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09일
하나의 축제, 서로 다른 세계 - 올림픽 개막식 감상
1. 세계
아주 어릴 적, 나는 부산과 진주와 광주는 붙어있는 줄 알았다. 그건 서울에서 부산도 5~6시간, 진주도 5~6시간, 광주도 5~6시간. 이렇게 서울에서 걸리는 시간이 대략 비슷하기 때문에, 이 세 도시들은 대충 남부지방에 몰려있을 것이라는 당혹스러운 지리감각인 것이다. 이것이 서울내기들의 문제인데, 사실 누구나 지리지식이 없는 아주 어릴 적에는 자기가 사는 동네를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내기들의 서울중심주의와 왜곡된 지리감각은 그 쪽수로 말미암아 본의아니게(혹은 본의든) 커다란 권력이 되는 탓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 보면서 나는 여전히 이런 종류의 감각에 푹 젖어 있음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개막식 쇼가 화려하고 친숙한 동아시아 문화를 담고 있어 볼 만했지만, 그보다 내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200여개나 되는 각 국 선수단의 입장이었다. 입장 뭐 볼 거 있나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입장국들의 인구와 파견 선수 규모가 내 눈에 날아와 괴리에 휙 박혔다. 그리고 그건 나름 충격이었다. 24년 살면서 나름 세계정세에 박식하다고 자부했지만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대부분 선수단 200명 정도 파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10명 이하의 선수단을 파견한 나라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선수는 고작 1~2명인 나라들도 있었다. 선수단 규모라는 것은 대체로 확실히 국력과 비례하여, 미국이 600명 이상, 프랑스와 독일이 300명 이상(특히 독일은 전종목 출전)을 파견하는 위세를 자랑했다. 네덜란드와 호주 역시 인규규모에 비해 꽤 많은 200여명 이상의 선수단을 파견해 있어서, 넓은 생활체육 저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11억 인구의 인도는 의외로 선수는 55명밖에 파견하지 않았고, 8천만 인구의 베트남도 선수는 12명이었다. 아무래도 경제수준이 낮더라도 동유럽 지역은 비교적 많은 인구 1천만명당 100여명의 선수를 파견해, 국제 스포츠계가 역시 아무래도 서양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북한은 뭐하느라 인구 2600만여에 선수 65명을 파견했을까. 가까워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엘리트 체육은 발달시켜놔서 그런지. 경제규모에 비해 많이 파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입장하는 부자나라 가운데, 한 자릿수의 인원들이 깃발을 들고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입장하는 나라의 선수들 입장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정말로 참가하는데 큰 의의를 둘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다 외국과의 국력차이를 느껴서 서글픔이 들까. 동티모르마냥 올림픽 참가는 독립의 상징이라 자국 국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들까. 이런 나라에서 메달이 나오면 그야말로 전국이 축제로 들썩이고,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는 것이지만, 얄밉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메달은 부자나라들이 가져간다. 이런 환희와 열광의 축제 속에서 그늘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서러울거 같아서 왠지 한 동안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올림픽이란 바로 그런 자리일 것이다.
새삼 올림픽에 200명정도 파견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입지를 생각해본다. 그런 우리가 보는 세계, 분명히 어딘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터이고, 본의 아니게(혹은 의도적으로) 권력이 되어있을텐데. 4강 속에 시달리다보니 늘 잊고 살기는 하지만 말이다.
2. 중국
개막식 쇼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장예모 감독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았다. 내가 볼 때 장예모 감독은 이제 저런 국가주도 대형 행사 총감독 하면 딱이겠다. 종이, 문자, 차, 실크로드 등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무대였고, 그 또한 동양적 분위기를 잘 살려 미학적으로도 훌륭했다. 특히나 활자와 현대의 키보드 이미지를 조합한 두번째 쇼는 매우 창의적이면서도 전통을 잘 살려낸 공연이었다. 그렇게 2시간여의 개막식전 행사는 지루할 틈도 주지 않고, 4천년 깊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화려하게 펼쳐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역사와 문화가 명나라 대에서 딱 끊긴다. 공자의 제자들로 시작해 한대 종이, 문자의 발명, 남북조시대부터 발달하여 당대에 꽃을 피운 실크로드, 송대 왕성해진 차 문화, 경극 등 서민연극, 명대의 정화함대 (원은 가볍게 뛰어넘어주는 센스) 그리고 바로 현대로 넘어온다. 매우 유려한 파노라마였지만 이 단절은 역시나 그냥 넘어가기엔 씁쓸한 대목이었다.
중국의 컴플렉스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들은 다민족 복합제국인 청을 인정하기 싫은 거였고, 외세에 뜯긴 근현대를 역시 말하고 싶지 않는 거였다. 혁명 정도는 예찬할 만 한데 이 역시 언급도 안 하는 걸 보니, 대장정의 드라마와 문화대혁명의 배반이 동세대에 의해 이루어진 혁명에 대한 지독한 염증도 살짜쿵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나 그 시대에는 기억할 만한 것 따윈 없어 하고 훌쩍 뛰어넘겨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루는 여러 소수민족들의 발랄한 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특히나 카메라에 활짝 웃는 모습이 잡힌 위구르 무희가 얼마나 안타깝던지.
바로 어제에 대한 심각한 부정. 자기 부정에서 오는 도덕적 공황과 세대간의 단절도 문제거니와 어제의 어깨 위에 올라탄 오늘에 대해 외면하는 결과도 낳는다. 사실은 그러고 싶어서 현대 중국은 장밋빛이어야 하는 내일과, 그 내일의 영광을 보장해주는 먼 옛날 과거로 회귀해 들어가고 있지만, 사실 지금 중국인들의 삶의 본령은 바로 "기억하지 않는 그 시대"에 있다. 티벳과 위구르 무희들의 웃는 얼굴 속에 가려진 눈물이, 오늘날 도농격차와 자본주의의 그림자의 뿌리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천안문에서의 절규 이후 죽은 영혼이 되어버린 중국 지식인들의 자화상이.
장예모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을테고. 말하기 싫었던 것일까.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다 말해버린 것일까.
이래저래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아주 어릴 적, 나는 부산과 진주와 광주는 붙어있는 줄 알았다. 그건 서울에서 부산도 5~6시간, 진주도 5~6시간, 광주도 5~6시간. 이렇게 서울에서 걸리는 시간이 대략 비슷하기 때문에, 이 세 도시들은 대충 남부지방에 몰려있을 것이라는 당혹스러운 지리감각인 것이다. 이것이 서울내기들의 문제인데, 사실 누구나 지리지식이 없는 아주 어릴 적에는 자기가 사는 동네를 세상의 중심으로 알고 살기는 할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다른 지역과 달리 서울내기들의 서울중심주의와 왜곡된 지리감각은 그 쪽수로 말미암아 본의아니게(혹은 본의든) 커다란 권력이 되는 탓에 항상 조심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올림픽 개막식 보면서 나는 여전히 이런 종류의 감각에 푹 젖어 있음을 또 한번 확인할 수 있었다. 개막식 쇼가 화려하고 친숙한 동아시아 문화를 담고 있어 볼 만했지만, 그보다 내 인상에 강하게 남았던 것은 200여개나 되는 각 국 선수단의 입장이었다. 입장 뭐 볼 거 있나 채널을 돌리려는 순간, 입장국들의 인구와 파견 선수 규모가 내 눈에 날아와 괴리에 휙 박혔다. 그리고 그건 나름 충격이었다. 24년 살면서 나름 세계정세에 박식하다고 자부했지만 나는 어처구니없게도, 다른 나라도 우리나라처럼 대부분 선수단 200명 정도 파견했을 것이라고 생각해왔던 것이다.
10명 이하의 선수단을 파견한 나라들은 생각보다 굉장히 많았다. 선수는 고작 1~2명인 나라들도 있었다. 선수단 규모라는 것은 대체로 확실히 국력과 비례하여, 미국이 600명 이상, 프랑스와 독일이 300명 이상(특히 독일은 전종목 출전)을 파견하는 위세를 자랑했다. 네덜란드와 호주 역시 인규규모에 비해 꽤 많은 200여명 이상의 선수단을 파견해 있어서, 넓은 생활체육 저변을 확인할 수 있었다. 11억 인구의 인도는 의외로 선수는 55명밖에 파견하지 않았고, 8천만 인구의 베트남도 선수는 12명이었다. 아무래도 경제수준이 낮더라도 동유럽 지역은 비교적 많은 인구 1천만명당 100여명의 선수를 파견해, 국제 스포츠계가 역시 아무래도 서양중심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근데 북한은 뭐하느라 인구 2600만여에 선수 65명을 파견했을까. 가까워서 그런지. 아니면 원래 엘리트 체육은 발달시켜놔서 그런지. 경제규모에 비해 많이 파견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의기양양하게 입장하는 부자나라 가운데, 한 자릿수의 인원들이 깃발을 들고 상대적으로 초라하게 입장하는 나라의 선수들 입장은 어떨까 상상해본다. 정말로 참가하는데 큰 의의를 둘까. 아무도 주목하지 않는데다 외국과의 국력차이를 느껴서 서글픔이 들까. 동티모르마냥 올림픽 참가는 독립의 상징이라 자국 국기를 볼 수 있는 것만으로도 자부심이 들까. 이런 나라에서 메달이 나오면 그야말로 전국이 축제로 들썩이고, 한 편의 드라마가 탄생하는 것이지만, 얄밉게도,그리고 당연하게도 대부분의 메달은 부자나라들이 가져간다. 이런 환희와 열광의 축제 속에서 그늘진 사람은 그 누구보다도 서러울거 같아서 왠지 한 동안 시선을 돌리지 못했다. 올림픽이란 바로 그런 자리일 것이다.
새삼 올림픽에 200명정도 파견하는 나라의 국민으로서의 입지를 생각해본다. 그런 우리가 보는 세계, 분명히 어딘가 보지 못하는 부분이 있을 터이고, 본의 아니게(혹은 의도적으로) 권력이 되어있을텐데. 4강 속에 시달리다보니 늘 잊고 살기는 하지만 말이다.
2. 중국
개막식 쇼는 굉장히 인상적이었다. 장예모 감독이 드디어 제 자리를 찾았다. 내가 볼 때 장예모 감독은 이제 저런 국가주도 대형 행사 총감독 하면 딱이겠다. 종이, 문자, 차, 실크로드 등 중국 전통 문화에 대한 자부심이 가득한 무대였고, 그 또한 동양적 분위기를 잘 살려 미학적으로도 훌륭했다. 특히나 활자와 현대의 키보드 이미지를 조합한 두번째 쇼는 매우 창의적이면서도 전통을 잘 살려낸 공연이었다. 그렇게 2시간여의 개막식전 행사는 지루할 틈도 주지 않고, 4천년 깊은 중국의 역사와 문화를 화려하게 펼쳐냈다.
그런데 문제는 그 역사와 문화가 명나라 대에서 딱 끊긴다. 공자의 제자들로 시작해 한대 종이, 문자의 발명, 남북조시대부터 발달하여 당대에 꽃을 피운 실크로드, 송대 왕성해진 차 문화, 경극 등 서민연극, 명대의 정화함대 (원은 가볍게 뛰어넘어주는 센스) 그리고 바로 현대로 넘어온다. 매우 유려한 파노라마였지만 이 단절은 역시나 그냥 넘어가기엔 씁쓸한 대목이었다.
중국의 컴플렉스가 여기서 드러난다. 그들은 다민족 복합제국인 청을 인정하기 싫은 거였고, 외세에 뜯긴 근현대를 역시 말하고 싶지 않는 거였다. 혁명 정도는 예찬할 만 한데 이 역시 언급도 안 하는 걸 보니, 대장정의 드라마와 문화대혁명의 배반이 동세대에 의해 이루어진 혁명에 대한 지독한 염증도 살짜쿵 느껴진다. 하지만 역시나 그 시대에는 기억할 만한 것 따윈 없어 하고 훌쩍 뛰어넘겨서, 현재 중화인민공화국을 이루는 여러 소수민족들의 발랄한 춤을 보고 있으려니 마음이 편하지만은 않다. 특히나 카메라에 활짝 웃는 모습이 잡힌 위구르 무희가 얼마나 안타깝던지.
바로 어제에 대한 심각한 부정. 자기 부정에서 오는 도덕적 공황과 세대간의 단절도 문제거니와 어제의 어깨 위에 올라탄 오늘에 대해 외면하는 결과도 낳는다. 사실은 그러고 싶어서 현대 중국은 장밋빛이어야 하는 내일과, 그 내일의 영광을 보장해주는 먼 옛날 과거로 회귀해 들어가고 있지만, 사실 지금 중국인들의 삶의 본령은 바로 "기억하지 않는 그 시대"에 있다. 티벳과 위구르 무희들의 웃는 얼굴 속에 가려진 눈물이, 오늘날 도농격차와 자본주의의 그림자의 뿌리를 추적할 수 있는 단서가. 천안문에서의 절규 이후 죽은 영혼이 되어버린 중국 지식인들의 자화상이.
장예모가 이를 몰랐을 리는 없을테고. 말하기 싫었던 것일까. 말하지 않음으로써 오히려 다 말해버린 것일까.
이래저래 훌륭한 연출이었다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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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은하 | 2008/08/09 16:27 | 발견 | 트랙백 | 덧글(1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