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1월 25일
故 유니의 죽음 다시 생각하며 -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모는 극단의 상품화
섹시가수, 상업주의의 비극
금발에 어딘가 헤퍼보이는 백치같은 웃음에, 환풍구 바람때문에 뒤집어지는 치마를 간신히 누르는 모습으로 각인된 1950년대 미국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그러나 이 같은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실상 라틴어 경구를 자기 집 현관에 새겨넣고, 직접 시를 지을줄도 알았던 이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출처: 섹스가 싫었던 섹스심벌) 그러나 대중과 언론과 연예자본은 그녀애개 '매춘부의 이미지'로 남아있도록 강요했고 이는 그녀의 배우로서의 사명감과 자존심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도 훼손했던 모양이다. (참조: 매춘부의 몸에 싸여 있는 소녀같은 심성의 마릴린 먼로. 필름 2.0)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여전히 상당부분 베일에 쌓여있지만, 이러한 부분이 그녀의 우울증 및 죽음과도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추측하기는 무리가 아니다.
가수 유니이자 배우 이혜련이었던 한 여성 연예인이 자살했다. 그녀가 평소에 악플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고인의 미니홈피에서조차 악플이 발견되는 등의 사태를 통해, 그녀의 죽음은 인터넷의 악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질문하고 싶다. 과연 그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은 과연 악플러 뿐이었을까. 나는 故 유니의 죽음과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 둘 다 섹시 이미지'만'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며, 대중에게 '매춘부의 몸'으로 비칠 것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2004년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가수 이효리의 성공으로 그 이후 한국 가요계는 섹시가수를 표방한 여가수들이 정말 공장에서 찍어낸 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요계에서 음악은 정작 부수적인 요소가 되는 등 한국대중문화 발전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가운데 섹시여가수의 역할을 요구받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내적 욕망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듯 하다. 오히려 언론과 대중은 마릴린 먼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을 '스스로 몸을 파는 탕녀'의 이미지로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그녀들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하면서도 마음껏 그녀들의 몸을 죄책감없이 부담없이 소비할 수 있었다.
故 유니는 그러한 연예자본의 '섹시가수상품 만들기' 행태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본래 90년대 중반에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고, '왕과 비' 등의 이름난 작품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의아한 점은 그녀는 당시 10대, 고등학생 연예인으로서는 상당히 보기 드물게 '섹시함' 이미지가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그녀를 일찍 주목받게 했지만, 주로 관능적이거나 심지어 어딘가 퇴폐적인 배역만 맡게 되는 등 그녀의 연기활동의 폭은 더 없이 좁아져 버렸다. 아마 이 점이 나름 괜찮았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련이 사장(死藏)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뜬금없이 2003년 가수로 데뷔했고, 2005년 2집 '콜,콜,콜'을 통해 그 어떤 섹시컨셉 여가수들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대체로 섹시컨셉 여가수들과 관련하여 그렇듯이) 그녀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다른 여가수들보다도 극도로 심한 노출과 이에 대해 당당한 그녀의 태도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만 난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에 혀를 찼지만, 가수 유니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내면을 갉아먹으면서 무대위의 탕녀를 연기했을 줄을 상상도 못했다. 또한 이렇게 한 인간의 심성을 망가뜨려가면서 섹시여가수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던 연예자본이 문제의 본질임 역시 생각하지 못했다.
연예인은 어차피 자신의 모습을 상품화하여 살아간다. 이는 마릴린 먼로 뿐 아니라 우아하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그레이스 켈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섹시 이미지의 상품화가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지독한 성의 상품화의 경우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링크해 온 기사에서도 분석했듯이, 다른 이미지와 달리 섹시 코드는 '자극성'을 원동력으로 하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더욱 지독한 자극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여기서 결국 자신의 재능과 무관한 '옷 벗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극심한 노출의 경쟁에서 대중들은 무감각해져 버릴 수 밖에 없고, 섹시 컨셉의 연예인들은 섹시 외의 다른 무기가 없으면 금새 식상해져서 폐기처분될 수 밖에 없다. 즉, 연예자본이 단기적 이윤을 염두에 두고 섹시컨셉 연예인을 양산하는 것은, 금방 쓰고 버릴 1회용 소모품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점은 무엇보다 1회용 소모품이 되는 그녀들 자체를 위해서라도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여성 연예인의 죽음에는 '노출 등에 대한 부담'이 얽혀있으며, 섹시함으로 승부했던 여성들은 나이들어서 많이 후회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돈나는 마릴린 먼로와 달리 자신의 섹시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때문에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녀를 주목하기도 했지만, 정작 요새 그녀는 종교에 몰입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TV 시청을 금지하고 과거를 후회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출처: 마돈나 섹시 이미지 후회한다) 남성들의 은밀한 시선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매력을 무기로 휘둘러 남성들을 굴복시키는 것을 즐기는 듯 했던 마돈나조차도,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대중에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내면에 어떤 부담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특히 연예인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살아야 하는 그녀들이, 무대 바깥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섹시컨셉은 문화적으로 어떤 덫으로 작용했을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이러한 연예인들의 행보가 '기획사 등을 비롯한 연예자본과 대중'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른 바 섹시컨셉 - 즉 지독하고 극단적인 성의 상품화 - 은 어떤 면에서는 해당 연예인들 개개인의 내면을 파괴하는 자충수일지도 모른다. 특히 마릴린 먼로나 '배우 이혜련' 등에서 보듯, 권력에 의해 실제 자신의 재능과 예술가적 자존심과는 분리된 채 극단의 자극 경쟁에 내 몰리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해 보인다. 더구나 故 유니의 경우 인터넷 악성리플이 죽음의 커다란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그녀가 연기한 '스스로 몸을 파는 여성'(실제로 그런 게 있는지와는 별도로;;)의 역할이, 대중들이 그녀를 공격하는데 대한 도덕적 부담감을 줄여주면서 거리낌없이 악플을 퍼부을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그녀들의 몸을 즐기면서도 도덕적으로 그녀들을 비판했던 우리 대중들은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악플러들 뿐 아니라 연예 기획사 역시 죽음의 공범자다.
故 유니의 장례식장은 마지막까지 쓸쓸했다고 한다. 이미 망자가 된 그녀의 미니홈피에 까지 악성리플들이 달려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엇는가 하면, 정작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를 이 시대 갈 데 까지 간 '인간의 상품화'와 자신들이 다루는 상품이 최소한의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은 '연예자본'에 대한 비판은 저 기사처럼 아주 간간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연예기획사들의 반성이나 참회가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죽음은 끝까지 우울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단기적 이윤에 급급한 연예자본들은 또 다시 1회적 소모품을 양산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대중은 한 비운의 연예인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도 최소한의 룰은 있어야 한고, 이는 적어도 우리 모두가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한 영혼의 죽음에 공범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
재작년인가 당시 중2 였던 6촌동생의 버디 미니홈피를 방문했는데 100문 100답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 '싫어하는 연예인'이라는 항목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유니 ○○○' 라고 욕설을 써 놓았다. 뭐라고 그러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왜 싫어하는 연예인 항목에 유니를 써 놓았는지 알고 있다. 그녀 역시 여성으로서 과도하게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우는 유니에게 불쾌감과 반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이것이 아마 유니가 상처받은 악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평범한(????) 내 6촌동생이 아무 생각없이 올린 글이 그녀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세상이란 건 두렵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니 유니는 그러한 화제성으로 연예생명을 지탱했다. 그녀는 욕을 먹을수록 화제에 오를 수 있었고, 그런 화제성이 그녀와(?) 소속사에게 돈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하니 소속사는 어떻게 되든 화제성을 올리면 그만이었지만, 그런식으로 자신을 대중의 화젯거리에 던져놓아 상처입는 자는 소속사가 아니라 유니 그 자신이었다. 그녀는 아역으로 데뷔해 누구보다 이것저것 활발히 활동하려 했지만, 관능적 이미지에 짓눌려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꿈과 무관하게 연예자본에 휘둘리다 죽음으로 내몰렸다. 여기에는 연예자본의 이기심이, 대중들의 무지와 욕망이, 그리고 여성과 성에 관한 문화적 편견이(헤픈 여자는 공격당해도 싸다. 그리고 여성 이슈와 관련하여 유독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 인성론으로 몰아가는 것),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찌보면 그러한 악의적 시선에 반쯤 동조자였던 나에게도. 모조리 책임이 있다. (이게 결국 인텔리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한게였을까;; ㅜㅡ)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안타까운게 아니라 죄스럽다. 이 글도 쓸까 말까 상당히 망설였다. 그저 분석을 자처하며 망자를 욕보이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본다면) 아마 그녀의 유족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감수해야 할 거 같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권을 거세하는 이 시대 연예자본주의의 끔찍함에 대해 생각해보고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고인의 명목을 빈다. ▶◀
금발에 어딘가 헤퍼보이는 백치같은 웃음에, 환풍구 바람때문에 뒤집어지는 치마를 간신히 누르는 모습으로 각인된 1950년대 미국의 섹스심벌 마릴린 먼로. 그러나 이 같은 이미지와 달리 그녀는 실상 라틴어 경구를 자기 집 현관에 새겨넣고, 직접 시를 지을줄도 알았던 이지적인 사람이었다고 한다. (출처: 섹스가 싫었던 섹스심벌) 그러나 대중과 언론과 연예자본은 그녀애개 '매춘부의 이미지'로 남아있도록 강요했고 이는 그녀의 배우로서의 사명감과 자존심은 물론, 한 인간으로서의 존엄성마저도 훼손했던 모양이다. (참조: 매춘부의 몸에 싸여 있는 소녀같은 심성의 마릴린 먼로. 필름 2.0) 마릴린 먼로의 죽음은 여전히 상당부분 베일에 쌓여있지만, 이러한 부분이 그녀의 우울증 및 죽음과도 분명한 관계가 있음을 추측하기는 무리가 아니다.
가수 유니이자 배우 이혜련이었던 한 여성 연예인이 자살했다. 그녀가 평소에 악플때문에 많은 상처를 받았고, 고인의 미니홈피에서조차 악플이 발견되는 등의 사태를 통해, 그녀의 죽음은 인터넷의 악플에 대해 다시 생각해보는 계기가 되고 있다. 그러나 나는 질문하고 싶다. 과연 그녀를 죽음으로 내 몬 것은 과연 악플러 뿐이었을까. 나는 故 유니의 죽음과 마릴린 먼로의 죽음이 닮은 점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녀들 둘 다 섹시 이미지'만'으로 대중에게 각인되었으며, 대중에게 '매춘부의 몸'으로 비칠 것을 강요받았던 것이다.
2004년 섹시함을 전면에 내세운 가수 이효리의 성공으로 그 이후 한국 가요계는 섹시가수를 표방한 여가수들이 정말 공장에서 찍어낸 듯 '쏟아져' 나왔다. 그리고 이러한 현상에 대해, 가요계에서 음악은 정작 부수적인 요소가 되는 등 한국대중문화 발전에 대한 우려와 비판도 끊임없이 제기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이러한 비판 가운데 섹시여가수의 역할을 요구받는 사람들의 인권이나 내적 욕망과 관련해서는 별다른 언급이 없었던 듯 하다. 오히려 언론과 대중은 마릴린 먼로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그녀들을 '스스로 몸을 파는 탕녀'의 이미지로 보기를 주저하지 않았고, 그러기에 그녀들에게 도덕적 비난을 가하면서도 마음껏 그녀들의 몸을 죄책감없이 부담없이 소비할 수 있었다.
故 유니는 그러한 연예자본의 '섹시가수상품 만들기' 행태의 정점에 있었던 인물이다. 그녀는 본래 90년대 중반에 '이혜련'이라는 이름으로 데뷔했고, '왕과 비' 등의 이름난 작품들에 출연하기도 했다. 의아한 점은 그녀는 당시 10대, 고등학생 연예인으로서는 상당히 보기 드물게 '섹시함' 이미지가 강조되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점은 그녀를 일찍 주목받게 했지만, 주로 관능적이거나 심지어 어딘가 퇴폐적인 배역만 맡게 되는 등 그녀의 연기활동의 폭은 더 없이 좁아져 버렸다. 아마 이 점이 나름 괜찮았던 연기력에도 불구하고 배우 이혜련이 사장(死藏)되게 된 이유가 아니었을까.
그리고 그녀는 뜬금없이 2003년 가수로 데뷔했고, 2005년 2집 '콜,콜,콜'을 통해 그 어떤 섹시컨셉 여가수들보다 강렬하고 자극적인 모습으로 나타났다. 나 역시 (대체로 섹시컨셉 여가수들과 관련하여 그렇듯이) 그녀의 노래가 무엇이었는지 전혀 모르고 있었으며, 다른 여가수들보다도 극도로 심한 노출과 이에 대해 당당한 그녀의 태도를 보며 어안이 벙벙했던 기억만 난다. 그리고 그러한 모습에 혀를 찼지만, 가수 유니가 우울증에 시달릴 정도로 내면을 갉아먹으면서 무대위의 탕녀를 연기했을 줄을 상상도 못했다. 또한 이렇게 한 인간의 심성을 망가뜨려가면서 섹시여가수들을 지속적으로 생산했던 연예자본이 문제의 본질임 역시 생각하지 못했다.
연예인은 어차피 자신의 모습을 상품화하여 살아간다. 이는 마릴린 먼로 뿐 아니라 우아하고 귀족적인 이미지의 그레이스 켈리의 경우도 마찬가지였다. 그리하여 섹시 이미지의 상품화가 무엇이 문제가 되느냐는 반론도 있다. 그러나 지독한 성의 상품화의 경우 문제는 그리 단순하지 않다. 링크해 온 기사에서도 분석했듯이, 다른 이미지와 달리 섹시 코드는 '자극성'을 원동력으로 하며, 경쟁에서 우위를 점하기 위해서는 더욱 지독한 자극을 제공해주어야 한다. 여기서 결국 자신의 재능과 무관한 '옷 벗기' 경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그러나 이렇게 극심한 노출의 경쟁에서 대중들은 무감각해져 버릴 수 밖에 없고, 섹시 컨셉의 연예인들은 섹시 외의 다른 무기가 없으면 금새 식상해져서 폐기처분될 수 밖에 없다. 즉, 연예자본이 단기적 이윤을 염두에 두고 섹시컨셉 연예인을 양산하는 것은, 금방 쓰고 버릴 1회용 소모품을 양산하는 것과 다름없다.
이 점은 무엇보다 1회용 소모품이 되는 그녀들 자체를 위해서라도 심각한 병폐가 아닐 수 없다. 대부분 여성 연예인의 죽음에는 '노출 등에 대한 부담'이 얽혀있으며, 섹시함으로 승부했던 여성들은 나이들어서 많이 후회한다고 한다. 대표적으로 마돈나는 마릴린 먼로와 달리 자신의 섹시함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했고, 그 때문에 미국의 페미니스트들이 그녀를 주목하기도 했지만, 정작 요새 그녀는 종교에 몰입하고, 자신의 아이에게 TV 시청을 금지하고 과거를 후회한다는 발언을 하고 있다.(출처: 마돈나 섹시 이미지 후회한다) 남성들의 은밀한 시선의 대상이 된 것이 아니라, 자신의 성적 매력을 무기로 휘둘러 남성들을 굴복시키는 것을 즐기는 듯 했던 마돈나조차도, 인간의 가장 내밀한 부분을 대중에게 드러내야 한다는 점에서 내면에 어떤 부담이 있었는지는 모르는 일이다. 특히 연예인이기 전에 한 여성으로서 살아야 하는 그녀들이, 무대 바깥 세상에서 살아가는 데 섹시컨셉은 문화적으로 어떤 덫으로 작용했을 것을 예상하기는 어렵지 않다. 더구나 이러한 연예인들의 행보가 '기획사 등을 비롯한 연예자본과 대중'에 의해 강제된 것이라는 점에서 더더욱 심각한 문제다.
이른 바 섹시컨셉 - 즉 지독하고 극단적인 성의 상품화 - 은 어떤 면에서는 해당 연예인들 개개인의 내면을 파괴하는 자충수일지도 모른다. 특히 마릴린 먼로나 '배우 이혜련' 등에서 보듯, 권력에 의해 실제 자신의 재능과 예술가적 자존심과는 분리된 채 극단의 자극 경쟁에 내 몰리는 경우는 더더욱 그러해 보인다. 더구나 故 유니의 경우 인터넷 악성리플이 죽음의 커다란 원인으로 지목되었지만, 그녀가 연기한 '스스로 몸을 파는 여성'(실제로 그런 게 있는지와는 별도로;;)의 역할이, 대중들이 그녀를 공격하는데 대한 도덕적 부담감을 줄여주면서 거리낌없이 악플을 퍼부을 수 있는 명분이 되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아무 거리낌없이 그녀들의 몸을 즐기면서도 도덕적으로 그녀들을 비판했던 우리 대중들은 그녀의 죽음에 책임이 없다고 말할 수 없으며, 무엇보다 악플러들 뿐 아니라 연예 기획사 역시 죽음의 공범자다.
故 유니의 장례식장은 마지막까지 쓸쓸했다고 한다. 이미 망자가 된 그녀의 미니홈피에 까지 악성리플들이 달려 사회적으로 충격을 주엇는가 하면, 정작 한 인간을 죽음으로 내몰았는지도 모를 이 시대 갈 데 까지 간 '인간의 상품화'와 자신들이 다루는 상품이 최소한의 인격이 있는 존재라는 것을 잊은 '연예자본'에 대한 비판은 저 기사처럼 아주 간간히 제기되는 실정이다. 연예기획사들의 반성이나 참회가 단 한 마디도 들리지 않았다는 점에서 그녀의 죽음은 끝까지 우울함을 안겨준다. 그리고 단기적 이윤에 급급한 연예자본들은 또 다시 1회적 소모품을 양산하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고, 대중은 한 비운의 연예인을 잊을 것이다. 그러나 절대로 잊어야 하지 말아야 할 것은 아무리 모든 것이 상품화되고 이를 바탕으로 돌아가는 세상이라도 최소한의 룰은 있어야 한고, 이는 적어도 우리 모두가 '인간'임을 잊지 말아야 한다는 점이다. 더욱이 우리 모두가 한 영혼의 죽음에 공범자가 될 수 있는 현실이니까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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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인가 당시 중2 였던 6촌동생의 버디 미니홈피를 방문했는데 100문 100답이 올라와 있었다. 그 중 '싫어하는 연예인'이라는 항목도 있었는데, 이 아이는 '유니 ○○○' 라고 욕설을 써 놓았다. 뭐라고 그러려다가 그만두었다. 그녀가 왜 싫어하는 연예인 항목에 유니를 써 놓았는지 알고 있다. 그녀 역시 여성으로서 과도하게 섹슈얼리티를 전면에 내세우는 유니에게 불쾌감과 반감이 들었을 것이다. 나도 그러했다. 이것이 아마 유니가 상처받은 악플 중 하나였을지도 모른다. 정말 평범한(????) 내 6촌동생이 아무 생각없이 올린 글이 그녀의 목을 조를 수 있는 세상이란 건 두렵기까지 하다.
생각해보니 유니는 그러한 화제성으로 연예생명을 지탱했다. 그녀는 욕을 먹을수록 화제에 오를 수 있었고, 그런 화제성이 그녀와(?) 소속사에게 돈을 가져다 주었다. 그러하니 소속사는 어떻게 되든 화제성을 올리면 그만이었지만, 그런식으로 자신을 대중의 화젯거리에 던져놓아 상처입는 자는 소속사가 아니라 유니 그 자신이었다. 그녀는 아역으로 데뷔해 누구보다 이것저것 활발히 활동하려 했지만, 관능적 이미지에 짓눌려 꿈을 펼쳐보지도 못하고, 자신의 꿈과 무관하게 연예자본에 휘둘리다 죽음으로 내몰렸다. 여기에는 연예자본의 이기심이, 대중들의 무지와 욕망이, 그리고 여성과 성에 관한 문화적 편견이(헤픈 여자는 공격당해도 싸다. 그리고 여성 이슈와 관련하여 유독 구조적 문제보다 개인 인성론으로 몰아가는 것), 그것을 극복하지 못하고 어찌보면 그러한 악의적 시선에 반쯤 동조자였던 나에게도. 모조리 책임이 있다. (이게 결국 인텔리 페미니스트로서 나의 한게였을까;; ㅜㅡ)
그래서 그녀의 죽음은 안타까운게 아니라 죄스럽다. 이 글도 쓸까 말까 상당히 망설였다. 그저 분석을 자처하며 망자를 욕보이는 것이 아닐까. (만약에 본다면) 아마 그녀의 유족들에게 욕을 먹는 것은 감수해야 할 거 같고, 하지만 그럼에도 인권을 거세하는 이 시대 연예자본주의의 끔찍함에 대해 생각해보고 잊지 않는 계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그녀에게 너무나 미안하다. 고인의 명목을 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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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은하 | 2007/01/25 02:46 | 생각 | 트랙백(16) | 덧글(4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