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5월 18일
반전
역사학은 내가 생각하기에 후속 세대를 믿고 하는 학문이다. 한 시대를 객관적이고 공정하게 기술하고자 한다면, 대상에서 한 발짝 떨어져서 볼 수 밖에 없다. 따라서 역사학자들은 정작 본인이 사는 시대에는 큰 영향을 못 미치는 사람들일지도 모르지만, 그가 남긴 기록들은 후손들이 읽는다. 역사적 사실들에 대한 역사학자들의 관점과 생각은 바로 이 후손들을 향한 것! 평생 마주할 일이 없을 사람들을 믿고 불확실한 오늘을 견뎌내기에, 역사학자의 인간 자체를 향한 신뢰는 숭고한 데가 있다. (뒤집으면 동시대에 영향력을 미치고 싶어하는 관제사학이 천박한 이유이기도 하다)
문제는 정작 나는 후손들을 위해 묵묵히 과거와 현재를 잇기보다는, 동시대의 이슈에 바로바로 반응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지식의 소비자에서 지식의 생산자로 바뀌는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 나는 '평생직업공부'가 주는 무게감에 새삼 눈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고민만 하는 방황의 시간이 펼쳐졌고 그게 어느 새 1년 반이다. 생각해보니 그를 만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보다 힘차게 내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 만났다면,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였을텐데, 아니 하필 이 시기였기에 그가 나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된 거였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찬 시간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던 시간이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건, 근현대사는 재미있는데 전근대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건, 정작 사료더미 속에서 진리를 추구해야겠다는 욕구가 미약하다는 것이건, 근본적 문제는 하나였다. 나의 진짜 욕망.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러나 욕망과 능력 사이의 괴리감에 역시 또 한 번 좌절하며 방황의 늪은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기를 수 차례 반복, 더 이상 방황하는 거 자체에조차 질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때, '가장 중요한 선택은 후회가 없게 하는 것과 ,'미래를 선택할 때에는 장점만 믿고 가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힘입어 지난 금요일 원서를 제출했다.
환경대학원에.
제목이 그래서 반전이다. 진로로서 환경대학원을 염두에 둔 것은, 예상치 못하게 더 다니게 된 이번 학기,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부터였지만, 농업이나 국제적 식량문제 등을 포함하여 환경에 대한 관심을 예전부터 꾸준한 것이었다. 대운하, 광우병 등 메가톤급 환경이슈를 생산하는 MB정권에 말렸다는 생각도 들지만-_-;(거 봐 이렇게 얄팍한 인간이래도) 상황에 의해 떠밀린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진이라는 느낌은 자신할 수 있다.
그런데 원서를 내고 나서 마음이 아팠다. 방황을 끝내 시원할 법도 한데, 인생에서 나를 그토록 갈등하게 했던 한 가지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은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는 것마냥 슬펐다. 그래도 10년 가까이를 꿈꾸어왔던 길이고, 흔들릴 때마다 수없이 떠올렸던 청사진이었는데. 앞으로 내 삶에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그들과 토론하는 일은 없겠다라는 생각에 마음 한 쪽이 뜯겨나가는 것 같다. 직업으로 삼기에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렇게 전쟁을 치렀었는데, 정작 버리고나니 나한테 역사학이 차지하던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황하던 시간에 이 학문을 좀 덜 혐오할걸.
환경에서의 주된 테마는 '지속가능성', 즉 결국 후손들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그 점에서는 내게 너무 익숙한 역사학과 닮았다. 사실 무엇을 하건간에 정신에 새겨진 인문학 유전자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여전히 역사학의 소비자, 그것도 전공자 출신이니 이 바닥에서는 나름 단골에 VIP 고객. 시장을 형성하는 핵심 축이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것은 나중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되어있다는 말에 거는 희망. 그것만으로도 나는 중학생 때부터 꿈꾸어왔다가 포기한 길의 의미를 내 안에서 간직할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조금은 더 슬퍼하련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나긴 자학에 대한 반성이거든.
그리고 소망해본다.
아 꼭 붙어야 하는데. ㅜ.ㅜ
사실은 무척 불안하다. 정작 떨어지고 났을 때, 되돌아가려는 건 아닌지.
문제는 정작 나는 후손들을 위해 묵묵히 과거와 현재를 잇기보다는, 동시대의 이슈에 바로바로 반응하고 싶어한다는 점이다.
지식의 소비자에서 지식의 생산자로 바뀌는 길목에 들어서기 직전, 나는 '평생직업공부'가 주는 무게감에 새삼 눈뜨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무게에 짓눌려 아무것도 못하고 그저 고민만 하는 방황의 시간이 펼쳐졌고 그게 어느 새 1년 반이다. 생각해보니 그를 만난 것도 바로 이 시점이었다. 보다 힘차게 내 길을 걸어가고 있었을 때 만났다면, 좀 더 멋진 모습을 보였을텐데, 아니 하필 이 시기였기에 그가 나에게 의미있는 사람이 된 거였을까. 그렇다 하더라도 후회와 아쉬움으로 가득찬 시간임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무의미한 것만은 아니었다. 그 어느 때보다도 나 자신에 대해 많이 생각해보던 시간이었다. 부모님과의 갈등이건, 근현대사는 재미있는데 전근대사는 재미가 없다는 것이건, 정작 사료더미 속에서 진리를 추구해야겠다는 욕구가 미약하다는 것이건, 근본적 문제는 하나였다. 나의 진짜 욕망. 궁극적으로 내가 하고 싶은 것. 그러나 욕망과 능력 사이의 괴리감에 역시 또 한 번 좌절하며 방황의 늪은 탈출하지 못했다. 그러기를 수 차례 반복, 더 이상 방황하는 거 자체에조차 질려 선택의 순간이 다가왔을때, '가장 중요한 선택은 후회가 없게 하는 것과 ,'미래를 선택할 때에는 장점만 믿고 가라'는 선배들의 조언에 힘입어 지난 금요일 원서를 제출했다.
환경대학원에.
제목이 그래서 반전이다. 진로로서 환경대학원을 염두에 둔 것은, 예상치 못하게 더 다니게 된 이번 학기, 관련 수업을 들으면서부터였지만, 농업이나 국제적 식량문제 등을 포함하여 환경에 대한 관심을 예전부터 꾸준한 것이었다. 대운하, 광우병 등 메가톤급 환경이슈를 생산하는 MB정권에 말렸다는 생각도 들지만-_-;(거 봐 이렇게 얄팍한 인간이래도) 상황에 의해 떠밀린 선택이 아니라, 미래를 위한 전진이라는 느낌은 자신할 수 있다.
그런데 원서를 내고 나서 마음이 아팠다. 방황을 끝내 시원할 법도 한데, 인생에서 나를 그토록 갈등하게 했던 한 가지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은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는 것마냥 슬펐다. 그래도 10년 가까이를 꿈꾸어왔던 길이고, 흔들릴 때마다 수없이 떠올렸던 청사진이었는데. 앞으로 내 삶에 학생들에게 역사를 가르치고 그들과 토론하는 일은 없겠다라는 생각에 마음 한 쪽이 뜯겨나가는 것 같다. 직업으로 삼기에는 적성에 안 맞는다고 그렇게 전쟁을 치렀었는데, 정작 버리고나니 나한테 역사학이 차지하던 무게감이 크게 느껴진다. 이럴 줄 알았으면 방황하던 시간에 이 학문을 좀 덜 혐오할걸.
환경에서의 주된 테마는 '지속가능성', 즉 결국 후손들에 대한 부채의식이다. 그 점에서는 내게 너무 익숙한 역사학과 닮았다. 사실 무엇을 하건간에 정신에 새겨진 인문학 유전자의 명령을 듣지 않을 수 없을것이다. 여전히 역사학의 소비자, 그것도 전공자 출신이니 이 바닥에서는 나름 단골에 VIP 고객. 시장을 형성하는 핵심 축이다. 그리고 정말 좋아하는 것은 나중 어떤 방식으로 하게 되어있다는 말에 거는 희망. 그것만으로도 나는 중학생 때부터 꿈꾸어왔다가 포기한 길의 의미를 내 안에서 간직할 수 있으니까 괜찮겠지만.
조금은 더 슬퍼하련다. 왜냐하면 이것은 기나긴 자학에 대한 반성이거든.
그리고 소망해본다.
아 꼭 붙어야 하는데. ㅜ.ㅜ
사실은 무척 불안하다. 정작 떨어지고 났을 때, 되돌아가려는 건 아닌지.
# by | 2008/05/18 05:17 | 생활 | 트랙백 | 덧글(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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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에서 나를 그토록 갈등하게 했던 한 가지 선택지가 사라지는 것은 기쁘기만 한 건 아니었다. 오히려 오래된 연인과 이별하는 것마냥 슬펐다."...라는 표현에 몹시 공감했고요.
합격을 기원합니다! :D
yu_k//동갑내기 블로거 yu_k님 고맙습니다. yu_k님도 앞 길에 후회없이!!+_+
홍월영//역시 옛 것은 중요해요 ㅋㅋ
여튼, 좋은 결과 있기를 기원합니다:)
역시 다 잘될거에요. 그쵸?
저는 현실이 싫습니다. 현실 참여도 싫고 현실 자체도 싫습니다.
그래서 그냥 과거속으로 돌아가렵니다.
네가 가지 않은길은, 또 누군가가 걷고 있겠지^^
꼭 잘될꺼에요.
아리따운 은하언니니깐ㅋㅋ
저 월욜날 학교가는데....
오후에 수업 있나요?
언니 공강 많으면 잠깐 얼굴이나 봐요~ㅋㅋㅋ
인문계를 떠나 사회과학으로 옮기는 나에게도 가슴 아려한 말이네.....
저는 아직 선택의 순간이 2년 반 넘게 남았네요OTL...
다음주 예비군 훈련 공지 떄문에 군대 생각 안날 수가 없어요.
복무 기간과 그 앞뒤로 어수선하게 놀던거 생각하면 3년이나 까먹었으니.
...어쨌든 선택의 순간을 하나 넘긴것은 본인에게는 큰 쓸쓸함을 남기겠지만,
주위 사람들이 해줄 수 있는건 역시 축하겠지요.
대학원에서 지식 이상의 것을 싾으시길.
耿君//뭘 해도 하는 후회.
NemoDori//히힝 이런 무책임한 응원 좋아요 ㅋㅋ
이녁//미안한데, 그렇게 해서 대가가 되는 경우는 많이 없더라구요.
흐느//그리움은 남기되 후회는 없게. 와 이 말 멋있다. 고마워용 ㅋㅋ
Minerva//삼사과 04학번들은 특히나 워낙 똘똘한 사람들이 많아서리.
ㅅㅎ//땡스 ㅋㅋ 아 글구 9시 수업 있고 오후 8시에 스터디 있고 나머지 죄다 공강이야..연락해 ㅋ
나아가는자//그러시군요. 고마워요. 님도 끊임없이 나아가시면서 많은 걸 얻기를. 그렇게 될 거에요.
소금인형//게다가 유전자의 힘은 강력하잖아요+_+ 앞으로 대학원에서 공부하는 것보다 기실 더 많은 영향을 미칠지도.
중간자//아항. 이런 말 하면 안 되는데 살짝 부럽기도 합니다..^^;; 지금의 시간 소중히 여기시고 좋은 선택 하시길. 감사해요.
비공개//고마워.
필합격하삼..~
미리내//땡스 ㅋ 붙으면 만두 ㅋㅋ
비공개//....진짜 사람과도 헤어져도 봤지요..ㄱ-
저도 요새 대학원 때문에 고민중이라죠 ㅠ.,ㅠ////
과에서 환경도 살짝 한답니다. 주로 대기분야로 캬캬캬 -_-...
愚公//넵 우공이산의 정신으로 용맹정진 ㅋ
담샘 : 너 장래희망이 뭐냐? (진로상담서를 끄적끄적 적고 있었다)
별밤 : (너무 당연하다는 듯이) 역사학자요.
담샘 : 너네 집에 돈 많냐?
별밤 : ......
그래서 진로포기. OTL
나름 현실적(?)일 거라는 판단에 선택한 전공이 정치외교학이었는데, 막상 가서 배우는 건 정치사와 외교사와 정당정치론 등등... =ㅂ=;; 덕분에 재밌긴 하지만요~ (;;)
저는 다음학기에나 대학원 원서 낼 듯 해요 :)
환경대학원은 연구환경(ㅋㅋ)이 좋다고 들었어요. 합격 포스팅 기다릴게요. 잘 해 내실 거라는 예감이 팍팍 들어요 ^^!!
근대조약의 효시라 불리는 베스트팔렌 조약의 정체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좀 우습기도 하고요. "여기까지는 내 땅, 저기까지는 니 땅... 금 밟으면 죽어!" 뭐, 이런 거라-_-;;
역사는 제게 취미이자 오락이며 도구인 거 같네요. :)
달//히힛 홧팅!
진흙//합격하고나서도 전쟁인건가요? 그 말에 왜 살짝 위안이 ㅋ 진흙님도 훌륭한 연구자 되시기를^^
별밤//음 게다가 그게 시험에 나온다고 생각하면 끔찍하죠.ㅋㅋㅋ 정작 사학과 수업은 그런게 시험에 나오는 경우는 적으니(그래서 은근히 외교학과를 무시하기도 ㅡㅡ;;;;)
여튼 역사만큼 재미있는 취미이자 오락이 어딨겠어요 ㅎㅎㅎ 사극 보면서 씹는 재미도 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