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3일
NANA에 취하다 (2)
대체로 NANA에서 가장 인기가 있는 남자 캐릭터는 혼죠 렌이지만, 나는 따로 있다. 그게 누군지는 이따 밝히기로 하고
그런데 18권을 보면서 순위가 대번에 바뀌어 버렸다.
나나 18권은 나나 시리즈 중의 중요한 결절점을 이루고 있다. 그 동안 언뜻 언뜻 던져져 이해 되지 않던 대목들, 지금까지 내내 해소되지 않는 의문들, 회상신과 관련하여 채워지지 않은 조각들. 이 모든 것을 하나로 이어주던 것은
다름 아닌 번외편, 타쿠미의 회상이었다.
타쿠미 & 레이라
세상을 향해 갓 나온 20대들의 '사랑과 꿈' 이야기. 참으로 환상적인 소재건만 그 환상적 소재로 지독하게 아픈 이야기를 만들어내는 야자와 아이란 사람은 대체 어떤 사람일까. 더욱 지독한 사실은 그 이야기가 무척 현실적으로 와 닿는다는 거다. 우리에게 꿈이란, 산너머에 있는 무지개와 같지는 않지만, 여전히 닿을 듯 말 듯 잡히지 않는 무엇, 그리고 한편으로는 눈 앞에 있는 현실. 그러나.
꿈이 이루어지지 않아서 좌절하는 게 아니라, 꿈이 이루어져서 공허하고 아프다는 이야기는 여기 NANA에서 처음 하고 있다.
타쿠미의 꿈은 레이라를 최고의 가수로 만들어주는 것. 그것은 레이라의 맑고 깨끗한 "목소리"가 먼지 자욱한 세상 속에 살던 그에게 유일한 안식처였기 때문이었다. 반면 레이라의 꿈은 타쿠미 옆에서 노래하는 것. 그것은 레이라는 결국은 "타쿠미"를 사랑하니까. 안타깝게도 둘 다 꿈이 곧 사는 이유인 사람들이다.
그러나 꿈이 아직 오지 않는 날들의 상상일 때 그것은 희망'이 될 수 있지만, 현실화 된 꿈을 계속 유지해나가는 것은 삶의 '전쟁' 때로는 '질척질척한 현실 그 자체'이다.
게다가 꿈을 이뤄갈수록, 그들의 밴드인 트랩네스터가 성공을 더해갈수록, 이들의 삶은 불행하거나 혹은 공허해진다. 레이라는 언제나 곁에 있으면서도 절대 손에 잡히지 않는 타쿠미란 존재 때문에 끝끝내 망가져가고, 타쿠미는 그런 레이라가 내는 "맑고 깨끗한 목소리"에 더 이상 마냥 구원받을 수는 없다.
사실은 레이라를 불행하게 하려고 트라네스를 만든 게 아닌데.
그러고보면 레이라도 나나 못지않게 사랑과 꿈에 집착한다. 어느 순간 사랑받기 위해 노래하고 그것만이 사는 이유가 되어버렸다. 그러나 노래하지 않고서도 받는 사랑에 눈을 떴을 때, 그것은 결국 레이라의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는다. 나나와는 달리 지독하게도 무기력해서 레이라는 또한 괴롭다.
이에 반해 "사랑같은 건 나중에 생겨. 인간은 어차피 자기 자신을 제일 사랑하니까 자신의 욕망을 보다 많이 채워주는 상대를 사랑하게 되는 거지"라고 말하는 타쿠미야말로 이 만화에서 유일하게 사랑으로 안식을 얻는 인간이다. 이런 게 사랑의 진면목이라니 참으로 얄궂다.
하지만 번외편을 보고 조금 달리 생각할 마음도 든다. 18권을 보기 전까지 내내 납득이 잘 안 되었던 타쿠미와 나나(하치)의 결혼. 타쿠미는 정작 "아이를 낳아서 타쿠미의 아이로 기르고 싶다"는 나나의 말에 흔들린 게 아닐까. 남매를 책임지지 않았던 부모, 너무도 쉽게 아이를 지워버리고 떠난 옛 여자친구, 레이라의 '목소리'에 기대지 않으면 견딜 수 없는 허무하고 공허한 인간관계의 틈바구니에서, 타쿠미는 그 순간 처음으로 자기 진짜 욕망을 확인했는지도 모르겠다. 단순한 욕정 이상의 공허하지 않은 인간관계. 그에게 설자리를 주는 사람.
꿈을 이룰수록
모든 것이 그저 현실화되어 빛을 잃어간다.
꿈을 보여주는 일임에도 얄궂다.
하지만 지금 거리에 흐르는 레이라의 가성을 들으며
구원받는 녀석이 틀림없이 어딘가 있겠지.
그러니까 부디 끊임없이 노래를 불러 줘.
원컨대 내 곁에서.
NANA는 늘 이런 식이다. 질척질척한 현실이지만 언제나 또 무엇을 그리 갈구하는지. 저 멀리 무지개도 내 손의 보물도 아니면서, 빛이 바래가는 꿈이 여전히 의마가 있다면 그것은 대체 무엇일까. 희망이자 굴레가 되는 사랑따위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
악마같기도 하지.
주인공들이 더욱 괴로움에 몸부림칠수록 수렁에 빠져들수록 나는
맑고 깨끗하지도 않은 이 혼탁한 이야기에 더더욱 빠져들고 만다.
타쿠미가 레이라의 가성에서 안식을 얻는 것처럼 말이지.
그런데 내가 가장 좋아하는 캐릭터가 누구였냐고?
그것은 다름아닌
야스였다. *ㅡ.ㅡ*
# by 은하 | 2008/01/13 00:48 | 글,만화,영상 | 트랙백 | 덧글(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