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2월 03일
당원 혹은 시민의 고백
1.
대학시절 아무리 사회문제에 열을 올리고 변화를 꿈꾸더라도, 직장인이 되면 자신을 둘러싼 현실적인 문제에 몰두할 수 밖에 없다. 그 점이 무척 싫었다. 어떡하면 벗어날 수 있을까? 고교시절 답인 줄 알았던 시민운동은 시간적으로나 물질적으로나 여유있는 중산층 이상의 계층이 되지 않으면 어렵다. 이런 젠장 !
그나마 거기에 희망을 준 것이 2004년의 민주노동당이었다. 한 달에 1만원(학생은 5천원)만 내고, 당내 선거에 몇 번 참여하는 것은 그다지 부담스러워 보이지 않았다. 막상 당원이 되고 보니 그 선거란 게 생각보다 엄청 많긴 했지만 말이다. 더욱이 의회정치에 기반을 둔 정당활동이야말로 한국사회를 보다 근본적으로 바꿔나갈 수 있는 길이라 생각했다. 단순히 법제적 해결에 대한 접근성이 높다는 것 뿐 아니라, 정당정치란 지속적으로 사회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시스템'을 만들어가는 과정이니 말이다.
그래서 나는 당에서 '당원 교육을 강화해야 한다', '당원의 참여를 독려해야', '당원들의 지역모임 활성화' 이런 말들을 아주 싫어한다. 이봐들, 나는 까놓고 말해서, 돈만 내고 몸은 안 움직이더라도 뭔가 변화에 동참하고 싶어서 당원이 된 거라규 ㅠ_ㅠ
어쨌거나 2004년의 민주노동당은 이러한 희망을 걸기 적합했다. 그리고 박찬욱과 문소리가 커밍아웃 한 것처럼, 민주노동당 당원이라는 것은, 일상 속에서 이상을 병행할 수 있는 시민적 삶을 살고 있다는 자부심이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평범한 시민적 삶을 누리고 싶은 당원은 압박에 시달리게 된다. 당은 당원을 동원하려고만 했다. 일방적인 목소리만 전달하는 기관지, 누가 누군지도 모르는데 자꾸 형식적으로 동원되는 것만 같은 선거. 내 뜻과 상관없이 굴러가는 당 지도부. 그리고 무엇보다 당 차원의 많은 삽질들.
당원은 이제 일상을 억압하는 압박 그 이상을 느꼈다. 내가 당원이라는 사실이 더 이상 전혀 자랑스럽지 않다는 부끄러움 혹은 자괴감. 2007년 대선은 그 절정을 찍었다고 보아도 좋을 것이다.
2.
이렇게 쓰고보니 나는 마땅히 신당을 지지해야 할 사람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렇지 않았던 건 정작 당원이 된 나의 근본적인 동기 탓이다. 일상적인 시민적 삶을 살면서도 진보적 이상을 함께 하고 싶다. 여기서 방점은 '일상적인 시민적 삶'에 있다. 나는 결국은 정치운동보다는 어디 쳐박혀서 공부하는 쪽이 그래도 더 좋았다.
새 진보정당 창당 움직임이 일어나도 결코 적극적으로 나서지도 않을 거고, 기껏 해 봐야 '돈만 내는 것' 정도일 것이다. 나의 일상을 위협하는 수준의 활동은 싫다. 졸업생이 되니 더더욱 그런 걸 느낀다. 그러니 민주노동당이 쌓아올린 그 물적기반과 토대를 모두 버려두고 맨땅에서 하는 헤딩을 '지는 안 할 거면서' 무책임하게 동지들더러 떠넘길 수 있겠는가. 그것도 편안한 방구석에서 쳐박혀 키보드나 두들기면서 말이다. 이건 너무나도 무책임하다.
물론 정작 신당을 추진하는 입장에서는 이리 말할지도 모르겠다.
"지가 직접 NL과 안 싸운다고 무책임하게 그냥 동거하자 하다니."
하기사, 지금과 같은 나의 상태라면 혁신 내에서도 내가 뭘 할 수 있단 말인가.
3.
그러니까 도의적 혹은 정치공학적 고민을 떠나서, '시민으로서의 나의 욕망'을 생각해 볼 때, 나는 그냥 쓸 만한 정치인 후원자나 하면 딱인 그런 사람인지도 모르겠다. 진보정당 당원이 어디까지 해야하는 지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지금 민노당의 방식이 당원의 의무라면 난 차라리 안 해.
그래서 지금은 솔직히 난 '심상정 후원자'라는 심정으로 당에 남아 있다. 혁신이냐 분당이냐 기로에서 나의 선택의 기준은 어처구니 없게도 이런 거다. 물론 나 자신에게는 더없이 솔직하다고 말 할 수는 있고, 나는 여기까지인 사람인 것이다.
하지만 당의 미래. 한국의 진보정치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정작 여기에서 나는 별다른 답을 할 수가 없다. 팩트에 대한 차원으로 넘어가는데, 이 사람 말을 들으면 이 사람 말이 옳은 것 같고, 저 사람 말을 들으면 저 사람 말이 옳은 거 같다. 뭘 하건 나의 일상적 삶이 침해받지 않는 수준에서 운신할 궁리나 제 1순위로 놓는 나는 나의 행동은 결정할 수 있어도, 어찌해야 한다고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거의 침묵을 지켜왔다.
4.
그러나 만약 일상적 삶을 침해받지 않는 차원에서 무언가를 할 수 있다면 선택의 기준은 명확하다. 그건 일단 살아남는 쪽이 강한 거다. 아마도 한 달에 1만원을 어디에 낼까 차원의 고민일지언정 2004년의 민주노동당처럼 나에게 자부심을 주는 공간이 있다면 나는 주저없이 그 곳을 택할 것이다. 정치인 후원자 정도가 적성에 맞는 포지션이라면 그런 희망을 주는 정치인을 배출하는 곳을 따라갈 것이다.
그렇게 살아남는데 줄을 서는 행위를 할 지언정
희망은 버리지 않고 있다.
전사 내지 혁명 동지가 아니라 보다 진보적인 사회를 꿈꾸는 평범한 시민인 나와 대화할 수 있는 곳이 있다면, 딱 그 위치에서 함께 할 거라고. 부끄러운 당원. 아무것도 주장할 수 없지만, 아무것도 판단할 수 없는 건 아니니까 말이다.
나는 내가 생각하는 이상적 시민의 삶을 함께 할 수 있는 그런 정당을 원한다.
# by | 2008/02/03 21:19 | 희망의 상상력 | 트랙백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