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6월 20일
내신문제, 허울좋은 대학자유화보다 더 중요한 것
3불담론유감(보클레어)
논의의 틀을 선점당하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이미 자기가 발언할 수 있는 무대가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대학입시 내신 문제가 딱 그렇다.
교육부 내신무시 대학에 불이익 VS 대학자치권침해
이 구도가 되면서 이 사안의 핵심은 대학의 '자유' 문제인 것처럼 되고 있다. 대학의 자율화. 그런데 대학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히 다가와야 할 학생들 입장에서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자율화는 이사장 내지 총장의 자율일 뿐, 학생들의 입김은 어차피 하나도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세워지기도 어려운 시절이지만, 정작 세워진다고 하더라들 본부 앞에서 항의하는 것 외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정부가 간섭해줘서 등록금이라도 동결한다면 학생들의 (무거운 등록금 부담에서 벗어날) 자유 쯤은 보장될 거 같은데.
물론 정부는 막상 그 일에는 신경 안 쓰고 있고 입시만으로 항상 대학을 통제하려고 하니 그것도 문제다. -_-;;
그러나 내신문제에서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은 "누가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엄연히 계급적 문제가 얽힌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남의 학교들, 그리고 특목고들이다.
시대분위기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섬뜩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상류층 젊은이들의 의식이다. 이원복 교수가 어느 순간 한국은 "부자를 미워해서 자본주의정신이 정착이 안 된다며" 부자를 미워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부르짖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다면 이 아저씨 만화가 그만해야하지 않나 싶다. 부자를 동경하는 것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그렇다고쳐도, 빈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쿨한 것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다.
학생들의 입시커뮤니티인 '오르비스 옵티무스' 등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강남권 학생들은 '지균'을 없애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물론 이들의 주된 근거는 지균이 지역의 인재를 서울대가 독점하여 실질적으로 지역사회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던가, 실제로는 지방중소도시가 아닌 지방대도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수능은 왜 더 높은데, 실력이 더 좋은데, 우리보다 공부못하는애들을 왜 뽑느냐는 불만이다. "지방 살면 다냐?"라는 한심한 발언도 이따금씩 보인다.
무지는 죄라고. 지방살면 다냐. 이 발언 한 학생은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육환경 격차를 전혀 모르는 녀석이다. 사교육 시장의 격차는 물론, 한 학년에 500명이 경쟁하는 환경과, 한 학년에 100명 정도 경쟁하는 환경이 빚어내는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각종 유명학원이 앞다투어 개최하는 입시설명회 등 정보에 대한 접근권에 있어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대졸자 및 전문직 학부모 분포도를 보아도 확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잣대로 경쟁한다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의 유리한 입지 거저 먹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질적으로 기회의 평등 따위는 없다.
유리한 교육환경에서 다소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면 내신에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더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집적이익'이란 것도 존재한다. 나도 비평준화시절 내신에 불리한 명문고라는 곳을 다녀봤지만, 명문고가 제공하는 일종의 '집적이익'은 '스트레스' 못지않게 커다란 것임을 깨닫고 깜짝 놀란 바 있다. 우선 자기 점수에 대한 상대적 만족 기준이 올라간다. 남들이 다 잘하니까 계속 공부를 하게 되서 아예 만족하는 점수가 달라지고 웬만하면 목표점수에 맞추어 실질적 자기점수도 상승하게 되어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서 스터디라도 하면 그 효과도 배가 된다.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지간하지 않고는 따라가기 힘들다. 결국 내신이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명문고 학생들이 명문대 더 많이 간다. 내신 불이익을 상회하는 인센티브가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신불이익 없애달라고?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 그것이야말로 불공정 경쟁 아닐까.
내신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인 8차 교육과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시에 내신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일선 고등학교 학교교육의 충실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모적인 경쟁과 스트레스만 야기한다는 문제도 잘 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다양한 대학입시전형도 있어야 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의 자율성/자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논쟁의 맥락에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내실화도, 학생들의 실질적 부담 문제도,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 문제도 모조리 누락되어있다. 어차피 "그들"만의 자유가 될 대학자유란 이름아래 이 모든 맥락들이 아예 조명조차 못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조명은 못 받지만, 대학들의 입시전형에 따라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아무도 조명해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결과는? 당연히 무조건 강자의 승리다. 그것도 부모, 출신지 등으로 인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강자의 승리.
적어도 국립대학만큼은 전국 곳곳의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간에 과정적인 불평등은 수도권 사람들이 누리는 인센티브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동시대인에 대한 연대의식만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후자는 요새 거의 사라지고 있지..-_-;;;;) 서울대학교 학생들 거의가 중산층인데 국고보조금 뭐하러 주느냐는 목소리가 많지만, '거의 다 중산층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장무 총장 이후 이런 국립대학교의 사명은 (무엇보다 건물이 말해주는)"세계적 명문대학"이라는 명분과 바꾸어 어디다 갖다 버린 거 같다. 영어에 능통하고 와인 마시는 법도 잘 알고 테이블 매너도 좋은 글로벌한 CEO, 그러나 정작 자기 옆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나는지도 모르고, '학교교육이 마음에 안 들면 과외선생을 붙이면 될 거 아냐'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듯한 그런 인재를 키우려고 하나보다.
대학의 자유?
누가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인가가 더 큰 문제 아닐까.
논의의 틀을 선점당하면 이미 게임은 끝이다. 이미 자기가 발언할 수 있는 무대가 없으니까 말이다. 지금 대학입시 내신 문제가 딱 그렇다.
교육부 내신무시 대학에 불이익 VS 대학자치권침해
이 구도가 되면서 이 사안의 핵심은 대학의 '자유' 문제인 것처럼 되고 있다. 대학의 자율화. 그런데 대학의 자유가 무엇보다도 가장 소중히 다가와야 할 학생들 입장에서는 전혀 와 닿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들이 말하는 자율화는 이사장 내지 총장의 자율일 뿐, 학생들의 입김은 어차피 하나도 반영되지 않기 때문이다. 학생회가 세워지기도 어려운 시절이지만, 정작 세워진다고 하더라들 본부 앞에서 항의하는 것 외에 실질적인 힘을 발휘하기는 어렵다. 차라리 정부가 간섭해줘서 등록금이라도 동결한다면 학생들의 (무거운 등록금 부담에서 벗어날) 자유 쯤은 보장될 거 같은데.
물론 정부는 막상 그 일에는 신경 안 쓰고 있고 입시만으로 항상 대학을 통제하려고 하니 그것도 문제다. -_-;;
그러나 내신문제에서 우리가 정말로 생각해봐야 할 대목은 "누가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가"라는 것이다. 이 쯤 되면 엄연히 계급적 문제가 얽힌 질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신비중 축소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강남의 학교들, 그리고 특목고들이다.
시대분위기가 너무 많이 바뀌었다는 것을 섬뜩하게 느낄 수 있는 게 상류층 젊은이들의 의식이다. 이원복 교수가 어느 순간 한국은 "부자를 미워해서 자본주의정신이 정착이 안 된다며" 부자를 미워하지 말 것을 끊임없이 부르짖었는데, 지금도 그러고 있다면 이 아저씨 만화가 그만해야하지 않나 싶다. 부자를 동경하는 것은 경제가 어려우니까 그렇다고쳐도, 빈자를 대놓고 무시하는 것이 쿨한 것쯤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지금 이 사회의 분위기다.
학생들의 입시커뮤니티인 '오르비스 옵티무스' 등의 사이트에 들어가보면 서울대의 '지역균형선발제'가 뭇매를 맞는 모습을 끊임없이 볼 수 있다. 강남권 학생들은 '지균'을 없애야 한다고 끊임없이 주장한다. 물론 이들의 주된 근거는 지균이 지역의 인재를 서울대가 독점하여 실질적으로 지역사회를 더 황폐하게 만든다던가, 실제로는 지방중소도시가 아닌 지방대도시에게 유리하게 작용한다는 내용이 아니다. 실질적으로 우리가 수능은 왜 더 높은데, 실력이 더 좋은데, 우리보다 공부못하는애들을 왜 뽑느냐는 불만이다. "지방 살면 다냐?"라는 한심한 발언도 이따금씩 보인다.
무지는 죄라고. 지방살면 다냐. 이 발언 한 학생은 서울과 지방 사이의 교육환경 격차를 전혀 모르는 녀석이다. 사교육 시장의 격차는 물론, 한 학년에 500명이 경쟁하는 환경과, 한 학년에 100명 정도 경쟁하는 환경이 빚어내는 차이도 무시할 수 없다. 각종 유명학원이 앞다투어 개최하는 입시설명회 등 정보에 대한 접근권에 있어서도 격차가 벌어진다. 대졸자 및 전문직 학부모 분포도를 보아도 확 차이가 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똑같은 잣대로 경쟁한다는 것은 수도권 학생들의 유리한 입지 거저 먹고 들어가겠다는 것이나 다름없다. 실질적으로 기회의 평등 따위는 없다.
유리한 교육환경에서 다소 우수한 학생들이 모인다면 내신에 불리한 것은 당연하다. 하지만 그럼에더 불구하고 그들에게는 '집적이익'이란 것도 존재한다. 나도 비평준화시절 내신에 불리한 명문고라는 곳을 다녀봤지만, 명문고가 제공하는 일종의 '집적이익'은 '스트레스' 못지않게 커다란 것임을 깨닫고 깜짝 놀란 바 있다. 우선 자기 점수에 대한 상대적 만족 기준이 올라간다. 남들이 다 잘하니까 계속 공부를 하게 되서 아예 만족하는 점수가 달라지고 웬만하면 목표점수에 맞추어 실질적 자기점수도 상승하게 되어있다. 상위권 학생들이 모여서 스터디라도 하면 그 효과도 배가 된다. 혼자서 공부하는 사람은 어지간하지 않고는 따라가기 힘들다. 결국 내신이 불리하다고 하더라도 결과적으로는 명문고 학생들이 명문대 더 많이 간다. 내신 불이익을 상회하는 인센티브가 있다고 해석할 수 밖에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내신불이익 없애달라고? 욕심이 너무 지나치다. 그것이야말로 불공정 경쟁 아닐까.
내신비중을 비약적으로 높인 8차 교육과정에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다. 입시에 내신제도를 강화하는 것이 실질적으로 일선 고등학교 학교교육의 충실화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라, 소모적인 경쟁과 스트레스만 야기한다는 문제도 잘 안다. 다양성을 존중하는 사회라면 다양한 대학입시전형도 있어야 하는 쪽이 바람직하다.
하지만, 지금의 "대학의 자율성/자치권"이라는 이름으로 벌어지는 논쟁의 맥락에는 중고등학교 교육의 내실화도, 학생들의 실질적 부담 문제도, 그리고 수도권과 지방 간의 격차 문제도 모조리 누락되어있다. 어차피 "그들"만의 자유가 될 대학자유란 이름아래 이 모든 맥락들이 아예 조명조차 못 받고 있는 것이 문제다. 조명은 못 받지만, 대학들의 입시전형에 따라 많은 중고등학생들이 영향을 받을 것은 불을 보듯 뻔한데 말이다. 아무도 조명해주지 않는 곳에서 벌어지는 생존경쟁의 결과는? 당연히 무조건 강자의 승리다. 그것도 부모, 출신지 등으로 인해 강해질 수 밖에 없는 강자의 승리.
적어도 국립대학만큼은 전국 곳곳의 학생들에게 실질적인 기회의 평등을 주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 중간에 과정적인 불평등은 수도권 사람들이 누리는 인센티브를 생각한다면, 그리고 동시대인에 대한 연대의식만 있다면 충분히 감수할 수 있다고 본다. (그러나 후자는 요새 거의 사라지고 있지..-_-;;;;) 서울대학교 학생들 거의가 중산층인데 국고보조금 뭐하러 주느냐는 목소리가 많지만, '거의 다 중산층이 서울대학교에 들어갈 수 밖에 없는 구조'가 본질적인 문제인 것이다. 문제는 이장무 총장 이후 이런 국립대학교의 사명은 (무엇보다 건물이 말해주는)"세계적 명문대학"이라는 명분과 바꾸어 어디다 갖다 버린 거 같다. 영어에 능통하고 와인 마시는 법도 잘 알고 테이블 매너도 좋은 글로벌한 CEO, 그러나 정작 자기 옆동네에서 무슨 일이 벌어나는지도 모르고, '학교교육이 마음에 안 들면 과외선생을 붙이면 될 거 아냐'라는 말을 천연덕스럽게 할 듯한 그런 인재를 키우려고 하나보다.
대학의 자유?
누가 들어갈 수 있는 대학인가가 더 큰 문제 아닐까.
# by 은하 | 2007/06/20 18:00 | 우리시대 | 트랙백 | 덧글(1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