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7년 12월 19일
모택동과 노무현 그리고 오늘
1949년 30여 년에 걸친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한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그들의 기적은 "민중의 군대는 결국은 승리한다"는 믿음을 입증한 것이라 더욱 더 환상적이었다. 그리고 이러한 기적의 중심에는 모택동이 있었다.
그러나 모택동은 집권 후 대약진 운동의 실패로 당내에서 유소기, 등소평 등에게 자리를 내어주고 만다. 권력에서 밀린 모택동의 선택은 극단적인 것이었다. 그는 당내에서 결정되어야 할 사안을 대중들을 향해 직접 터뜨렸고, 대중적 움직임이 일어나면 당내에서는 어쩔 수 없이 울며겨자먹기로 시행해야 했다. 이러한 모택동식 정치의 정점이 바로 현대 중국에게 많은 것을 앗아간 '문화대혁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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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년 노무현의 승리는 한 편의 드라마였다. 가치대립이 분명했던 선거에서 결국 젊은세대, 민주세력, 진보세력이 승리하였다는 사실은 많은 이들의 가슴을 벅차오르게 했다. 이는 한편 인터넷 세대의 대중적 역동성을 잘 활용한 결과이기도 했다.
개혁정권일 것을 자임했던 노무현이 처음 만난 벽은 강고한 관료사회였다. 관료사회는 기본적으로 안정지향을 통해서만 유지될 수 있었고, 또한 그러라고 만든 집단이기도 하다. 그러나 노무현은 관료사회의 협조를 이끌어내는 대신 시민사회와 직접적으로 대면하는 방향을 택했다. 5급사무관이 정책을 입안했던 종전과 달리, 시민사회로부터 대대적으로 인력을 수혈받아 각종 '위원회'를 만들고 거기서 의사결정을 해 버린채 관료사회에 전달하는 방식으로 나아간 것이다. 이러한 위원회 정치는 테크노크라트 지배를 극복하고 시민사회의 참여를 끌어낸다는 직접민주주의의 이상으로 정당화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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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최장집 가라사대 "국가와 시민사회가 가까워지는 것은 결코 바람직하지 못하다. 시민사회는 그 자체로 공정하고 선을 지향하는공간이 아니라 역시 헤게모니가 작동하는 공간일 따름이다." 이러한 시민사회와 국가가 직접 대면한다는 것은 결국 다음 두 가지를 의미한다. 헤게모니를 장악한 집단이 국가권력에 빠르게 침투해내려간다거나, 대중적 에너지가 대책없이 그대로 표출된다거나.
노무현 이후 5년 동안 한국사회에서는 이중적 현상이 동시에 일어났다. 탄핵반대시위가 전초전이 되기 시작해 황우석, 된장녀, 디워, 아프간사태로 이어지는 일련의 유사한 상황이 벌어지는 한편, 정책결정과 방향은 완벽하게 삼성경제연구소에게 장악당했다. 국가균형발전론은 대기업의 산업단지를 골격으로 하는 기업도시론으로 탈바꿈했고 성범죄를 막기 위해서라는 전자팔찌 역시 삼성 SDS와 함께 한다. 어느 면으로 보아도 명백한 민주주의의 퇴행이다.
국가-정당-시민사회의 구조가 아니라 작금의 국가-시민구조는 정당을 매개로 하여 의사소통을 합리적으로 조정하거나, 국가와 시민사회가 서로 견제하는 과정을 상실한 상태이다. 테크노크라트 지배는 극복되지도 않았고, 여론몰이와 바람식 정치판은 결국 이슈를 실종한 대선판으로 이어졌다. 어차피 이슈는 시민사회에서 헤게모니를 장악한 민간세력이 계속 공급할 것이다. 그러고보면 결국 평화민주진보세력의 승리라는 노무현 정권이 빠르게 신자유주의를 흡수한 것은 정치구조상 너무나 당연한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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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우리는 바로 이와 같은 구조에서 출발한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그의 이념과 공약이 아니라 한국 정치현실의 구조적 문제를 제대로 인식하느냐 여부가 우리의 미래를 바꾼다. 강자의 담론에 대한 지배를 오히려 더 묵인하는 직접민주주의가 결코 우리의 대안이 될 수 없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대의제 민주주의의 한계를 보고 그것에 염증내는 것이 아니라, 대의제 민주주의라는 제도정치를 정상화하는 것이다.
젠장 투표나 하러 가자.
+) 오롯이 내 생각이 아니라 김형종 선생님 강의와 라해와의 대화에서 비롯된 글입니다.
+) 여전히 글은 거칠기 짝이 없네요. 선거날이라 간만에.
# by 은하 | 2007/12/19 13:55 | 우리시대 | 트랙백(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