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6일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경제의 탈정치화를 옹호하는 이런 주장이 가진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어디서 경제가 끝나야 하고, 어디가 정치가 시작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경제의 영역에 속하는) 시장은 그 자체가 정치의 산물이다. 시장을 지탱하는 모든 소유권과 기타 권리들은 정치적인 기원을 가진다는 점에서 시장 역시 정치의 산물인 것이다. 경제적 권리는 정치적 기원을 갖는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많은 경제적 권리들이 과거에는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례들중에는 아이디어를 소유할 권리, 그리고 어린 나이에는 일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 이런 권리들이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을 당시에는, 이것을 존중하는 것이 왜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무수한 '경제적'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경제를 탈정치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경제와 정치의 구분선이 옳다는 가정이 있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270쪽)
변화와 희망을 주된 모토로 하는 오바마는 그 실현수단으로 의료보험, 교육, 에너지 분야의 개혁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미국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묻는다면 그는 워싱턴의 정치구조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옥같은 명문으로 심금을 울리기로 유명한 그의 연설문은, 때때로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각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바마는 매 연설마다 로비스트에게 좌지우지되는 워싱턴 정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숨기지 않으며, 여기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비롯되었다는 신념을 끊임없이 역설한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로비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의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의사소통과 여론형성과정을 무력화시키고,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로비능력을 지닌 소수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집중시킨다. 스스로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희석되어버리는 것이다. 오바마 진영에서 경선기간부터 로비스트들의 후원금은 받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소수에 의한 정치지배를 고쳐내지 못한다면 공익과 약자를 위한 그 어떤 정책도 실현화 될 것이라는 확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장집이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로비정치가 대의성을 왜곡시킨다면, 한국에서는 실제 우리 사회의 갈등의 구조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독점적 정치구조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구조의 반작용으로 일상화된 시민여론이 직접적으로 폭발하는 현상은, 그 폭발력에 비해 미미한 제도적 실천성으로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폭발적인 시민의 힘이 아니라 (이것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목소리가 실질적이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과 실천의 장이다.
문제는 언제나 정치였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이 정치판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그 결과가 전교조가 미는 후보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귀결된 것은, 정치는 애초에 글러먹었으니 정치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박힌 탓이다. 특히나 정치의 대안으로 경제계에 기대는 심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CEO 지도자론을 거쳐, 스스로 화식열전의 인물임을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정부는 정치는 경제회생을 선도하는 기업을 철저하게 후원해주는 서포터즈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전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정부가 있었으니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끝없는 정치부정 끝에 '정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이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아직도 문제다.
정치가 문제인 까닭은 정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아주 간단한 비유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구슬은 꿰기 나름에 따라 목걸이도, 귀고리도, 팔찌도 될 수 있다. 목걸이를 만들 것인지, 귀고리를 만들 것인지 미리 상을 잡아놔야 이에 걸맞는 훌륭한 구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보배를 만드는 건은 구슬업자들에게 넘어갔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곳에서, 목걸이만한 팔찌가 나오고, 짝이 안 맞는 귀고리가 생겨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이전 발언에 분노했던 것은 스스로 정치의 임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규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정치다. 장하준이 지적한대로 지적소유권 및 아동노동에 관한 논쟁처럼 어떤 시장을 만들 것인지가 철자한 정치적 논쟁을 통해 결정된다. 대통령이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집중하는 일이지, 앞장서서 시장을 초권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규제도 풀어놨는데 재계가 투자를 안 한다"는 불평이라니!
정치가 문제라는 의미는 지금의 정치권이 경제를 성공한 기업인의 무림쟁패극으로 인식하여, 그 안팎의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삶과 눈물을 완벽히 지워버린 얄팍하고도 천박한 인식을 지녔음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력이란 포춘지에 랭크되어 있는 상위 500개 기업의 수익률이 아니라, 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웨이트리스가 아픈 아이를 위해 휴가를 내어도 해고당할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가에 달렸다"는 오바마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의 한 대목이 진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정치계에서 로비스트를 몰아내야 하는 까닭은 이 웨이트리스와 아이디어 외에 가진 것 없는 무명씨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치가 문제라는 것은 정치에서의 작은 결정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쯤에서 우리의 출발선은 명확해진다.
IMF 이후 10년도 더 지났건만, 해마다 경제가 이슈가 아닌 적이 없었다. 경제살리기 담론은 지나칠정도로 쏟아져나오는데, 정작 어떤 경제여야 하는지는 논의된 바가 없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정치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끔 만들어버리는 정치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야할 일이 대기업 후원이라고 믿음이 상식이 되어버린 정치철학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원하게 일갈할 수 있어야 한다. MB 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아마 현 정권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을테니 이는 비극이다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시민사회에 만연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환멸과 증오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를 포기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심판할 때, 정치는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정치야말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1. 오바마는 정작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 그의 성향보다는 오히려 이 점이 더욱 걱정된다. 당신, 미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겠나. 당선 자체가 업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오바마 대선후보 수락연설은 수십번 들으며, 들을 때마다 울컥하고 있다.
2. 최장집의 지론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구축해야 할 것을 분명히 제시해주는 탁월한 지론이지만, 요동치는 정국에서 한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선택을 앞에 두면 무력해지는 감이 있다.
3. 마지막 문단의 한 문장은 관악구 진보신당에서 일하는 선배가 총선직후 남긴 말에서 따왔다. "유권자는 기권으로 정치를 심판하지만, 정치는 심판받지 않는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270쪽)
제가 워싱턴에 가져간 것이 그 목소리들입니다. 그 곳에서 제가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은 대학 학비를 좀 더 감당할 만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가정들이 빚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는 파산법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저는 현 세대에서 가장 로비를 몰아내는 개혁(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혁은 로비스트들이 미국 시민들에게 그들이 누구에게서 돈을 모금하고, 의회의 누구에게 그 돈을 보내는지를 말하도록(tell)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2008. 02. 13. 제너럴 모터스 연설, 출처: 테라포밍의 이글루)
변화와 희망을 주된 모토로 하는 오바마는 그 실현수단으로 의료보험, 교육, 에너지 분야의 개혁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미국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묻는다면 그는 워싱턴의 정치구조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옥같은 명문으로 심금을 울리기로 유명한 그의 연설문은, 때때로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각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바마는 매 연설마다 로비스트에게 좌지우지되는 워싱턴 정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숨기지 않으며, 여기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비롯되었다는 신념을 끊임없이 역설한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로비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의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의사소통과 여론형성과정을 무력화시키고,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로비능력을 지닌 소수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집중시킨다. 스스로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희석되어버리는 것이다. 오바마 진영에서 경선기간부터 로비스트들의 후원금은 받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소수에 의한 정치지배를 고쳐내지 못한다면 공익과 약자를 위한 그 어떤 정책도 실현화 될 것이라는 확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장집이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로비정치가 대의성을 왜곡시킨다면, 한국에서는 실제 우리 사회의 갈등의 구조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독점적 정치구조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구조의 반작용으로 일상화된 시민여론이 직접적으로 폭발하는 현상은, 그 폭발력에 비해 미미한 제도적 실천성으로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폭발적인 시민의 힘이 아니라 (이것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목소리가 실질적이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과 실천의 장이다.
문제는 언제나 정치였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이 정치판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그 결과가 전교조가 미는 후보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귀결된 것은, 정치는 애초에 글러먹었으니 정치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박힌 탓이다. 특히나 정치의 대안으로 경제계에 기대는 심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CEO 지도자론을 거쳐, 스스로 화식열전의 인물임을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정부는 정치는 경제회생을 선도하는 기업을 철저하게 후원해주는 서포터즈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전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정부가 있었으니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끝없는 정치부정 끝에 '정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이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아직도 문제다.
정치가 문제인 까닭은 정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아주 간단한 비유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구슬은 꿰기 나름에 따라 목걸이도, 귀고리도, 팔찌도 될 수 있다. 목걸이를 만들 것인지, 귀고리를 만들 것인지 미리 상을 잡아놔야 이에 걸맞는 훌륭한 구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보배를 만드는 건은 구슬업자들에게 넘어갔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곳에서, 목걸이만한 팔찌가 나오고, 짝이 안 맞는 귀고리가 생겨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이전 발언에 분노했던 것은 스스로 정치의 임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규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정치다. 장하준이 지적한대로 지적소유권 및 아동노동에 관한 논쟁처럼 어떤 시장을 만들 것인지가 철자한 정치적 논쟁을 통해 결정된다. 대통령이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집중하는 일이지, 앞장서서 시장을 초권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규제도 풀어놨는데 재계가 투자를 안 한다"는 불평이라니!
정치가 문제라는 의미는 지금의 정치권이 경제를 성공한 기업인의 무림쟁패극으로 인식하여, 그 안팎의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삶과 눈물을 완벽히 지워버린 얄팍하고도 천박한 인식을 지녔음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력이란 포춘지에 랭크되어 있는 상위 500개 기업의 수익률이 아니라, 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웨이트리스가 아픈 아이를 위해 휴가를 내어도 해고당할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가에 달렸다"는 오바마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의 한 대목이 진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정치계에서 로비스트를 몰아내야 하는 까닭은 이 웨이트리스와 아이디어 외에 가진 것 없는 무명씨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치가 문제라는 것은 정치에서의 작은 결정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쯤에서 우리의 출발선은 명확해진다.
IMF 이후 10년도 더 지났건만, 해마다 경제가 이슈가 아닌 적이 없었다. 경제살리기 담론은 지나칠정도로 쏟아져나오는데, 정작 어떤 경제여야 하는지는 논의된 바가 없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정치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끔 만들어버리는 정치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야할 일이 대기업 후원이라고 믿음이 상식이 되어버린 정치철학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원하게 일갈할 수 있어야 한다. MB 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아마 현 정권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을테니 이는 비극이다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시민사회에 만연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환멸과 증오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를 포기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심판할 때, 정치는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정치야말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1. 오바마는 정작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 그의 성향보다는 오히려 이 점이 더욱 걱정된다. 당신, 미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겠나. 당선 자체가 업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오바마 대선후보 수락연설은 수십번 들으며, 들을 때마다 울컥하고 있다.
2. 최장집의 지론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구축해야 할 것을 분명히 제시해주는 탁월한 지론이지만, 요동치는 정국에서 한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선택을 앞에 두면 무력해지는 감이 있다.
3. 마지막 문단의 한 문장은 관악구 진보신당에서 일하는 선배가 총선직후 남긴 말에서 따왔다. "유권자는 기권으로 정치를 심판하지만, 정치는 심판받지 않는다"
# by 은하 | 2008/09/06 06:23 | 우리시대 | 트랙백(2) | 덧글(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