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0일
사채업 - 한 손엔 쩐, 한 손엔 고도의 감시체제
2007년 상반기 최대 화두 중 하나는 단연 '사채업'이라고 해도 죻을 것이다. 여기에는 최근 막을 내린 드라마 <쩐의 전쟁>이 한 몫을 했다만, 이는 그 동안 애써 침묵하고 외면하고 있던 현실에 대한 분노가 수면으로 들끓어오를 기회를 준 것이었다. 이는 궁극적으로 IMF 이후 서민들이 겪은 실업, 정리해고, 카드빚에 이어 사채시장까지, 그야말로 '파산에 이르는 길'을 강요받았던 데 대한 지극히 응당한 분노라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렇게 형성된 분노의 에너지는 마침내 분노를 계기로 대부업 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을 향해 질주해 버렸다. 서민의 삶 가지고 장난치면서 돈 벌지 말라고. 최민수씨 사채광고 왜 찍으셨습니까. 형님, 이건 배신입니다.
하지만 사채광고에 출연한 연예인이 궁극적 문제일까. 그들은 삶의 수렁텅이로 이끄는 거대한 시스템의 말단 꼭두각시에 지나지 않다. 문제는 지독하리만치 잔혹한 시스템인 것이다. 무려 연 최대 66%의 고리채! 다행히도 이번 논란을 통해 대부업이 무려 상식을 뛰어넘는 이자율을 보장받고 있고(일본의 경우 최대 29%), 어처구니없게도 한손에는 칼, 한 손에는 법을 들고 숱하게 서민들을 울려왔다는 사실이 널리 드러나버렸다. 국가는 특정 계급의 이해관철 수단이라는 것을 정녕 온 몸으로 실현하고 싶었는지. 이제서야 서둘러 (선거도 앞두고!) 국회와 정부에서는 금리제한법을 개정하겠다고 나서고 있지만 글쎄다. 사학법 재개정 보니까 여전히 한 줌의 이익집단의 편이더라만.
사채업자만 생각하는 정부와 재경부, 아직도 정신 못차렸나 (다음 한글로님) - 정부가 얼마나 사채업을 밀어줬는지 잘 나온다.
심상정 의원의 내가 '쩐의 전쟁'에 주목하는 이유 (심상정 의원실)
대부업협회, 연 49% 금리제한 방침 철회하라 (이데일리)
그러나 살인적인 이자율 역시 문제의 전부가 아니다. 사채를 쓴 사람들이 결국 파산하게 되는 시스템은 따로 있다. 그것은 사채에 손을 대는 순간 자신의 신용등급이 결정나, 금융기관에 널리 공유되어버리는 이 시스템의 문제인 것이다.
무심코한 신용정보가 최하위 등급 부른다 (미디어다음)
현재 한국신용정보(NICE), 한국신용평가정보(KIS), 한국개인신용(KCB) 등 3개 신용평가사가 개인 신용등급을 매기고 있다. 이들 회사는 은행, 카드사 등이 갖고 있는 개인 금융거래 정보를 수집해서 등급을 매긴 뒤 금융회사들에 제공한다. 만약 사금융업체 등으로부터 대출을 받으려면 이 업체들과 대출상담을 하게 된다. 이때 대출희망자의 신용등급을 CB에 조회하면 이는 기록에 남는다. 문제는 사금융업체들이 개인의 신용등급을 CB에 조회하는 사실 자체만으로도 그 개인의 신용등급이 하락될 가능성이 높다는 사실을 대부분 모르고 있다는 것이다.
은행도 마찬가지다.모 은행의 경우 거래하지 않았던 고객에 대한 신용등급을 매길 때 신용정보 비중이 61%를 차지한다. 이 항목에는 신용불량 건수, 최근 6개월 내 신용조회기관 수, 할부금융회사의 조회건수, 저축은행의 조회건수, 백화점 카드 수, 신용카드 개설건수 등이 포함돼 있다. 금융회사가 최근 6개월 내 5회 이상의 신용조회를 했을 경우 은행들은 해당 고객에게 높은 신용등급을 주지 않는다.
많은 사채광고들이 (첫달만) "무이자"를 외친다. 사채가 사람 잡는다는 속설에도 불구하고 사채시장에 손을 벌려야 하는 사람들은 그만큼 절박하고 제1 금융권에서 돈을 빌리기 어려운 사람들이 대다수이다. 이들은 (첫달만) "무이자"라는 말에, 금방 벌어서 무이자가 적용되는 기간동안만 갚으면 되겠지라는 심정으로 눈 딱 감고 지른다. 그러나 사채업자들이 노리는 것은 고작 소박한(?) 이자 수익이 아니다. 이 사람이 사채업에 손을 빌리는 순간 안타깝게도 전 금융전산망에 그의 이름은 '사채에까지 손을 빌릴만한 처지가 난감한 인물, 즉 한마디로 요주의 인물로 분류되고 블랙리스트로 올라가는 것이다. 신용등급10등급! 절대대출불가!! 무려 3년간!
이 상황에서 설령 무이자가 적용되는 기간동안 대출금을 갚는다고 해도, 이 사람은 사채시장 외에 정상 금융권에서 돈을 빌릴 길은 전혀 막히게 된다. 한 번 추락한 신용등급이 다시 올라가기도 어려울 뿐더러 그 안에 다시 돈 빌릴 처지가 되면 무조건 눈물을 머금고 사채시장의 문을 다시 찾을 수 밖에 없는 것이다. 연 66%까지 보장받는 높은 이자율이 사악한 미소를 흘리는 것은 바로 이 시점부터이다. 그야말로 사채시장으로 등 떠밀린 고객의 피눈물이 진동하는 "쩐의 전쟁"이 시작되는 것이다.
고도로 발달한 정보사회와 이를 기반으로 한 정보시스템은 개개인들에게 이렇게 자기도 모르는 새에 신용불량자가 될 (=신용불량자로 낙인찍힐) 위험을 더더욱 높여주고 있다. 어느 대학생은 등록금을 해결하기 위해 잠시 어느 사채-대체로 ○○ 은행, 론 등의 표현을 써서 사채인지도 모르게 하는 경우도 많다 - 사이트에 들어가 "정보만 조회해 보았다".(물론 공짜이용의 대가로 주민등록번호와 이름을 요구했을 것이다) 그러나 정부대출금이나 자동차담보대출 등 훨씬 나은 방법을 깨닫고 다른 방향을 선택하기로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신용등금은 클릭과 동시에 10등급으로 추락해버린 사례가 있다. 이 젊은이에게 이 기록은 장래의 결혼,취직에도 장애가 될 것이다. 그야말로 정보를 수집, 관리하는 힘은 권력 중의 권력 때로는 타인의 삶을 파멸로도 몰아넣을 수 있는 폭력의 경지에 이른 것이다. (신문기사에서 봤었는데 찾을 수가 없네요;; 누구 아시는 분 댓글에 가르쳐주세요)
그러나 여기에 대한 언급은 거의 없는 실정이며, 딱히 대안도 없다. 그저 문제는 알겠지만 개인이 알아서 조심하라는 식이다.
이에 대해 금융감독당국은 금융회사가 신용위험 관리를 철저히 하겠다는 것에 대해 개입하기가 곤란하다는 반응이다.
금감원 신용정보실 관계자는 "대출희망자가 은행이 아닌 사금융업체에 대출상담을 했다는 기록이 남아서 은행이 자율적으로 신용등급을 평가하는 것은 어쩔수 없는것 아니냐"며 "금융기관의 건전성을 제고해야 하는 금융감독당국이 직접 금융회사의 신용위험관리 기능에 개입하기가 곤란하다"고 밝혔다
사실 표면적으로 은행은 죄가 없다. 자선기구가 아닌 이상 금융회사의 입장에서 신용이 철저한 사람에게 돈을 빌려주는 것은 당연하다. 그러나 이로 인해 피해를 보는 사람이 분명 생긴다. 가해자는 없는데 피해자만 있는 상황, 그 가운데에는 아찔하게 우리 일상의 미시적 영역으로 파고들어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실핏줄같은 네트워크만이 있을 뿐이다. 이것은 단순한 사채업의 문제가 아니라, 고도의 감시사회가 가져온 시스템의 문제다. 한마디로 내가 나의 정보를 생산해내는 것이 아니라, 수집된 정보가 나를 규정하는 사회! 그렇다면 개개인은 완벽하게 정보를 수집, 이용할 수 있는 권력에 종속되고 억압받을 수 밖에 없다. 사채업은 단지 그 틈망을 이용한 것일 뿐이다.
이러한 시스템에서 개개인이 알아서 조심을 하라는 것은 분명 무리한 요구다. 이는 정보사회에서 개개인은 결국 약자다. 지뢰가 잔뜩 묻힌 길을 지도도 없이 알아서 건너가라고 등 떠미는 것이나 다름없다. 과거 프롤레타리아들이 생산수단을 빼앗기면서 자본가들에게 종속되었다면, 현재의 시민들은 - 프롤레타리아나 부르주아 가릴 것 없이 - 자신의 정보에 대한 접근, 통제권을 빼앗기면서 또 다시 삶의 위기에 내몰리고 있는 것이다. 연리 66%라는 어처구니없는 사채업이 멀쩡하게(?) 돌아갈 수 있는 것도 이러한 시스템이 가져온 일부 효과이며, 아마도 현재 드러나지 않아도, 경제적, 정치적, 사회적 억압과 종속은 이미 팽팽하게 우리의 목을 휘감고 있는지도 모른다. 조금만 당기면 바로 숨이 멎을 정도로.
안타깝게도 국가는 정보권력의 편, 아니 그보다, 그 누구보다도 "개인의 정보를 소유, 통제하는 권력"이 되고자 하는 존재다. 이미 일원화된 번호로 국민을 관리하는 주민등록번호 체제가 그렇고, NEIS 파동으로 국가가 직접 교육을 빙자하여 국민의 정보를 모조리 수집하고자 한 바 있다. 아마도 진보와 효율, 심지어 투명과 민주의 이름으로도 정당화 될 이 행각의 제동을 걸 수 잇는 것은 무엇인가.
세 박자 서민금융 지원방안, 두 번째 (심상정 의원)- 고금리 사채 제로를 위해
일부 정치권에서도 올가미에 낚인 채 사채시장에 끌려가는 서민들을 위한 대안들을 내놓고 있다. 막강한 대부업계의 반발 속에과 대선이라는 정치공학 가운데 이자율제한이 추진되고 있고, 더 나아가 이처럼 서민을 위한 금융기관 설립을 위한 논의도 있다. 이러한 금융기관이 설립된다면 애초에 사채시장의 문을 두드려 신용등급이 대폭 하락하는 일 자체는 줄어들겠지만, 여전히 정보사회의 문제는 남아있다. 어쩌면 서민금융기관 이용이 또 다른 정보로 어떻게 이용될지도 모르는 일이다. 삶 자체가 정보권력에 감시당하는 이 현실은 정말 어찌해야 할 것인가. 자신있게 할 수 있는 답은 이 모순을 넘지 않고서는 결코 이 시대의 문제가 근본적으로 해결되지 않을 것이란 생각이다.
덧. 기계파괴자들 심정이 이해가 간다. 왜 컴퓨터 파괴 외에 딱히 떠오르는 게 없을까. ㅠㅡ 문제는 이 글을 컴퓨터로, 인터넷으로 쓰고 있다는 모순적 사실;;
# by 은하 | 2007/07/10 12:52 | 생각 | 트랙백 | 덧글(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