰을 접하는 사람과, 책을 접하기도 전에 DMB 폰을 접하는 사람은 분명 다르다고 본다. 인쇄매체의 가치 자체를 인식하느냐의 문제다.
영국의 10대가 낸 미디어 관련 보고서가 업계에 상당한 파장을 일으키고 있다. 10대들이야 어디나 똑같을 것이기에, 내가 봐도 감탄할 만한 사실적이고 정확한 내용들을 담고 있었다. 아마 향후 미디어 업계들이 비전을 세워 나가는 데 주요한 참고가 될 거다. 그런데 대책이라는 것은 현실을 현실로 인정하고 그 테두리 내에서 이익을 볼 수 있는 전략을 짜야 하는 것인가, 아니면 현실과 별도의 당위를 생각해 당위적 설득을 감행해야 하는 것인가.
英, 10대 작성 보고서, 미디어 업계 반향 (연합뉴스)
이어지는 내용
# by 은하 | 2009/07/15 00:02 | 생각 | 트랙백 | 덧글(11)
2009년 06월 25일
교육개혁 지휘봉 잡은 이 대통령 (연합)
한국의 교육개혁이 매번 실패하는 까닭은 매번 '입시개혁'에만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한국 교육현실의 가장 큰 문제는 단연 과도한 사교육 열풍이다. 한국에서 사교육 열풍은 부동산문제와 더불어 민생경제를 위협하는 대표적 요인으로 지목된다. 학생들의 학업부담이 극심해진다는 점과 더불어. '시험만을 노린 획일적 교육'이라는 면에서도 문제다. 그런데 이와 같은 사교육 열풍의 근본적 원인은 단지 몇몇 대학의 입시제도 때문이 아니다. 소수의 명문대학에 가야만 한다는 목표가 바뀌지 않는 이상 과도한 경쟁은 멈출 수 없다. 이러한 학벌구조를 가만두고 입시개혁에만 치중하는 것은 결국 입시 수단의 '다양화'에 지나지 않다. 정말로 필요한 것은 교육 '목표의 다양화'다.
'곽승준-정두언' 개혁안도 전혀 다르지 않다. 문제의 핵심을 전혀 관통하지 못하는 대책만으로 구성되어 있다. 주된 내용을 살펴보자면 △ 밤 10시 이후 학원 교습 금지 △ 고교 입시 절대평가 전환 △ 외고 입시 내신 폐지 △ 외고 입시 학교장 추천제 폐지 △ 문,이과, 예체능 계열별로 대학 전공에 상관없는 과목의 내신 반영 및 수능 과목 제외 △ 방과 후 학교의 위탁경영 강화 △ 불법과외 포상신고제 등이다. 이 중에서 '밤 10시 이후 학원교습 금지'는 지역에 따라 다르지만 이미 시행되고 있는 정책이다. 인수위 시절 제한 풀려고 하다가 난리가 난 정책이기도 하다. 외고 수요가 높은데, 외고 입시안 개혁은 의미가 없다. 내신과 학교장 추천제가 폐지된다면 외고 독자 시험으로 선발할 수밖에 없고, 내신 사교육보다 훨씬 더 까다로운 외고입시전문 사교육이 성황을 이룰 뿐이다. 당장의 조치가 필요하다면 차라리 외고 인가 취소 및 외고에 유리하지 않는 쪽으로의 대입개혁이 더 낫다.
이번 개혁안은 또한 '사교육 경감'을 목표한다면서 공교육의 '입시지향'적 성격을 도리어 강화시키는 모순을 드러낸다. 내신의 기본 취지는 "성실한 학교생활"에 대한 보상이다. 절대적 지식량만을 평가하고 싶다면 내신보다는 일제고사 쪽이 더 유용할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에서 내신을 반영하게 하는 것은 지식전수 뿐 아니라 노력과 성실함과 같은 인성적 가치 역시 중요한 교육 목표가 돼야 하기 때문이다. 물론 현재의 내신제도가 그 기능을 제대로 수행한다고 볼 수는 없다. 사실 대부분 대입에서 무력화됐지만, 그럼에도 학생들에게 과도한 부담으로 작용하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내신의 취지가 무색해진 근본적 이유 역시 과도한 입시경쟁 때문이다.
그런데 곽승준-정두언 개혁안은 이 모순에 대해, 학벌사회를 손질하는 것이 아니라, 내신을 손질한다. 대학입시와 무관한 공부의 가치를 교육당국 스스로 평가절하함으로써, 부담을 줄여주겠다는 것이다. 이는 역설적으로 학교 현장을 입시전쟁터로 공인하는 결과만 가져올 뿐이다. 일본의 "여유교육" 실패에서 보듯, 학벌구조가 엄연한데, 입시과목을 축소해봤자 대학생 수준만 떨어지지 학업부담이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 10년 전에도 음악, 미술, 가정 등 입시와 무관한 시간, 국영수 자습이 벌어지는 일이 다반사였다. 현실이 그러할지라도 최소한 이것이 문제라는 인식은 하고 있어야 개선의 여지가 있다. 이번 교육안이 위험한 까닭은 바로 이 때문이다. 이 정부는 사교육 경감을 말하면서, 근본적인 문제의식을 부정한다.
이명박 정부가 미워서 하는 짓마다 사사건건 꼬투리 잡으려는 것이 아니다. 어느 정부나 교육문제에 관해서는 골치를 썩였다. 그만큼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건 쉽지 않음은 안다. 그런데 이 정부만의 심각한 문제는 사교육 경감대책을 말하면서, 그와 전혀 반대방향을 향하는 자신들의 교육관을 그대로 두고 있기 때문이다. 국제중을 도입하면서 외고입시로 대체 사교육을 어떻게 잡겠다는 것인가. 결국 사교육 대신 눈에 보이는 사교육 업체를 잡겠다는 것 이상은 할 수 없어 보인다. 변죽만 울리는 개혁은 의도와는 다르게 상황만 더 악화시킬 수 있다. 한 때 교육개혁의 주된 쟁점은 대입제도 개선안이었다. 물론 이는 피상적 해결책이었다. 그런데 이제 피상적 해결책 중에서도 "고입제도"를 논하는 시대다. 이런 시대변화의 원인이 무엇인지부터 생각해봐야만 한다.
고1 어쩌면 마지막 그림 (한겨레 21)
덧
# by 은하 | 2009/06/25 02:24 | 우리시대 | 트랙백 | 덧글(18)
2009년 06월 25일
푸른 하늘을 制壓(제압)하는 노고지리가 自由(자유)로왔다고 부러워하던 어느 詩人(시인)의 말은 修訂(수정)되어야 한다. 自由(자유)를 위해서 飛翔(비상)하여 본 일이 있는 사람이면 알지. 노고지리가 무엇을 보고 노래하는가를 어째서 自由(자유)에는 피의 냄새가 섞여 있는가를 革命(혁명)은 왜 고독한 것인가를 革命(혁명)은 왜 고독해야 하는 것인가를
- 푸른하늘을 / 김수영
이란의 푸른 하늘도 언젠가 꼭 올거다.
# by 은하 | 2009/06/25 01:35 | 우리시대 | 트랙백 | 덧글(6)
2009년 05월 23일
3년 전쯤. 일본어 학원 기초반을 다닐 때 회화 시간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아나타, 다이토오료우가 스키데스까?"(당신 대통령을 좋아합니까?)" 그저 문형연습을 위한 회화 수업일 따름인데, 순간 멈칫했다. 그 때는 한미FTA가 추진되고 있었고, 한국사회는 양극화의 시름에 찌들어가고 있었는데. '하이'라 할까 '이에'라 할까 순간 망설였다. 풋내기의 과잉정치화된 의식도 어느정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 때 '하이'라고 답하지 않아서 이렇게 괜스레 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가 자살했다고 한들 안 놀랄 줄 알았다. 토요일 오전이란걸 핑계삼아 늦잠자다가, 창밖의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하는 소리에 깼다. 이상한 꿈을 꿨나 하고 컴퓨터를 켠 다음 지금 세 시간째 멍한 상태다. 그는 산등성이에서 추락하던 짧은 순간 후회하지 않았을까. 누가 됐건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인데. 누구보다도 욕을 많이 먹었던 사람의 죽음을 보니까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의 실험은 결국 이런 결과로 끝내기 위해서는 분명 아니었을텐데.
한국사회에 적지않은 의미를 안긴 대통령. 한편으로 많은 과제를 수행해내지 못했던 대통령. 그와 관련한 숱한 담론과 평가는 여전히 진행중인데, 이렇게 훌쩍 가 버리면, 어떡하냔말야. 그에 관한 사유는 여기서 종결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남아버렸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한 사람의 자연인을 전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사회가 슬픈 거다. 박종태 열사가 되었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되었건. 하지만 최소한 당신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만큼, 살아남아서 끝까지 당신이 꿈꾼 세상을 계속 지켜보기를 바라는 건 과한 기대였을까.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거의 모두 퇴임 후 영예롭지 않은 모습으로 남았다. 그 고리를 그나마 끊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니, 한국 정치의 안정은 여전히 요원한 거 같다. 민주주의 2.0이라는 유쾌발랄한 실험과 통치자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공존. 이런 나라의 미래는 오롯이 살아남은 자들만의 몫이다. 죽음에 대한 미화와 죽은 자에 대한 무례 사이를 비집고, 그의 공과에 대해 더 힘든 평가를 해야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지만, 충격, 착잡함, 연민 등을 딛어야 할 이유다.
사랑과 미움이 정말 극단적으로 갈렸던 사람이었다. 한국 사회의 어떤 경향이 분명 반영됐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마지막이 그 어떤 경향에 대한 경종을 울렸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는 최소한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거한 노 전 대통령 출생부터 사망까지 (조선일보)
# by 은하 | 2009/05/23 12:24 | 우리시대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7)
2009년 05월 23일
글쓰고자 하는 욕망이 죄다 <교육저널>을 통해서 표출이 되서 그런 거 같아요-_-;;;;;; ...아아니 마감에 시달리다 보니 귀찮아진건가. 아아아
아무튼 교육저널 10호 무사히 나왔습니다. >_<
# by 은하 | 2009/05/23 03:55 | 트랙백 | 덧글(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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