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1월 15일
李 당선자의 '수능과목축소' 핀트 참 안 맞는 정책
학생들의 부담을 줄이겠다면서 현행 7~9개인 수능과목을 4개로 줄이겠다는 李 당선자의 정책은 일본의 '여유교육' 정책과 매우 닮았다. 그러나 10여년 전부터 추진되어 온 여유교육은 현재 일본에서도 실패했다고 인정하고 있으며, 일본조차 바꾸려고 애쓰고 있다. 입시 부담은 줄이지도 못하면서 고등교육에 적응하지 못하는 '바보학생' 들만을 양산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李 당선자는 이를 알면서 위와 같은 정책을 추진하려고 하는 것일까.
입시제도의 핵심은 '상대평가'다. 더구나 명문 대학에 들어가지 않으면 안 되는 철저한 학벌사회에서 수능 과목이 줄어봤자 결코 부담이 줄어들지 않는다. 수능과목이 줄어봤자 모두에게 공부할 거리는 주는 대신 '남보다 기필코 앞서야 한다'는 명제는 결코 변하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과목 수가 적은 만큼 한 과목을 다 맞아야 한다는 부담감은 배로 커질 것이고, 선택과목의 난이도에 따라 희비가 교차하는 등 '공부 외적 요소'까지 신경써야 하는 스트레스는 더욱 커질 것이다. 점수제가 아닌 등급제에서 그 부작용을 이미 확인하지 않았던가.
이렇듯 수능과목축소가 결코 입시부담을 줄이는 데 기여를 하지 못하는 반면, 중고교교육은 물론 대학교육까지 미치는 부정적 영향은 무시할 수가 없다. 일본에서도 여유교육의 폐해를 단적으로 드러내는 말이 '기초 생물도 모르는 의학도'였다. 수능과목축소라 하면 언어,외국어,수리 외에 사/과탐 영역에서의 선택과목을 축소하는 것일 것이다. 그러나 이게 실현된다면? 국민의 태반 이상이 국사를 모르고, 우리나라 땅에 뭐가 있는지 지리도 모르고, 경제학과 학생이 미적분도 모르고, 공대생이 기초화학, 기초물리 이런 것도 모르고. 대학에서 교양수업을 진행하려고 해도 학생들이 전혀 못알아듣기 때문에 수준을 대폭 낮추어야 하고(실제 요즘 대학에서 벌어지는 일들이다), 전공지식조차 학생들이 따라가기 힘들어서 고교 수준의 내용을 다시 가르쳐야 하는 이른 바 '대학교육'까지 흔들리게 만드는 일인 것이다. 한 마디로 국민들의 교양수준도 전공수준도 함께 '다운그레이드'시키는 정책이며 이 모든 것은 이미 일본에서 현실화 되었다.
미래의 경쟁력은 창의력이라 한다. 창의력은 여러 가지 다양한 지식과 경험 속에서 나오는 것이지, 한 과목만 열심히 파 들어간다고 생기는 게 아니다. 더구나 대학교육은 학문간을 넘나다는 연계를 중요시하면서 고교교육은 '우물 안 개구리'를 만들어버린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또한 복잡한 현대사회에서는 인문계를 나온 사람이라도 누구든지 과학기술에 대한 기초적 식견이 필요하고, 이공계 출신이라도 정치, 경제 등의 기본 지식을 알아야 당당히 시민으로서 권리를 지키며 살 수 있다. 나는 인문계 출신이지만 고등학교 때 배운 생물 지식이 지난 황우석 사건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대운하에 관해서는 한국지리시간에 배운 '하상계수' 개념을 통해 비판적으로 접근하고 있다. 이렇듯 다양한 분야의 기초지식이 있어야만 현대사회를 이해할 수 있고 비판적 식견도 가능한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단지 눈 앞의 인기도에 급급하여 현대사회에 필요한 정책을 역행하는 처사는 옳지 않다. 혹시 정권에 대한 비판적 사고를 마비시키기 위함이란 말인가.
입시부담은 줄여야 하지만 그 방법이 수능과목축소는 아니다. 지금의 입시지옥의 근본은 "누구나 명문대학에 가지 않으면 안 되는" 세상이라는 데 있다. 지금 필요한 것은 공부를 정말 하고 싶은 사람은 대학에서 마음껏 어려운 공부를 하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은 대학에 가지 않고서 기술이나 예능 쪽으로 뛰어들어도 자기가 열심히 살면 존경받고, 먹고 살 수 았는 환경이다. 이는 지구상에 존재하지 않는 꿈의 이상향도 아니고, 기술 마이스터가 존경받는 독일이나 스위스, 하다못해 3대가 라면집만 잘 해도 인정받는 일본에서도 일상적인 일이다. 정작 당선자는 자립형 사립고로 고교교육까지 서열화 시키려고 하고, 비정규직은 늘려만 가고, 젊은이들이 쉽게 접근하여 기술을 익히고 자립하게 할 수 있는 중소업체보다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을 펼치려고 하면서. 얄팍하게 수능과목수로 입시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격이다.
이해찬 시대의 '한 가지만 잘해도 대학간다'는 한국의 입시문제의 근본을 이해하지 못한 근시안적 책이었다. 수능과목축소는 허경영의 공약이기도 했다. 이미 한국의 입시부담은 '입시제도' 차원에서 아무리 가위질을 해 봤자 되지 않음을 경험으로 충분히 확인했다. 이제 마인드를 바꾸는 것이 어떨까. 진짜 입시부담을 줄이고 싶으면 자사고 정책과 대기업 중심의 경제정책, 억압적 노동정책부터 한 번 되돌아보라. 괜스레 국민들의 교양과 전문성을 동시에 깎아먹지 말고.
여기까지가 미디어 다음 아고라에 쓴 버전.
공부란 것이 삶을 진정 윤택하게 만들어줄 수 있다는 생각은 공부 잘 하는 이들이 모였다는 고등학교나 대학의 친구들이 아니라 오히려 초등학교, 중학교 때 친구들을 보면서 했다. 국사교과서를 뒤적거리며 안중근, 안창호, 윤동주...등 잘생긴 위인을 찾아내며 하악하악하고, 생물시간에 딸세포는 있는데 왜 아들세포는 없냐면서 엉뚱한 소리나 하고, 광개토대왕이랑 이순신이 싸우면 누가 이길지나 상상하고, 학교 앞 분식집에서 하나 남은 떡볶이 양보하면서 한다는 소리가 '나는 야위고 너는 살찌워야지', 한 때 히트쳤던 '한 권으로 읽는 조선왕조실록'을 가져와 후궁이 가장 많은 왕 랭킹이나 세우고 있고 (1위는 성종이고, 자녀 수 1위는 세종이었다-.-;), 국사선생님이 삼국유사에 실린 지증왕의 야사를 들려주니까 그 다음날 어떤 녀석 별명이 바로 '지증왕'이 되어버리고, 대체로 교과서 및 수업시간에 배운 것들을 이용해서 한다는 짓은 이처럼 쓸데없는 짓 투성이었지만, 돌이켜보면 반짝이는 아이디어란 항상 그러는 와중에 나왔었다. 그러면서 일본군의 생체실험 이야기를 들으며 분개하기도 하고, "우주의 끝은 어디있는가?"라는 질문이 나오기도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 재미있었다. 이 이상의 가치가 어디있겠는가.
공부 자체가 재미없는 것은 아니었다. 공부를 재미없게 만드는 세상이 더 큰 문제인 것이다. 이렇게 중학교 때까지만 해도 공부를 가지고 '놀 줄 알았던' 친구들은 대체로 고등학교를 거치면서 공부에 흥미를 잃어버렸고, 때로는 웬수가 되기도 했다. 그런 상태가 대학에 와서도 이어진다. 정말 안타까운 일이다. 정부가 여기에 대해 끊임없이 엇박자 정책을 내 놓는 것은 이제 안타까움을 넘어서 짜증스럽다.
이 재미있는 걸 이렇게 재미없게 만들었으니 이것보다 더 큰 사회악도 없겠다. 그리고 그 재미를 다시 돌려주었으면 좋겠다. 이미 우리들의 코스를 밟고 있을 후배들에게. 이명박이가 수능과목 줄여봤자, 재미없는 새벽별보기 운동은 그대로일 그 녀석들에게.
# by | 2008/01/15 11:30 | 우리시대 | 트랙백 | 핑백(1) | 덧글(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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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먹고도 만족하고 있는 건 아닌지.” 아침에 문을 나서시며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사람은 하루 두 끼를 먹으면 충분한 줄 알았는데, 아닌갑다. 李 당선자의 '수능과목축소' 핀트 참 안 맞는 정책 “사전을 찾아보니 타소가레(たそがれ)는 '황혼(黃昏 해질녁)'이란다. 영화자막에 주욱 '사색'이라고 나와 있어서 타에코가 해지는 걸 ... more
아, 정말 다른 사람들도 아니고 자기 자식들이고 손자들인데...가슴이 아프지도 않나?
아무튼 이명박 때문에 이제는 국사시간에 로마인 이야기와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를 논하고 국어시간에 조정래의 작품을 이야기 해주고, 수학시간에는 필즈상의 뒷야사를 이야기 하던 재미 있던 수업시간들을, 모두 사라지게 될 것 같네연......
저는 이런 생각이 있어도, 이만한 글로는 표현을 못해냅니다..
그래서 항상 제 자신에게 아쉬운데..
정말 멋진 글입니다..
은하님 생각에 전적으로 동의합니다...
은하님 화이팅-
잠 못 이루는 새벽녁에 선물이 됐어요~ ^^;
그리고 아직 구상단계에 불과한 MB의 교육정책에 대해서는...
구체적으로 어떤 교육정책을 선택하건,
신자유주의의 화신인 MB가 자기모순을 범하지 않는 한
학생과 학부모의 부담을 줄이는 교육정책은 나올 수 없다고 생각합니다.
근데... 교육인적자원부를 인재과학부로 바꾸고
고교다양화라는 명목으로 자사고 100개, 기숙형공립고 150개, 마이스터교 50개 만들고
벌써부터 학원가가 축제 분위기인 걸 보면..........
아직 아무 것도 확정되지 않았다는 것만이 가장 기쁜 소식일 듯 해요. ㅡㅡ
암튼!! 돌아오셔서 감사합니다. (응?)
비공개//그냥저냥 글 쓸 정도로 지내고 있습니다.^^
핀투리키오//인생에 가장 좋을 10대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하다 불현듯 입시! 생각에 그래도 20대 초반이 좀 더 낫구나-_-;;; 라는 생각을 자주 합니다. 부담을 줄이기 위해 과목을 줄인다는 것은 역설적으로 정부 스스로가 공부는 오직 입시만을 위한 것이라는 걸 반증하는 셈인데 말이에요.
소금인형//오우 왠지 색다르게 반갑;ㅋㅋ 근데 대체로 저보다 훌륭한 일들을 하셨군요. 전 시 패러디나 하고 그랬는데..ㅜㅡ
자그니//으응? 돌아온건가요?^^;;
실땅//저도 늘 자신에게 아쉬운데요 뭘.^^; 생각해보면 이렇게 글쓸거리도 제공해주는 사람들은 평범한 일상 속에서 쓸데없는 짓 하며 만난 친구들이었네요.
흰우유//아아 이렇게 비행기 태우시면 몸둘바가 ;;;;; 아무것도 확정된 게 없다는 게 가장 기쁜 소식...너무 동감가는데요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