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과율

부처의 가르침의 핵심에 '인과율'이란 것이 있다. 세상의 모든 일들은 원인과 결과의 관계로 얽혀있으며, 원인 없이는 그 어떠한 결과도 일어나지 않는다는 원리. 단순한 가르침이지만 그 가르침 속에 들어있는 모든 사물에 대한 엄격한 책임감의 무게를 생각해보면 이처럼 섬뜩한 가르침이 없다.

최고의 권력자가 될 수 있는 운명을 박차고, 만물의 상생과 공존을 주장했던 부처님이 오신 날, 나는 뉴스를 통해 끔찍한 한 장의 사진을 보았다.

사진출처: http://cynews.cyworld.com/Service/news/ShellView.asp?OrgLinkID=221&LinkID=4&ArticleID=2008051215355753218

AI 확산을 막기 위해 닭, 오리 등 가금류를 강제 살처분 하는 장면인데, 저렇게 살아있는 생명을 자루에 넣어서 매몰하는 방식인 줄은 처음 알았다. 따지고보면 조류독감도 인간이 가금류를 좁은 우리에 비위생적 환경으로 가둬놓고 길러서 생긴 일인데, 또한 인간의 생을 보전하기 위해 강제로 생명줄을 끊어놓는다는 것이, 어떤 방법이 되었건 커다란 업이 되지 않을 도리가 없다. 그러나 어쩔 수 없는 일이다라도, 응당 죽음을 앞둔 생명의 절규에만큼은 공명할 줄 아는 것이 인간이 또 다른 한 생명으로서의 도리일진데, 그 조차 외면하는 거 같다. 이미 이런 현실을 외면하고 무의식적으로 닭과 오리를 뜯은 우리들은 외면이라는 이름의 폭력을 저질러 온 우리들이 무지의 이름으로 공범임을 회파히긴 어려울 것이다. 외면은 폭력을 방치하는 폭력이다.

자연의 철새들도 조류독감에 걸린다고 한다. 그러나 이들은 자연적 면역력으로 병을 이겨내기도 한다. 문제는 축사에 갇혀서 운동도 못하고 수천마리씩 집단으로 거주하는 닭이나 오리들이 병에 걸렸을 경우다. 면역력이 약한 이들의 경우 병원체는 고병원성 AL로 진화하여 치명적 결과를 자아낸다.

방역당국에 대한 비난의 목소리가 크다. 특히 애초에 재래시장에서의 가금류 거래를 통제하지 않아 AI의 전국확산을 키웠다는 것이다. 그러나 어떤 종류의 사후적 대책도 100% 안전을 보장하기는 어렵다. 그래서 우리는 광우병 위험 쇠고기에 그렇게 반대하는 것이 아닌가. 문제의 근원은 무절제한 고기소비와 인간의 근시안적 편익과 이윤만을 위해 설계된 축산업인데 아직은 아무도 건드리지 않는 거 같다. 그래 당장은 방역이 중요해 보인다. 그러나 이 처참한 살풍경이 지나갔을 때 또 다시 인과율에 얽혀 죽음의 행진을 하고 싶지 않으면 무엇을 처방해야 하는지 자명하다.

이 세대가 분명 받지 않더라도, 후손들이 결코 비껴갈 수 없다는 것이 인과율의 무서움이다.
인간의 잘못으로 병이 걸린 닭과 오리들을 또한 산 채로 매장하는 것의 업보 역시 누군가 분명히 받을것인데, 앞으로 또 얼마나 만은 동물들의 생목숨이 날아갈지는 모를 일이다. AI 최초 발생지 반경 3km의 살아있는 새들을 모조리 죽이고 나서, '합리적 방제대책'이었다고 스스로 만족할 것인가. 대체 그 업은 또 누가 받으라고.

한 쪽에서는 광우병에 반대하는 촛불시위를 하고, 한 쪽에서는 가금류에 대한 도살처분이 한창이다.
살고자하는 절규라는 점에서는 매한가지인데. AI는 도살처분과 병에 대한 공포로 갚았다면, 도살은 또한 무엇으로 갚을 것인가.

인과율의 단순한 가르침이 사무치게 아려오는 석가탄신일이었다.

by 은하 | 2008/05/13 08:10 | 발견 | 트랙백 | 덧글(14)

트랙백 주소 : http://kixzero.egloos.com/tb/3740982
☞ 내 이글루에 이 글과 관련된 글 쓰기 (트랙백 보내기) [도움말]
Commented by 홍월영 at 2008/05/13 08:44
병아리 감별한 후 수평아리들도 저렇게 죽입니다.... 비닐봉지에 수백마리 넣어놓고 입구를 동여매버리지요.
Commented by Ha-1 at 2008/05/13 09:24
... 저런 일은 정말 하고 싶지 않군요. 냉정하게 경제적 효익을 따져보지 못할 것도 아니지만, 그러나 '업보'임에는 변함이 없을 것 같네요...
Commented by 은하 at 2008/05/13 11:02
홍월영//이런 얘기 들을 때마다...정말 나는 어디까지 세상을 외면하고 살아온 것인가;;;ㅠㅜ
Ha-1//그러게요. 동물들에 대한 폭력이지만, 또한 일선에서 저런 일을 하게 될 노동자들에게 역시 폭력인듯.
Commented by 별밤 at 2008/05/13 11:56
부처님 말씀 틀린 게 하나 없는...-_-;;; 어떻게 해야 할까요, 어떻게 해야...
Commented by 수오 at 2008/05/13 13:25
사는 것이 업보일런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쩌면.
Commented by 중간자 at 2008/05/13 13:38
저럴 땐 정말 누구에게 책임을 물어야 할까요?
중앙정부? 구체적인 지시기관? 서류 처리자? 집행자? 혼란스럽네요.

인과율을 믿는 사람은 아니지만, 정말 저런 건 카르마 하난 무거워보입니다. 옛날 우리 조상들은 미물에게도 아무 이유없이 피해를 주면 안된다고 뜨거운 물도 식혀서 버렸는데...
Commented by 흰우유 at 2008/05/13 15:36
아주 조금씩 은하님 블로그가 변하는군요. ^^

저도 저 장면을 인간으로 바꿔서 생각해봤는데,
그니까.. 음... 자연면역력이 발생하기 어려운 도시빈민 노동자계층이 페스트에 걸린 것쯤과 비유한다면, 병에 안 걸린 것들은 큰 구덩이를 파놓고 얘네들을 생매장시키는 거죠. 그런 생각을 하니 제가 인간이라는 게 어찌나 감사하던지요. 아니, 그런 시대에 태어나지 않은 것을 감사해야 하나?

( 사족-은하님, 명년에 은하님 학교 일반 대학원에 지원하려고 고투 중입니다 ^___^ )
Commented at 2008/05/13 16:14
비공개 덧글입니다.
Commented by megalo at 2008/05/13 20:08
인간은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잔인한 짐승이라죠..
Commented by 은하 at 2008/05/13 22:12
별밤//아아 관세음보살 ㅠㅠ
수오//그러게요;;;
중간자//모두가 공범인 범죄는 역시 아무도 책임지지 않는다는 결론;;;;ㅠㅜ
흰우유//휴...축산업만 생각해도 한 5살짜리가 제일 맛있다고 5살까지 길러서 차례대로 잡아먹는;;ㄷㄷ
ㅠㅠ(아....반갑네요. 팟팅!! 꼭 학교에서 뵐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비공개//하긴 그건 그래요. 또래오래 치킨이 맛있는 건 35일령 닭만 쓴다고 ㅡㅜ 자연의 순환과 흐름에 따른 고기 섭취면 모를까 이런 식의 육식이라면 사실 현재 있는 송곳니에 대한 모독 같기도 하고요;;
megalo//정말 이 종 하나가 없어지면 지구가 편안해지긴 하는데-_-;;
Commented by Jan  at 2008/05/14 10:58
저 닭과 오리도 전생에는 사람이었을지도 모르지.
Commented by reset04 at 2008/05/14 19:37
결론은 황박사...........응??
Commented by 개구리 at 2008/05/15 11:52
먹고사니즘이 현실적이고 실용적인 견지를 넘어서 하나의 도그마로 자리잡은 사회의 병폐인 듯. 기독교의 나름 좋은 아이디어들도 정치적 도그마가 되었을 때 마녀사냥을 낳았듯, 요즘의 난리들을 보면 먹고사니즘 도그마의 마녀사냥식 말기증세가 나타나는 것 같아요.
Commented by 은하 at 2008/05/16 02:37
Jan//우리의 후생이란 ㄷㄷㄷ
reset04//그러고보니 전에 광우병 내성 소 '개발'했다지 않으셨나.
개구리//도그마. 그 말이 맞네요..ㅠㅜ

:         :

:

비공개 덧글

◀ 이전 페이지          다음 페이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