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4월 24일
경영과 CEO형 리더십
교생실습 나간 교대 다니는 친구가 '학급경영론'에 관한 레포트를 쓰고 있다. '교육론'이나 '교수방안', 하다못해 '운영방안'이라고 써도 괜찮을텐데, 굳이 '경영'이라는 말을 써야 하겠냐고 입을 비죽거린다. 유행은 교육계라고 피해갈 수 없나보다고 쓴웃음을 지었지만, 사실 지금 이 현실에서는 틀린말이다. 지금 교육계야말로 대한민국의 '경영' 유행을 선도하고 있는 거나 다름없으니까.
경영 이전에 'CEO형 리더십'이란 말이 먼저 히트를 쳤다. CEO형 리더십은 90년대 후반무렵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 전부터 유행했었으나, 내가 세상에 관심을 가진 무렵이 그 때 쯤이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갰지만.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당시 위대한 것들은 모두 CEO에 비유되곤 했었다. 급기야 <인류 최고의 CEO. 예수>, <CEO 퀸 엘리자베스>등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기록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CEO형 정치가, CEO형 총장, CEO형 가장...이제는 급기야 교장마저 CEO가 되고 별의 별 것이 CEO의 경영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에 'CEO형 리더'라는 개념은 낡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CEO는 억압적인 군부정권이나, 낡고 비합리적인 연고주의적, 가부장적 질서와는 상반되는,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창의적이며, 강한 도전정신을 지녔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른 바 슘페터가 주장하는 서구의 '기업가 정신'의 전형이다. 90년대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구태의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CEO는 낡은 것과 안녕을 고별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386 세대들이 그 누구보다도 재빨리 CEO 담론에 흡수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박정희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는 모두 선이라 여기는 2분법 논리하에서 CEO 담론은 이미 괴물이 되어버릴 준비를 했던 거 같다. 정치계, 교육계마저 너도나도 CEO 담론을 흡수하던 당대 분위기에 왜 비판적인 흐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이념문제와 같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어째서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경제적 실용주의가 봉합의 카드로 떠올랐는지 당시의 분위기는 알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경우는 CEO(라기 표현하기 어려운 재벌총수이지만;;) 조차도 권위주의적이었다. '성공한 남자의 신화'라는 베일은 이들의 오만을 덮어주고, 97년 이후 가속화된 경제지상주의에서 CEO는 이미 그 신념을 떠나 그가 지닌 돈만으로도 추앙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제 급기야 대통령이 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회사는 조직 내부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조직화된 집단이고, 국가는 이해관계가 다양한 그런 집단들이 대책없이 싸우지 말고 공존 좀 해 보자고 만든 집단인데, 초보 고시생 친구만 되어도 알 수 있는 이 사실을 정부는 대책없이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이 시대의 CEO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인화된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말이지. 주식회사는 지분의 배당에 따라 주주들을 차별대우하니, 나름 스스로의 행태에 솔직해서 좋다만, 자랑스러워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식을 무식인지 모르고, 잔인이 잔인인 줄도 모르니 대체 손 쓸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정경유착 얘기가 CEO형 리더 담론에 가려져 쏙 사라져버렸다. 이제 정치가 당연하다는듯이 경제의 품에 안긴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권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었던 것이 90년대 말이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라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슘페터가 환장할 노릇이다. 이 혐오스러운 경영의 시대에 허경영 감옥보내는 거 말고 다른 해법을 찾아내면 안 되겠니.
경영 이전에 'CEO형 리더십'이란 말이 먼저 히트를 쳤다. CEO형 리더십은 90년대 후반무렵부터 유행하기 시작했던 거 같다. 그 전부터 유행했었으나, 내가 세상에 관심을 가진 무렵이 그 때 쯤이라 이렇게 기억하고 있는지도 모르갰지만. 하지만 분명히 기억하는 것은, 당시 위대한 것들은 모두 CEO에 비유되곤 했었다. 급기야 <인류 최고의 CEO. 예수>, <CEO 퀸 엘리자베스>등과 같은 책들이 베스트셀러에 기록된 것으로 기억한다. 그리고 CEO형 정치가, CEO형 총장, CEO형 가장...이제는 급기야 교장마저 CEO가 되고 별의 별 것이 CEO의 경영대상이 되고 말았지만,
처음에 'CEO형 리더'라는 개념은 낡은 권위주의적 리더십에 대한 반대개념으로 등장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CEO는 억압적인 군부정권이나, 낡고 비합리적인 연고주의적, 가부장적 질서와는 상반되는, 자유롭고, 합리적이고, 창의적이며, 강한 도전정신을 지녔다는 것을 함의하고 있었다. 이른 바 슘페터가 주장하는 서구의 '기업가 정신'의 전형이다. 90년대가 정치적으로 민주화를 이루었음에도, 사회의 많은 부분에서 구태의연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었던 것을 감안하면, CEO는 낡은 것과 안녕을 고별하는 말이기도 했다. 그래서 386 세대들이 그 누구보다도 재빨리 CEO 담론에 흡수되었던 것이 아닐까.
그러나 박정희 체제에 대한 안티테제는 모두 선이라 여기는 2분법 논리하에서 CEO 담론은 이미 괴물이 되어버릴 준비를 했던 거 같다. 정치계, 교육계마저 너도나도 CEO 담론을 흡수하던 당대 분위기에 왜 비판적인 흐름이 보이지 않았던 것일까. 이념문제와 같은 한국사회의 구조적 갈등을 해결하는 데에 어째서 '돈만 많이 벌면 된다'는 경제적 실용주의가 봉합의 카드로 떠올랐는지 당시의 분위기는 알 수가 없다. 설상가상으로, 한국의 경우는 CEO(라기 표현하기 어려운 재벌총수이지만;;) 조차도 권위주의적이었다. '성공한 남자의 신화'라는 베일은 이들의 오만을 덮어주고, 97년 이후 가속화된 경제지상주의에서 CEO는 이미 그 신념을 떠나 그가 지닌 돈만으로도 추앙받는 존재가 되어버렸다.
이제 급기야 대통령이 나는 대한민국 주식회사의 CEO 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회사는 조직 내부가 하나의 목표를 위해 일사분란하게 움직이도록 조직화된 집단이고, 국가는 이해관계가 다양한 그런 집단들이 대책없이 싸우지 말고 공존 좀 해 보자고 만든 집단인데, 초보 고시생 친구만 되어도 알 수 있는 이 사실을 정부는 대책없이 외면하고 있다. 더구나 이 시대의 CEO란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면 우선이라는 가치관이 인화된 존재가 되어버렸는데 말이지. 주식회사는 지분의 배당에 따라 주주들을 차별대우하니, 나름 스스로의 행태에 솔직해서 좋다만, 자랑스러워할 필요까지는 없는데. 무식을 무식인지 모르고, 잔인이 잔인인 줄도 모르니 대체 손 쓸수가 없다.
그러고보니 정경유착 얘기가 CEO형 리더 담론에 가려져 쏙 사라져버렸다. 이제 정치가 당연하다는듯이 경제의 품에 안긴다. 부정부패를 저지른 정치권에 대한 비난여론이 거세었던 것이 90년대 말이었던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라도 이런 아이러니가 없다. 슘페터가 환장할 노릇이다. 이 혐오스러운 경영의 시대에 허경영 감옥보내는 거 말고 다른 해법을 찾아내면 안 되겠니.
# by | 2008/04/24 02:41 | 발견 | 트랙백 | 덧글(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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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고보니 정경유착 얘기가 CEO형 리더 담론에 가려져 쏙 사라져버렸다. 이제 정치가 당연하다는듯이 경제의 품에 안긴다.
아이디어 얻어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