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05일
5월 2일 집회 후기
★ 5월 2일 7시 청계천, 아마추어들의 집회
청계천 1만 5천개 촛불, 희망 밝혔다
처음보는 집회였다. 1만 여개의 촛불은 청계천을 가득 매워 흐르는데, 깃발이 없었다. 집회라면 응당 있어야 할 지도부의 일사불란한 지휘와 정해진 8박자의 구호, 준비된 연설과 문예공연이 없었다. 지나가는 시민들의 발길을 자연스럽게 잡아끌고, 학교 수업을 마치고 교복을 입은 채로 달려온 중고등학생들이 무리없이 끼어들 수 있었던 그런 무대였다. '너나먹어 미친소', '조둥동은 찌라시' 등 통상의 집회라면 상상할 수 없었던 날 것 그대로의 구호가 즉자적으로 터져나왔고 그 또한 종잡을 수 없이 바뀌기도 했다.
때로는 무엇을 해야 할 지 몰라 시민들은 애국가를 부르기도 했고 때로는 아침이슬을 부르기도 했는데, 그 비장미가 영 이 소풍같은 집회의 분위기와는 맞지 않아 함께 비장해져야 할 지, 웃어야 할 지 난감하기도 했다. 이 집회, 완전 아마추어들의 집회다. 아마추어리즘의 건강함과 어설픔이 뒤섞여 있었다. 아마추어들은 낯선 이 자리에서 익숙한 경험을 끄집어 내어 버텨보고자 안간힘을 썼다. 87년 6월, 2002년 6월 월드컵, 2004년 4월 탄핵. 어이, 그런데 이거 미국 쇠고기 반대 집회잖아.
그러나 확실히 느껴진다. 이런 집회의 경험도 없는 사람들이, 어떻게든 무언가는 지켜내고자 애쓴다는 것을. 그 방법이 어떤 기억에 의존하건 말이다. 대체 누가 시민들을 이토록 절박하게 만들었단 말인가.
★ 아마추어, 드디어 정치를 거론하기 시작하다.
나도 대학가고 애낳고 결혼하고 싶어
교복부대 엄마사단이 촛불 들었다.
미국 쇠고기 반대여론의 과열된 분위기를 지적하는 의견도 조금씩 올라온다. 여당과 보수언론의 음모론은 차치하고 말이다. 2002년에 붉은 악마였던 사람들이 2005년에는 황빠가 되고 2007년에는 심빠가 되고, 2008년에는 안티이명박이 되었다는 말이 있다. 틀린 말만은 아니다. 인터넷상에서 과열된 여론, 사회적 불만이 특정 이슈를 통해 한꺼번에 표출되는 점, 의사표출에 있어서 집단주의적 성향 등 적지 않은 요소가 닮았다. 쇠고기 수입 반대가 아닌 무작정 탄핵을 외치는 목소리에서, 결국 이러한 과열된 분위기에 의해 또 다시 패배할 것을 두려워하는 걱정도 무리는 아니다.
하지만 정작 인터넷을 벗어난 집회 현장의 분위기와 일상 생활에서 감지되는 변화를 보면 이것 역시 진실은 아니었다. 앞선 일련의 사건들과 다른 근본적인 변화가 기층에서 느껴진다. 운동권과 거리가 멀었던 친구들이 집회에 왔다. 평소 정치에 관심이 없어 보이던 사람들이 촛불을 들고 있다. 심지어 대선과 총선때 투표조차 하지 않았던 그 바보같고 무관심한 20대들이 연단에서 소리지르고 있다. 그리고 하나둘씩 의문을 던지고 있다. 우리나라가 왜 이렇게 된 건지. 쇠고기 수입되면 뭐가 문제인 건지. 일상에서 이번만큼 주변 사람들과 정치 이야기 많이 해 본 적이 없다. 집시법이 이렇게 이슈가 된 적이 없다.
정치의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정치화하고 있다. 10대들, 20대들, 엄마들, 먹거리와 건강의 위협이라는 문제 앞에, 국민들은 일상과 정치의 연관성을 직감적으로 체득했다. 그래서 이번만큼은 영웅을 찾는 게 아니라 정치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다. 그 정치적 해결방식이 '탄핵'이라는 점이 유감스러워 보이지만, 탄핵은 사실 수사에 지나지 않는다. 전국민이 가장 잘 아는 정치적 심판수단이 하필 '탄핵'인 까닭에 선택된 것 아닐까. 아이러니하게도 탄핵 제도를 널리 홍보한 사람들은 한나라당이건만.
대중들은 할 만큼 하고 있다. 과열된 분위기를 아직 안심할 수 없지만, 적어도 스스로 공부해간다. 우리나라 집시법의 문제, 정부의 여론무마전략, 효과적인 대응전략. 결국은 5월 6일에는 촛불 침묵시위를 한다고 한다. 정치적으로는 수동적이고 무관심하다고 여겨지던 젊은층은 이 일을 계기로 오히려 가장 거센 분노를 보여주고 있었다. 결국 지난 선거의 낮은 투표율도 이들의 분노를 결집시키지 못했을 뿐. 뒤늦은 아쉬움과 후회 더미 속에서도 희망은 자라나고 있다.
★ 전문가 집단은...
이명박 정부 쇠고기 협상 결과 은폐했다
시민들이 자발적으로 촛불집회를 하는 동안, 민변에서는 정부의 쇠고기 협상 결과 은폐에 대해 위헌소송을 제기한다는 소식이 들려온다. 반가운 일이다. 국민들이 분노를 표출한다면 전문가 집단에서는 그 분노를 표출하는데 적절한 언어를 제시하고, 법제적 해결을 준비할 수 있어야 한다. 여론을 존중해야 하지만, 여론에 따라 정책이 멋대로 바뀌지 않아야 또한 제대로된 국가라고 할 수 있을테니까. 그러지 않고 막연히 여론의 우세함만 믿고 가다가는 반드시 진다.
★ 한나라당 여기는 전략기획실도 없나
불에 기름부은 한나라당 좌파배후론
할 말이 없다. 국민을 무시하는 것도 정도가 있지.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쪽은 오히려 집권여당이다. 국민들은 자신들의 삶에 위험을 가져올지도 모르는 일에 최소한의 안전장치도, 절차적 투명함도 없이 정책을 결정하는 정부에 대해 분노한 것이다. 최소한 삶을 스스로 선택하고자 하는 몸부림이다. 이를 무시하는 한나라당은 지금 민주국가의 존재 의미를 망각하고 있는 것이다.
★ 앞으로 우리
미 쇠고기 반대 촛불집회 경험자의 충고
미디어다음 블로거 뉴스로 발행된 글이다. 이보다 더 잘 쓸 수 없겠다 싶을 정도로 일목요연하게 잘 썼으니, 향후 촛불집회에 참여하실 사람들은 꼭 읽어보았으면 좋겠다.
5월 6일 8시~12시 1분, 여의도 국회 앞 광장에서 촛불침묵시위가 열린다. 시민들은 정부의 선동에 놀아나지 않고, 평화시위를 폭력시위로 유도하려는 전략에도 넘어가지 않고, 꿋꿋하고 지혜롭게 비폭력 무저항 노선을 택하고 있다. 이는 가장 조용하고 부드러운 집회가 될 터이지만, 그 정치적 태풍은 그 어느 때보다 강력할 것이다.
아마추어들의 반란은 이제 시작이다.

# by | 2008/05/05 06:10 | 우리시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5)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제목 : 덧대는 메모 둘
0. 이 포스팅은 네 칸 아래 포스팅의 가벼운 보론이다. 1. 촛불을 들고 나선 싸움 중 큰 판은 지금까지 두 번 있었다. 2002년에 한 번, 2004년에 한 번. 둘 다 이겼다. 그렇다면 이번에도? 쉽지는 않다. 저때에 견줘 기세가 모자라단 느낌은 안 든다. 더욱이 현정권은 '좌파의 책동'이니 '불법집회 사법처리'니 하는 연이은 삽질로 촛불에 기름까지 부어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쉽지는 않다. 2002년에는 대선이 있었고, 2004년에는 ......more
... 흔적은 교복부대와 산책하듯 나선 시민들이 대신 채웠다. 그리고, 경계만 없을 뿐 아니라 향후 전망은 켜녕 그 날의 정해진 일정도 없다는 사실을 얼마 지나지 않아서 알아버렸지만.( 그 날 후기 )그 날 집회에는 애국가가 울려퍼졌다. 보수단체 집회도 아니고 애국가라니 황당한 일이었지만 원래 정해진 게 없을 때에는 하던 걸 하게 되어있는 법이다. ... more
아마추어들의 집회라는 점에서 신선하고 재밌다가도,
이런 바람이 어떤 영향과 지속성을 남길지 계속 고민도 되고...
이런 자발적 집회를 보면서도 즐거워하지 못하고
희망을 많이 보지는 못하는 제가 너무 비관적인 건지;;
차라리 저한테 청와대 대변인이나 한나라당 당직 맡겨줬으면 저정도로 치졸하게 대응하지는 않았을겝니다 ㅎㅎㅎ
달//아뇨. 이 분위기에선 차분하게 절망할 사람이 꼭 필요합니다.^^ 트랙백 봤어요.
관율//파워는 무신 ㅋㅋ 조용히 산 지가 얼만데 ㅋㅋ 글 재밌었어요. 역시 오빠의 기자질이란 세상을 더 재밌게 하는 길
keropark//으하하 그거 동감인데요?ㅋㅋ 한나라당이야말로 아마추어인가 정말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