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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 04월 26일
개인의 자유는 절대 타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는 범위내에서 허용되어야 한다.
...요즘들어 이 말이 상당히 비겁하고 한심한 명제라는 생각이 든다. 이것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면 아무것도 못한다. 최근 아크로의 집회금지 논쟁을 보면서, 해방터에서 학생들이 뭔가를 하기만 하면 꼭 와서 ㅈㄹ 하는 영문과 모 교수를 보면서, 그리고 예전의 파업 등을 겪으면서 든 생각이다. 우리는 모두들 타인의 권리를 (조금씩 혹은 많이) 침해하고 살고 있다. 하다못해 자판기 커피값이 200원이라는 것도 브라질, 콜롬비아의 커피노동자의 권리를 침해하면서 먹는 것이고, 중도 벽에다 자보 하나 걸어놓는 것도 보기 싫은 사람에게는 시작적(?) 권리 침해다. 그리고 이것저것.... 문제는 저 권리 침해가 발동되는 시점을 봐야 하는데...특히 집회, 파업 등지와 관련되어 권리 침해 운운하는 것은 조금 생각해봐야 한다. 도서관에서 공부하는 자유를 들어 아크로에서 집회를 금지하는 것은 거꾸로 집회결사의 자유 침해다. 대부분 집회는 사회적 약자의 목소리를 대변하는 경우가 많은데(꼭 그렇지만은 않고, 다양한 목소리를 표현하는 공간이라는 게 옳지만 - 대부분 생활에 만족하는 사람들은 집회할 필요가 없으므로) 이 경우 거꾸로 말할 권리를 빼앗고, 현재 말해야만 하는 사람들에게 피해를 주는 것이다. 지금 그대로 살라고. 어딜 기어오르냐고. 기계적 중립은 중립이 아니다. 기계적 중립은 결국 현'방임'을 통해 위치에서 우위에 선 사람의 손을 들어주는 것이다. 그것만으로 이미 입장을 표명한 것이나 다름없는데, 여기에 '타인의 권리 침해' 운운하는 것은 더 기묘한 포장. 그 논의 자체가 누군가의 권리를 또 침해하고 있다. 지금 논의되고 있는 권리가 누구의 권리인지 합의를 마련하는 것과 서로 이해하려는 노력을 시도하는 게 중요하지 않을까. 무조건 중도에서 공부하는 사람들을 탓할 수도 없고, 그들의 공부할 권리도 중요하지만 '원천봉쇄'와 같은 극단보다는 서로가 무엇을 위해 '이 짓'들을 하는 지 공유점을 찾아야 할 거 같다. 어쨌거나 저 문장 참 마음에 안 드는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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