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07월 10일
빅토리아 여왕, 인도의 황제, 일본의 천황
어릴 적 '먼나라 이웃나라'를 읽었을 때, 도무지 이해가 안 되는 개념이 하나 있었다. 바로 영국 편에서 나온 서술 - '빅토리아 여왕은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를 겸했다' 뭔가 이상하지 않은가? 나에게 동아시아의 문화적 전통이 머리 깊이 각인되어 있다는 사실을 여기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1.
동아시아에서 황제와 왕은 동일한 영토 내에서의 피라미드적 권력관계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제국의 패권을 잡은 자가 황제가 되고 그에게 정치적 복속을 약속한 사람들은 왕이 되어, '신하'로서 황제를 모신다. 왕과 황제는 이러한 철저한 신분관계였기 때문에, 제국의 누군가가 황제를 칭하는 것은 바로 '맞장 뜨자는 선언', 이른 바 반역이었다. 물론 황제를 선언하는 입장에서는 '정치적 독립선언'인 것이다. 때로는 '이제 넌 내 밑으로 들어와라'는 지배욕의 산물이기도 했다. 그러기에 베트남의 황제들은 중국과의 외교관계에서는 왕을 칭했지만 국내에서는 황제라는 이름으로 권위를 얻고자 했던 것이다. 일본이 조선침략 전략 첫 단계는 조선에서 청의 그림자를 걷어내는 일이었다. 그리하여 진행된 고종의 대한'제국' 선포와 '황제' 즉위라는 낯간지러운 선언 역시 '홀로서기'의 다른 표현이었다.
이 개념을 그대로 들이대자면 '그레이트 브리튼의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인 빅토리아'는 확실히 좀 이상하다. 분명 식민지 종주국은 영국인데, 영국에는 여왕의 개념을 쓰고, 인도의 황제를 겸한다는 것은 결국 인도가 영국보다 높다는 것을 의미하고 있으니 말이다. 동아시아식 사고방식에서는, 제국을 이룬 영국의 빅토리아가 당연히 황제에 오르고, 인도의 무굴제국 황제나, 기타 어용통치자들을 '인도왕'에 봉해야 하는 것이다.
그러나 서양의 관념으로 설명하자면 '땅에도 격이 있다'라는 관념으로 이해될 수 있을 것이다. 땅 마다 격이 달라서, 어느 동네를 지배하면 거기에 따라 황제, 왕, 공 따위로 나뉘어지는 것이다. 유럽에서는 오랜 전통에 따라 로마를 점령하면 황제였다. 신성도 로마도 제국도 없었다는 신성로마제국은 참 황당한 사례이지만, 어쨌거나 관념상 그들은 로마의 지배자였다. 나중에 신성로마제국의 황제의 위가 오스트리아의 합스부르크 가문에 갔다고 해서 오스트리아가 제국의 중심이 될 수 없었다. 현실적 힘이 합스부르크 가문에 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세계에서 황제로서의 권위는 '로마'를 지배한다는 데서 나오는 것이니 말이다. 그런데 모순적 표현인 민족주의 시대의 황제들 , 나폴레옹 3세나 독일제국의 빌헬름 쯤 가면 대륙에서 이러한 개념은 조금씩 바뀌는 거 같기도 하다.
이런 것을 보면 중국의 황제 개념이 오히려 힘의 논리에 충실하다는 생각도 든다. 역대 중국왕조의 창업자들이 고귀한 귀족의 혈통이 아닌 변방의 장수나 건달, 심지어 도적 출신도 있는 것으로 보아 - 아니 창업이란 행위가 원래 그렇듯, 그 쪽이 더 많다 - 적어도 그들은 성취지위를 따낸 것이나 다름없었다. 또한 왕조가 바뀌면 모든 정치권력의 중심은 새 황제를 중심으로 다시 짜여져 황제가 선포한 근거지가 곧 제국의 중심이 된다. 한, 당대에는 낙양, 송대에는 개봉(포청천으로 유명!)이었다가 임안, 원대에는 대도(북경), 명대에는 잠시 남경이었다가 쭉 북경. 물론 황제의 권위와 실제적 힘에서도 중국의 황제들은 유럽 황제를 압도한다.
재미있게도 서양인들은 이 관념을 유럽세계에도 적용했다. 아니, 이 관념을 통해서 세게를 바라볼 수 밖에 없었는 게 당연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여하간 유럽 바깥을 둘러봐서 황제가 있는 동네는 그대로 격이 높은가보다 이해해주고, 왕이 있는 동네는 그 정도 격인가보다라고 이해를 했다. 인도야 전통적으로 황제가 있었으므로, 빅토리아 여왕이 황제로 불리는 것은 '대영제국'의 형식적 수장이어서가 아니라, 그 인도를 접수해서 인도 황위를 받았기 때문인 것이다. 재미있게도 청은 아편전쟁 직후 난징조약을 체결할 때 상대방인 영국의 빅토리아는 '왕'으로 보았다. 반면, 네르친스크 조약 당시 러시아 로마노프 조의 표트르는 '황제'로 대접했다.
2,.
통상 쓰는 대영제국이라는 표현도 사실은 동아시아 문화권에서의 고정관념에서 비롯된 오해에서 비롯된 표현이다. 본래 일본사람들이 'Kingdom of Great Britain'을 번역할 때 great에다가 大자를 대입해 만든 개념이 대영제국이다. 근데, 엄밀히 따지면 우리가 편의상 영국이라고 뭉뚱그려 인식하는 'United Kingdom of Great Britain (and Ireland)'은 잉글랜드, 스코틀랜드, 웨일즈 등 이 브리튼 섬의 왕국연합을 의미하는 것이었다. 심지어 아일랜드도 섬이 떨어져 있다고 해서. 사극을 자세히 보면 '짐은 그레이트 브리튼 및 아일랜드의 왕이노라' 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다.
그러나 일본인들이 그레이트 브리튼이라는 존재를 알았을 때, 그들은 브리튼 섬을 벗어나 이미 전 세계에 식민지를 건설하고 행패를 부리고 돌아다니고 있었으니, 일본인들의 눈에는 인도, 아프리카, 동남아시아 등의 식민지들을 모두 포함한 영역을 '그레이트 브리튼'으로 생각하고, 大英에 이어 帝國이라는 이름을 붙여버린 것이다. 이 역시 동서양의 식민지 개념 차이를 보여주는데, 서양에서 그야말로 '식민', 사람을 심고 (상당히 불공정한)무역을 하는 공간을 식민지라고 하는 방면, 동양에서는 황제에게 정치적으로 완전히 복속되어, 이른 바 하나의 국가를 이루는 그런 개념으로 받아들인 것이다. 우리가 Japan의 Colony였다고 했을 때, 서양인들이 한국인들의 맹렬한 반일감정을 별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은 제국주의 한패여서일 뿐 아니라 이러한 개념적 차이를 이해 못한 탓도 있다.
대영제국이라는 표현은 그래서 상당히 우스운 꼴이 되어버렸다. 대영제국의 수장은 여왕이니까 말이다. 서양인들의 개념을 굳이 들이대자면 대영제국이 제국일 수 있는 건 인도를 완전히 접수했기 때문인 것이었다. 제국의 정통성은 단순히 넓은 땅을 지배했다는 것이 아니라, 인도를 지배한데에서 나온다.
어쨌거나 '대영제국'이라는 번역어를 통해 우리에게 혼선을 준 일본인들, 분명 그들도 같이 혼란에 빠졌을테니 이 대목에서 졸지에 우리는 동아시아 문화권의 한 배에 있구나라는 기묘한 연대감마저 드는 것이다. 특히나, 호칭 문제에 관련한 관념과 이에 집착하는 것이 가장 닮았다. 이쯤되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건지 감이 오시는가.
3.
그렇다. 사실 이 글은 바로 일본의 황제라고 흔히 간주되는, '천황'에 대해 말하고 싶어서 쓰는 글이다. 중국의 황제는 다른 말로 천자, 즉 하늘의 아들이다. 그러나 일본의 천황은 하늘의 황제이니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천자보다도 높다. 종교적 뉘앙스까지 강하게 풍겨버렸다. 아까도 말했지만 이것은 또한 고대 일본에서의 정치적 독립의지의 표상이었다. 7세기 경 일본에서 수나라에 보낸 서신에 '해 뜨는 곳의 황제가 해 지는 곳의 황제에게 글을 보낸다'라는 구절은 이를 단적으로 상징한다. 중국에 대한 대등함. 물론 효과는 국내를 겨냥했겠지만, 여하간 본래 대왕이었던 일본의 천황은 그렇게 탄생했다. 이것이 가능한 것은 사실 지리적 위치상 중국의 압박을 덜 받을 수 있다는 데에서도 기인한다.
하지만 한국과 일본이 다른 점은 일본은 한국과 달리 '왕'이 지속적으로 통일된 정치체의 중심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12세기에 이미 가마쿠라 막부 시대가 열리면서 천황은 최소한의 종교적 권위자 정도로 그 힘이 추락했다. 역으로 현실적 힘이 없는 종교적 권위자이기 때문에 근대에 이르러 현대까지 살아남을 수 있었지만 말이다. 천황을 다시 고대의 왕 개념, 아니 더 나아가 동아시아의 황제 개념으로 부활시킨 것은 다름아닌 메이지 유신 때이다. 국왕을 중심으로 한 일원적 질서의 근대국가를 세우다 보니 천황의 정치적 권위가 부활했다만, 또한 때가 때 이다 보니 '제국'을 추진하면서 천황은 점차 중국적인 황제가 되어갔다. 그래서 순종은 왕으로 강등되고(폐위된 것이 결코 아니다. 독살되었다는 설은 있다만..), 그의 동생들은 영친왕, 의친왕 따위의 호칭을 얻는다. 친왕이란 무엇인가? 바로 중국에서 황제의 아들들, 동생들의 작위였다. 청 제국의 공친왕과 같은.
바꿔 말하자면 일본의 '천황'이라는 개념은 상당히 유동적이었다. 주몽과도 같은 고대국가의 수장. 일종의 무당, 빌헬름 1세 등과 같은 근대국가의 국왕, 종교적 권위자와 제국의 형식적 통치자라는 개념이 공존하는 천황. 패전 이후에는 다시 일종의 입헌군주국의 국왕과 같은 지위로 내려앉았다. 물론 종교적 개념이 있기는 하지만 말이다. 그러나 우리가 추석 때 제사지내는 행위가 서양인의 시각에서 보면 종교적 의례이지만, 정작 우리들은 의례적 행위보다 '관습'에 가깝듯, 일본의 신토도 그러한 측면이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정작 신토를 정치적으로 이용하는 것은 고이즈미, 아베신조 등 총리 쪽이다.)
그러나 우리는 한결같이 천황의 개념을 문자 그대로 집착해서 중국의 '황제'개념으로 본다. 그것은 오랜 동아시아 문화의 전통이 뼛속깊이 뿌리박힌 탓이다. 마치 내가, 초등학생 때 '영국의 여왕이자 인도의 황제 빅토리아'를 이해할 수 없었던 것처럼. 그러나 조금만 더 지식을 확장해 보면 굳이 그렇게 이해할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심지어, 서양에서는 황제의 개념 자체가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았던가. 문자는 문자일 뿐, 그 내용을 어떻게 구성하는 지 관심을 갖는 게 더 현명할 듯 하다.
그래서 이원복 교수는 아예 일본의 발음인 '덴노'라고 부르고 있다. 이집트의 파라오, 페르시아의 샤, 몽골의 칸과 같은 자국의 수장을 부르는 고유명사와 같은 느낌을 주기 위해서이다. 확실히 덴노라고 하기만 해도 천황이 주는 권위적 냄새는 뚝 떨어진다. 천황이라 부를 때 차이점을 느끼는 것은 우리의 감각일 뿐이지, 천황과 일왕이라는 호칭 사이 실질적인 차이는 없어 보인다.
더구나 일본의 천황 개념 역시 변하고 있다. '화려한 군주'의 저자 다카시 후지타니는, 현존하는 세계의 그 어떤 왕실보다 보수적인 동네가 일본 왕실이지만, 변화의 물결은 거스를 수 없다고 진단한다. 매스미디어를 통해 천황의 일거수 일투족이 드러나면서, 이는 천황으로 표상된 국가 권위를 국민 개개인에게 각인시키고 그들을 일본인으로 재규정하게 만들었지만 반면 베일 속에 가려진 천황의 신성성을 지속적으로 떨어뜨리는 효과를 가져왔다. 현재 일본인들도 영국인들과 마찬가지로 매스미디어를 통해 왕실을 접하고, 가십거리로 수다를 즐기고 있다. 지금 천황의 둘째 아들 아시히토 왕자의 딸 기코는 초등학생인데 피겨스케이팅 선수라고 한다. 일본에서 피겨스케이팅 선수는 연예인과 비슷한 존재라고 하는데, 왕실의 신성성이 단지 대중적 스타성으로 대치되는 것은 필연적 추세인 듯 하다.
그런데 바로 이런 추세를 가끔씩 뒤엎으며 옛 추억(?)을 환기시키는 것은 오히려 외부에서의 시선이 아닐까 한다. 정작 일본에서의 천황의 존재는 탈신성화되어가는데, 천황-일왕-왕으로도 인정하지 말아야 한다는 논리;; 등의 논쟁이 잊혀지는 천황의 신성적 존재를 되살려버리는 것이다. '황제가 통치하는 나라는 제국의 중심부이다'라는 옛 관념과 더불어서 말이다. 공략하기보다는 낙후시킨다는 격언이 정말 잘 맞아떨어지는 대상이 바로 일본의 천황인지도 모르겠다.
# by 은하 | 2007/07/10 23:00 | 역사칼럼 | 트랙백 | 덧글(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