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8월 28일
불심, 그 이상으로 대동단결
불심으로 대동단결
2002년 대선 때 이 캐치프레이즈를 보았을 때, 어이없으면서도 웃겼던 게 기억에 난다. 종교지도자를 뽑는 행사도 아니거니와, 삼국시대 제왕들이나 할 법한 말을 21세기 대통령 선거에 나와서 하고 있다니. 그러면서도 포스터의 김길수 씨 이분은 묘하게 사이비적 카리스마가 있으셔서, 어째 출마의 목적이 TV사극 태조왕건의 궁예 코스프레가 아니었나 추측하기도 했다. 그렇게 대선기간에 기말고사를 봐야하는 현실에 몸부림쳤던 나에게, 한가닥 웃음을 선사했던 말이었는데. 지금은 이 말이 정말로 실현되려고 하고 있다.
27일 광화문 광장에서 열린 범불교대회에는 무려 20만명이 운집했다고 한다. 이토록 뿔난 불심은 쉽게 가라앉지 않을 전망이다. 불교계는 이명박 정부의 종교편향정책에 대해 따가운 비판을 쏟아내고 있으며, 대통령의 사과 및 '종교차별금지법' 제정을 요구하고 있다. 장기전끝에 촛불을 거의 진압하고 강세모드로 돌아서려던 정부 입장에서는 다크호스를 만난 것이나 다름없다.
차별정책보다 더 근본적인 '공직자'로서의 자각 문제
다크호스를 넘어서느냐 마느냐의 문제는 정권이 얼마나 이 사태의 핵심을 제대로 파악하느냐에 달려있다. 불교계의 분노는 단순히 '차별금지법'을 제정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민주주의 국가에서 종교를 차별하지 않는 것은 상식이자 대원칙인데, 이를 별도로 법으로서 제정한다는 것은 오히려 대원칙의 품격을 깎아먹는듯한 느낌이다. 그리고 더욱 중요한 문제는 정부의 처신에 있어 단순히 '차별'이라 표현할 수 없는 더욱 중대한 결점이 치명적 문제이기 때문이다.
불교계에서 주장한 불교차별정책의 예로는 다음과 같다.(프레시안: 관련기사) 그러나 차별정책이라 불러도 좋을지는 의문이다. 사안들을 면밀히 따져보면, 대체로는 종교와 관련된 구체적 정책이라기보다는, '개념없는 기독교 신자들의 삽질' 쪽에 더 가깝기 때문이다. 경기여고 사태와 같은 경우는 단군상 목이 잘려나간 사건마냥 이전 정권에서도 일부 몰지각한 개신교 신자들에게서 자행되고는 했다.
그런 이 분노가 기독교계가 아닌 대통령에게 쏟아지고 있다. 즉 지금 불교계의 눈에, 그리고 이를 지지하는 다수 시민들의 눈에는 대통령과 주요 공직자들이 '개념없는 기독교인'으로 보고 있다는 점이다. 바로 이 점이야말로 이번 정권의 치명타다. 공직자 이명박과 인간 이명박은 분리되어야 하는 것인데, 오히려 국민들의 눈에는 공직자는 간데없고 기독교 신자인 인간 이명박만 보인다. 이명박 대통령을 비롯한 주요 공직자들이, 사적인 존재로 공직에 임해왔다는 것이 '종교'라는 뇌관을 통해서 드러나버린 셈이다.
취임 7개월째 여전히 갈피를 못 잡고 있는 MB 정부의 핵심적 문제가 바로 이거다. 공직자 스스로가 공공의 마인드로 공직에 임하지 않고 있다. 대한민국 주식회사 CEO 이명박론에서 보이듯, 사적이익집단의 대변자와 같은 역할만을 했다는 것이다. 그 동안 숱하게 들어왔겠지만, 대통령은 사장이 아니다. 하는 정책마다 줄줄이 국민의 대에 부딛치는 것은 하는 정책마다 공은 없고 사만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 문제를 "불교대우 왜 안 해줘!"하고 삐진 것을 달래려는 차원에서 수습하고자 하면 곤란하다. 대통령이 기독교도인 것은 당연히 문제가 안 된다. 하지만 "기독교도로서 대통령직을 수행하려고 하면" 문제가 되는 것이다. 물론 이런 경우에 정작 예수의 가르침인 사랑과 봉사가 안드로메다로 날아가버리고 없지만 말이다. 그리고 기독교도에만 국한시키면 영원히 답은 없다. "기독교도로서" 와 마찬가지로 강부자, 건설업, 대기업 등의 대변자로서의 자신에 대해, 돌이켜보아야 할 때이다.
민중불교가 되살아날 수 있을까?
사실 2002년 불심으로 대동단결이 웃겼던 이유는 뭐니뭐니해도 승려가 대선에 출마했다는 것 그 자체였을 것이다. 그 이전에 목사도 대선에 출마한 적 있지만 그 때와는 사뭇 다른 반응이다. 분노도 아닌 언밸런스에서 유발하는 웃음이라니. 어쩌면 불교계가 현대 한국사회에서 걸어온 길의 결과일지도 모른다. 무소유와 청빈의 사상을 강조하는 불교이니만큼 권력과 거리를 두는 모습은 바람직한 일이지만, 한편으로 중생의 생생한 삶과 거리가 멀다는 반증 아니었을까.
불교계 입장에서는 위기이자 기회다. 최근에는 천성산 지율스님의 단식이나 새만금과 같이 생명,환경 분야에서 현실에 참여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불교가 이처럼 현대사회에서 적극적인 사회적 역할을 해 낸다면 불교의 사회적 위상으로서도 바람직한 일이다. 더욱이 불교도 신자들은 지방의 고령자들 가운데 많이 몰려있다. 불교의 사회적 역할이 더 절실한 이유다.
현재 기독교가 많은 욕을 먹고 있지만, 기독교 전체의 문제가 아니듯이, MB에 반대한다고 해서 불교 전체를 그 대척점에 세워두려는 것은 아니다. 허나 가뜩이나 살기 어려워지는 세상이라면 어느 종교이든 이들의 삶의 짐을 덜어주고, 앞길을 밝혀주는 참 스승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음은 수경스님의 성명 전문이에요 :)
사부대중 여러분! 저는 오늘 자비문중에 귀의한 수행자의 한 사람으로서 가슴 벅찬 환희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땅에 아직 자비와 정의가 시퍼렇게 살아있다는 것을 장엄하게 보여 주는 보살의 진면모를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는 누구나 평화로운 세상에서 행복하게 살고자 하는 국민들의 절규를 철저히 외면하고, 인간적 자존감마저 짓밟고 있는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 하지만 먼저 우리는, 이런 세상을 만든 공업 중생으로서 책임을 통감해야 할 것입니다. 불자들만이라도, 아니 최소한 스님들만이라도 부처님의 가르침대로 살았더라면 세상이 이 지경까지 되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지금 우리 사회는 대통령 한 사람의 비뚤어진 가치관이 어떻게 국가를 혼란에 빠뜨리는지를 똑똑히 보고 있습니다. 대기업과 부자 위주의 정책은 빈부 양극화를 더욱 심화시키고 있습니다. 소위 이명박식 자본주의를 표현하는 '실용주의'는 피도 눈물도 없는 '냉혈 자본주의'라는 것이 속속 드러나고 있습니다.
교육자율화라는 이름으로 한창 뛰어놀 초등학생들에게도 살인적 경쟁을 부추깁니다. 부모의 경제력이 곧 성적으로 결정되는 교실을 만듦으로써, 가난한 사람들의 꿈과 희망마저 빼앗아가고 있습니다.
비판 언론에 재갈을 물리고, 네티즌의 자유로운 의사 표현마저 꽁꽁 틀어막고 있습니다. 방송의 공익 기능을 부정하고, '민영'이라는 명분으로 공영방송 체제를 허물어 오로지 상업적 이익만을 추구하는 방송 체제 구축을 시도하고 있습니다. 권력과 언론의 유착이 아니라 '권력과 언론의 일체화'를 꾀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정부의 언론 장악 기도는 군부 독재 시절의 '언론 탄압'보다 더 위험합니다. 언론의 공익적 기능을 마비시키는 데 궁극적 목적이 있기 때문입니다.
경쟁과 효율을 구실로 공기업 개혁을 들먹이지만 제사람 자리 나눠주기에 더 혈안입니다. 수돗물마저도 민간에 넘겨 '물'조차도 마음대로 먹기 힘든 세상을 만들려 하고 있습니다. 물값이 오를 것은 뻔하고 그 이익은 기업에 돌아갈 것입니다. 이명박 정부에게 서민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오로지 대기업과 부자들만 있을 뿐입니다. 경제 살리기를 명분으로 파렴치한 범죄를 저지른 대기업 총수까지 다 풀어 주었습니다. 이것이 이명박 대통령이 말하는 '기업 프렌들리'의 실체입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현재의 국정 난맥상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는 여러분도 잘 알 것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입니다. 국민과의 소통은 아예 기대를 접더라도 총리와 장관들마저도 대통령과 소통을 포기하고 눈치만 살피는 형국입니다. 이런 상황이라면 검찰과 경찰이 대통령 1인의 시녀가 되는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도무지 말이 통하지 않는 절대 권력자가 임명권을 쥐고 흔드는데, 누구보다도 권력 지향적인 검찰과 경찰의 수뇌부가 할 수 있는 일은, 의사 표현의 자유를 행사하는 국민에게 현상금을 거는 토끼몰이식 강격 진압밖에 없을 것입니다.
의회를 장악한 여당도 대통령 눈치 보기에만 급급한 모습입니다. 사법부마저도 가파른 보수적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들이 소위 말하는 헌법기관인지 의심이 들 정도입니다. 삼권 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근간이 뿌리째 흔들리고 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최소한 인간적 품위와 자존을 지키려는 국민들을 벼랑 끝으로 내몰고 있습니다. 마치 '난폭한 주인이 노예 부리듯' 국민을 대합니다. 그런데도 이명박 대통령과 그를 옹호하는 세력들은 선거 절차를 거쳤다는 것만으로 반민주성을 호도하고 있습니다.
다 알다시피 오늘 우리가 누리는 민주주의는 87년 6.10 항쟁에서 흘린 민중의 피와 땀의 결과입니다. 현 정부도 마찬가지입니다. 하지만 6·10 항쟁도 당시 정권의 입장에서는 명백한 불법 시위였습니다. 이명박 식 법률 해석에 따르면 현 정부 또한 불법 행위의 기반 위에 서 있다는 얘기가 됩니다. 지금 이명박 정부는 국민의 피와 땀으로 이룬 민주주의의 성과에 무임승차하고는 민주주의를 유린하고 있습니다.
사실 이명박 정부는 국민에게 준법을 말할 자격이 없습니다. 대통령 자신은 물론 '강부자', '고소영'으로 표현되는 내각의 구성원 대부분은 온갖 탈법과 편법을 저지르면서 오늘의 부와 권력을 차지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이 어떻게 국민들이게 '준법'이라는 이름으로 무조건적 복종을 강요할 수 있습니까? 이명박 대통령은 독재 권력의 비참한 말로를 보여 준 전두환노태우씨에게서 교훈을 얻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변신술은 참으로 용렬하기 짝이 없습니다. 촛불 정국 때 두 번이나 국민 앞에 사과를 한 일이 아직도 생생한데 언제 그랬느냐는 식으로 돌변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하겠습니까? 이명박 정권과 한몸을 이룬 기득권층의 면면을 살피면 답이 보입니다.
경제적 최상위층, 족벌 재벌, 극우 보수 언론, 권력 지향적 관료, 정부 권력 기관, 민의를 대변하지 못하는 국회의원 그리고 일부 극우 보수 개신교 집단입니다. 특히 일부 보수 개신교 집단은 이명박 대통령의 배제와 배타의 분열주의를 강화시킵니다. 지난 부시 미 대통령 방한 때 자발적 시민들이 모인 반대집회보다 소위 맞불 집회를 연 개신교 목사의 동원군중을 더 크게 바라보면서 천군만마를 얻은 듯 득의양양하는 모습은 측은지심마저 느끼게 했습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이명박 대통령의 독선과 종교편향을 규탄하기 위해 이 자리에 모였습니다만 그것이 궁극의 목표일 수는 없습니다. 개신교 편향에 대해서 지나친 피해의식을 가져서도 안 됩니다. 그것은 오히려 이명박 대통령의 의도에 휘말리는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은 노골적으로 편향된 국정운영을 함으로써 자신의 지지기반을 공고히 하고 있습니다. 더 이상 국민을 분열 시키는 것으로 정국을 돌파하고 공포 정치로 국민을 억압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오늘 우리들의 이 모임은 불교의 권익을 지키기 위해서가 아니라, 이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한 참회와 발원의 도량이어야 합니다. 한 번 냉정하게 생각해 보십시오. 오늘 이 모임 이후 이명박 대통령이 사과를 하고, 어청수경찰청장이 물러난다 한들 무엇이 달라지겠습니까? 대통령이 근본적으로 국정 운영 철학을 바꾸지 않는 한 독선의 내성만을 키울 것입니다. 촛불 사과 이후 더욱 국민을 적대시하는 태도가 그것을 증명합니다.
이 기회에 주변을 한번 살펴보십시오. 자영업자들은 IMF때보다 더 어렵다고 하소연을 합니다. 갈수록 늘어나는 비정규직은 생존 자체를 위협받고 있습니다. 서민들의 가계 또한 날로 힘들어지는데 사교육시장은 춤을 춥니다. 그런데도 이에 대한 대책은 찾아 볼 길이 없습니다. 오직 경제를 강조하며 대기업과 부자 위주의 정책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보십시오. 수출 주도형산업 구조에서 대기업의 중요성을 100% 인정한다고 하더라도, 중소기업이나 하청업체, 비정규직 종사자들과의 임금 격차와 이에 다른 상대적 박탈감은 성장론의 비인간적 실체를 말해 줍니다. 이런 양극화의 심화 과정에서 부자들은 더 부자가 되는데도 감세 정책을 펴겠답니다. 이런 정책은 결과적으로 대기업에도 부자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내수시장이 무너지기 때문입니다.
현재 이명박 대통령의 오만과 독선을 견제하는 데 불교계가 앞장을 서야 합니다. 불사를 구실로 적당히 정권과 타협한다면 그것이야말로 불조를 욕되게 하는 일입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민주주의와 국민의 행복추구권을 지켜내는 것이야말로 대작 불사일 것입니다.
이번 모임을 계기로 불교계는 오로지 부처님 가르침에 입각하여 온 생명의 평화와 행복을 위해 이명박 대통령의 잘못을 바로잡아야 합니다. 이명박 대통령으로부터 진심어린 대국민 사죄를 이끌어내야 합니다.
더 늦기 전에 이명박 대통령은 국민에게 무릎을 꿇고 사죄를 해야 합니다. 그것이 대통령도 살고 국민도 살 길입니다. 국민과 대통령이 적대감을 가진 상태에서 대통령의 권력이 무슨 소용입니까? 대통령을 부정하는 국민 또한 행복할 수 없습니다.
부디 이명박 대통령은 결자해지의 차원에서, 기득권층과 일부 극우 보수 개신교 세력의 그늘에서 벗어나 모든 것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근본주의적 개신교 장로 대통령이 아니라 국민의 대통령으로 환골탈태하시기 바랍니다.
사부대중 여러분! 저는 오늘 이 모임 이후, 더 이상 불자들이 목소리를 높이지 않아도 되는 세상을 위하여 오체투지의 길을 나설 것입니다. '사람의 길, 생명의 길, 평화의 길'을 찾아서 지리산에서 계룡산을 거쳐 묘향산까지, 수행자로서 제 삶을 반조하고 이 땅 모든 생명의 평화를 기원하는 오체투지의 참회의 기도를 할 것입니다. 지금 제가 할 수 있는 일은 기도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그 길을 갑니다.
부처님의 자비가 온 누리에 충만하기를 기원합니다. 고맙습니다.
수경 스님(화계사 주지)
# by 은하 | 2008/08/28 10:50 | 우리시대 | 트랙백 | 덧글(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