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6년 02월 12일
만화가 이원복 선생의 '만화' 유감
언젠가 어느 시민 단체에서 이문열 소설 화형식을 했던 기억이 난다. 이유는 정확히 생각나지 않는데, 이문열이 보수언론에서 계속 보수성향을 대변하는 글을 썼던데 있을 것이다. 아니 대선기간이던데 이회창 지지 선언해서 그랬던가? 암튼...ㅡㅡ;;(기억력 좋으신 분들의 답변좀...) 거기서 영정 액자에 이문열 소설을 끼워넣고 장례식처럼 행진한다음 불태우는 은근히 섬뜩한 퍼포먼스를 벌였다. 그 때는 잘 몰랐지만 지금 생각해보니 진보 단체라도 조금 심한 처사였다고 생각한다.
이문열 소설이 왜 화형식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문열의 '정치적 성향'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문열의 정치성을 부정하는 방식이 그 동안 그가 썼던 작품들을 불태워버리는(!)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물론 이문열 문학에 정치성이 없잖아 들어있겠지만 '너 위험한 작가! 네 소설 나쁜 작품'의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은, 우파가 좌파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폭력인 것이다. 개인의 다면적인 면에 진정한 평가가 없는 낙인찍기란 매카시즘과 뭐가 다른가.
그런 무렵에 신문에서 (당시 분위기상) 특이한 사람을 봤는데, 이문열의 소설 <아가>(雅歌)를 비평한 평론가였다.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아가>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시선을 못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이 평론가는 문학을 비평할 때에는 근본적으로 '문학이 형상화 된 방식'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 <아가>의 소설적 요소를 들어 이문열을 제.대.로 비판했었다...--;; 사고의 고리타분이 아니라 문체의 진부함, 가부장적 시선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형상화 방법과 서사구조의 개연성..그러나 사실 그 두 가지 카테고리가 분리되어있지 않다. 그러기에 작품의 비평을 통해 충분히 작가가 담은 사상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원복 교수의 만화들을 옛날부터 지금것까지 훑어보면서 그런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내 나이 ± 10살 즘 대한민국에서 이원복 교수 만화 한 권 쯤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워낙 기록적인 히트를 날렸으니..-_-; 좀 더 이원복 마니아였다면, 손글씨로 쓴 <사랑의 학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소련 붕괴 즈음에 나온 <자본주의 공산주의>도 있겠거니와, 최근까지 팬이라면 <부자국민 일등경제>, 철학사상 교양서인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도 한번쯤 봤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먼나라 이웃나라>가 미국편에 한국편2까지 나왔었지..-.-;
그리고 이원복 교수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보수화되는 성향을 실감할 수 있었을것이다. 모 선배가 <먼나라 이웃나라>는 불온서적이라 농담할만큼, 어린이들에게 복지국가의 로망(프랑스편!), 시민적 저항과 평등 가치의 소중함(스위스편!)을 일깨우고, 민족주의를 혐오하며, 학벌사회를 비판하고(영국, 프랑스편), 심지어 제국주의의 제3세계 착취방식까지 잘 가르치고 있다.(스위스편;;;) -참고로 제 건 90년대 1차 개정판-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자본론 해석이 유치했고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공산주의를 도매금쳤을 지라도, 90년대 초 나왔던 어린이(?) 서적중에 '공산주의자는 무조건 나쁜 놈들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한 몇 안 되는 책이었다.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가 나올 만한 모순이 있었고, 사회주의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장한 만큼 우리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감동스러운 결론을 짓고 있었다.(추한 자본주의의 모습이라며 고개숙인 빈민의 얼굴을 그려놓은 게 얼마나 감동스럽던지..ㅠㅠ)
이랬던 사람이 21세기 어느 무렵 <부자국민 일등경제>에 '우리는 국제 경쟁이 극심한 이 시기에 부자나라가 될 것인가, 가난한 나라로 굴러떨어질 것인가', '나라가 잘 살려면 기업우위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등의 내용을 그리고,2002년 대선 즈음에는 서울대 동문회보에 학벌주의 조장하는 만평을 실어 파문을 일으킨데다(서울대 출신이 상고출신에 지면 안 된대나..--), 몇 년째 주간조선에 푸르딩딩한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쯤 되어 나이 들고 책 많이 팔아 돈 많이 벌고 기득권을 차지하면 어쩔 수 없이 보수화 되는 건가보다...싶겠지만, 이 보수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점점 만화가 재미없어진다! 는 쪽인거 같다.
그렇다...이원복 만화가 날이 갈수록 재미없게 느껴진다. 80년대에 나온 <먼나라 이웃나라>나 <사랑의 학교>, <자본주의 공산주의>에서 보이던 정겨운 손글씨를 간만에 보니 만화다운 감칠맛이 정말 색달랐다. 읽기 편하게 하고 수정을 쉽게 하기 위해 <먼나라 이웃나라> 2차 개정판부터는 활자체로 싹 바꾸었다. 그래도 칸 곳곳의 개그 장면들에 손글씨가 남아있었고, 여전히 귀엽고 정감넘치는 그림체에 재치있는 컷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래서 아직도 펠리페2세 하면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 나오는 콧날 날카로운 멋쟁이 아저씨가 생각나고, 칼뱅 하면 과격한 종교개혁 벌이다 프랑스에서 쫓겨나 '지가 월드컵 대표도 아닌데 발길질은..ㅠㅠ' 하고 궁시렁 대던게 생각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편 부터인가 슬금 슬금 색깔을 넣기 시작하더니 오우 이런!!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는 정신사납게 올컬러 판으로 발행했다. 이건 한마디로 오버라고 생각하는데, 총천연 색들이 정신없어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흑백 만화의 소박했던 정감이 도통 안 느껴진 탓이었다. 거기다 날이 갈수록 그림체가 딱딱해진다. 이리저리 설명하는 데 캐릭터의 상황 컷보다 도표가 많아졌고 말주머니보단 부가 설명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거 만화로서 큰 장애 요인이다....-_-;
알고보니 요즘은 이원복 교수가 직접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충 스케치 해 놓으면, 이원복 교수의 제자들이자 덕성여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모임인 '그림떼'에서 새부 펜선, 먹칠, 컬러 입히기까지 다 처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생산 방식에서는 딱 공장만화가이다...ㅠㅠ
어쩌면 보수적 내용이란 것은 이처럼 교수-학생 간의 관계를 이용한 궝위주의적 생산방식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아니 둘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정말 절실한 할 말이 있어 직접 한 장 한 장 그려가며 어린이들과 대화하듯이 그린 만화와 달리, 애초에 대중들에게 뭔가 알려주려는 듯 위압적 지식인의 입장에서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니 만화 치고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고 딱딱해지고...그것을 화려한 컬러로 메꾸려고 하니 힘이 많이 들고, 그러다보니 그림떼를 동원해서 '대형단체작업'에 돌입하고...이러는 동안 만화의 생명력은 자꾸만 떨어져나간다. 이런 식으로 만화 작업 계속하는 동안 삶은 권위주의의 방식으로 더 안착해가는 지도 모르겠다.
이원복의 작품 중 주간조선에 연재한 것을 모은 <현대문명진단>에는 성매매에 관한 굉장히 리버럴한 시각이 드러나는데 이런 식이다. 네덜란드에서 성매매 합법화가 이루어졌고, 퇴근 길 두 남성이 "아 피곤해~" "사우나 갈까 피로회복업소 갈까?"하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원복 교수는 이것을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그려냈겠지만 그걸 보는 여성 입장에서 질려버린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이러한 터무니없는 남성중심적인 시선과 무관심은 그 이전 장에서 과소비, 과잉교육열, 사치 등 온갖 안 좋은 덕목들은 다 여성캐릭터로 그려놓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한다. 물론 이건 무의식이라지만 무의식이 더 무서운거라니까.
고로 이런 공장생산방식의 만화를 그리는 동안 만화가 이원복의 무의식은 자꾸만 권위주의의 깊숙히, 남성중심주의 저 안 쪽으로 뒷걸음질칠 것만 같다. 한 때 이원복 만화라면 다 사서 보았을 정도의 팬이었던 사람의 안타까움..아아 정말 요새 이원복 만화 재미없어졌다..ㅠㅠ
이문열 소설이 왜 화형식을 당했는지 모르겠지만 한 가지 분명한 건 이문열의 '정치적 성향'때문이었다. 하지만 이문열의 정치성을 부정하는 방식이 그 동안 그가 썼던 작품들을 불태워버리는(!)것이 과연 옳은 것일까. 물론 이문열 문학에 정치성이 없잖아 들어있겠지만 '너 위험한 작가! 네 소설 나쁜 작품'의 낙인을 찍어버리는 것은, 우파가 좌파에게도 충분히 가능한 폭력인 것이다. 개인의 다면적인 면에 진정한 평가가 없는 낙인찍기란 매카시즘과 뭐가 다른가.
그런 무렵에 신문에서 (당시 분위기상) 특이한 사람을 봤는데, 이문열의 소설 <아가>(雅歌)를 비평한 평론가였다. 당시 많은 평론가들이 <아가>를 여성에 대한 고정관념과 가부장적 시선을 못 벗어났다고 비판하고 있었다. 이 평론가는 문학을 비평할 때에는 근본적으로 '문학이 형상화 된 방식'을 비판해야 한다고 주장했는데, 그러면서 <아가>의 소설적 요소를 들어 이문열을 제.대.로 비판했었다...--;; 사고의 고리타분이 아니라 문체의 진부함, 가부장적 시선이 아니라 주인공의 성격 형상화 방법과 서사구조의 개연성..그러나 사실 그 두 가지 카테고리가 분리되어있지 않다. 그러기에 작품의 비평을 통해 충분히 작가가 담은 사상을 반박할 수 있는 것이다.
최근 이원복 교수의 만화들을 옛날부터 지금것까지 훑어보면서 그런 생각이 다시 한 번 들었다. 내 나이 ± 10살 즘 대한민국에서 이원복 교수 만화 한 권 쯤 안 본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먼나라 이웃나라>가 워낙 기록적인 히트를 날렸으니..-_-; 좀 더 이원복 마니아였다면, 손글씨로 쓴 <사랑의 학교>를 가지고 있을 것이고, 소련 붕괴 즈음에 나온 <자본주의 공산주의>도 있겠거니와, 최근까지 팬이라면 <부자국민 일등경제>, 철학사상 교양서인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도 한번쯤 봤을 것이다. 그러고보니 <먼나라 이웃나라>가 미국편에 한국편2까지 나왔었지..-.-;
그리고 이원복 교수에게 관심이 있었다면 그의 보수화되는 성향을 실감할 수 있었을것이다. 모 선배가 <먼나라 이웃나라>는 불온서적이라 농담할만큼, 어린이들에게 복지국가의 로망(프랑스편!), 시민적 저항과 평등 가치의 소중함(스위스편!)을 일깨우고, 민족주의를 혐오하며, 학벌사회를 비판하고(영국, 프랑스편), 심지어 제국주의의 제3세계 착취방식까지 잘 가르치고 있다.(스위스편;;;) -참고로 제 건 90년대 1차 개정판- <자본주의 공산주의>는 자본론 해석이 유치했고 스탈린주의에 대한 비판으로 공산주의를 도매금쳤을 지라도, 90년대 초 나왔던 어린이(?) 서적중에 '공산주의자는 무조건 나쁜 놈들이다'라는 명제를 부정한 몇 안 되는 책이었다. "최소한 자본주의 사회는 사회주의가 나올 만한 모순이 있었고, 사회주의권에서 '인간의 얼굴을 한 사회주의'를 주장한 만큼 우리도 '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를 모색해야 한다는 감동스러운 결론을 짓고 있었다.(추한 자본주의의 모습이라며 고개숙인 빈민의 얼굴을 그려놓은 게 얼마나 감동스럽던지..ㅠㅠ)
이랬던 사람이 21세기 어느 무렵 <부자국민 일등경제>에 '우리는 국제 경쟁이 극심한 이 시기에 부자나라가 될 것인가, 가난한 나라로 굴러떨어질 것인가', '나라가 잘 살려면 기업우위의 세상이 되어야 한다' 등의 내용을 그리고,2002년 대선 즈음에는 서울대 동문회보에 학벌주의 조장하는 만평을 실어 파문을 일으킨데다(서울대 출신이 상고출신에 지면 안 된대나..--), 몇 년째 주간조선에 푸르딩딩한 만화를 그리고 있는 것이다.
이 쯤 되어 나이 들고 책 많이 팔아 돈 많이 벌고 기득권을 차지하면 어쩔 수 없이 보수화 되는 건가보다...싶겠지만, 이 보수화의 가장 큰 문제는 아무래도 점점 만화가 재미없어진다! 는 쪽인거 같다.
그렇다...이원복 만화가 날이 갈수록 재미없게 느껴진다. 80년대에 나온 <먼나라 이웃나라>나 <사랑의 학교>, <자본주의 공산주의>에서 보이던 정겨운 손글씨를 간만에 보니 만화다운 감칠맛이 정말 색달랐다. 읽기 편하게 하고 수정을 쉽게 하기 위해 <먼나라 이웃나라> 2차 개정판부터는 활자체로 싹 바꾸었다. 그래도 칸 곳곳의 개그 장면들에 손글씨가 남아있었고, 여전히 귀엽고 정감넘치는 그림체에 재치있는 컷이 잊혀지지가 않는다.(그래서 아직도 펠리페2세 하면 먼나라 이웃나라 영국편에 나오는 콧날 날카로운 멋쟁이 아저씨가 생각나고, 칼뱅 하면 과격한 종교개혁 벌이다 프랑스에서 쫓겨나 '지가 월드컵 대표도 아닌데 발길질은..ㅠㅠ' 하고 궁시렁 대던게 생각나는 것이다...)
그런데 일본편 부터인가 슬금 슬금 색깔을 넣기 시작하더니 오우 이런!! <신의 나라 인간의 나라>는 정신사납게 올컬러 판으로 발행했다. 이건 한마디로 오버라고 생각하는데, 총천연 색들이 정신없어서 유치하다는 생각이 들 뿐 아니라 흑백 만화의 소박했던 정감이 도통 안 느껴진 탓이었다. 거기다 날이 갈수록 그림체가 딱딱해진다. 이리저리 설명하는 데 캐릭터의 상황 컷보다 도표가 많아졌고 말주머니보단 부가 설명이 엄청나게 많아졌다. 이거 만화로서 큰 장애 요인이다....-_-;
알고보니 요즘은 이원복 교수가 직접 만화를 그리지 않는다고 한다. 대충 스케치 해 놓으면, 이원복 교수의 제자들이자 덕성여대 디자인과 학생들의 모임인 '그림떼'에서 새부 펜선, 먹칠, 컬러 입히기까지 다 처리한다고 한다. 한마디로 생산 방식에서는 딱 공장만화가이다...ㅠㅠ
어쩌면 보수적 내용이란 것은 이처럼 교수-학생 간의 관계를 이용한 궝위주의적 생산방식에서 나오지 않나 싶다. 아니 둘은 필연적인 귀결이다. 정말 절실한 할 말이 있어 직접 한 장 한 장 그려가며 어린이들과 대화하듯이 그린 만화와 달리, 애초에 대중들에게 뭔가 알려주려는 듯 위압적 지식인의 입장에서 주저리 주저리 쓰다보니 만화 치고 지나치게 말이 많아지고 딱딱해지고...그것을 화려한 컬러로 메꾸려고 하니 힘이 많이 들고, 그러다보니 그림떼를 동원해서 '대형단체작업'에 돌입하고...이러는 동안 만화의 생명력은 자꾸만 떨어져나간다. 이런 식으로 만화 작업 계속하는 동안 삶은 권위주의의 방식으로 더 안착해가는 지도 모르겠다.
이원복의 작품 중 주간조선에 연재한 것을 모은 <현대문명진단>에는 성매매에 관한 굉장히 리버럴한 시각이 드러나는데 이런 식이다. 네덜란드에서 성매매 합법화가 이루어졌고, 퇴근 길 두 남성이 "아 피곤해~" "사우나 갈까 피로회복업소 갈까?"하고 대화하는 장면이다. 이원복 교수는 이것을 '자유주의'의 시각에서 그려냈겠지만 그걸 보는 여성 입장에서 질려버린다는 것을 알기나 할까. 이러한 터무니없는 남성중심적인 시선과 무관심은 그 이전 장에서 과소비, 과잉교육열, 사치 등 온갖 안 좋은 덕목들은 다 여성캐릭터로 그려놓는 데서 비롯되지 않았나 한다. 물론 이건 무의식이라지만 무의식이 더 무서운거라니까.
고로 이런 공장생산방식의 만화를 그리는 동안 만화가 이원복의 무의식은 자꾸만 권위주의의 깊숙히, 남성중심주의 저 안 쪽으로 뒷걸음질칠 것만 같다. 한 때 이원복 만화라면 다 사서 보았을 정도의 팬이었던 사람의 안타까움..아아 정말 요새 이원복 만화 재미없어졌다..ㅠㅠ
# by 은하 | 2006/02/12 16:39 | 글,만화,영상 | 트랙백 | 덧글(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