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경제의 탈정치화를 옹호하는 이런 주장이 가진 첫 번째 문제는 바로 어디서 경제가 끝나야 하고, 어디가 정치가 시작되어야 하는지 분명히 알 수 있다고 가정하는 데 있다. 그러나 (경제의 영역에 속하는) 시장은 그 자체가 정치의 산물이다. 시장을 지탱하는 모든 소유권과 기타 권리들은 정치적인 기원을 가진다는 점에서 시장 역시 정치의 산물인 것이다. 경제적 권리는 정치적 기원을 갖는다. 지금은 당연시되고 있는 많은 경제적 권리들이 과거에는 정치적으로 뜨거운 논쟁의 대상이었다. 이런 사례들중에는 아이디어를 소유할 권리, 그리고 어린 나이에는 일하지 않을 권리가 포함된다. 이런 권리들이 정치적인 논쟁의 대상이었을 당시에는, 이것을 존중하는 것이 왜 자유 시장과 양립할 수 없는가 하는 무수한 '경제적' 주장들이 제기되었다. 경제를 탈정치화해야 한다는 신자유주의자들의 주장의 이면에는 자신들이 생각하는 경제와 정치의 구분선이 옳다는 가정이 있는데, 그러나 여기에는 아무런 근거가 없다.

(장하준, 나쁜 사마리아인들, 270쪽)

 

제가 워싱턴에 가져간 것이 그 목소리들입니다. 그 곳에서 제가 처음으로 발의한 법안은 대학 학비를 좀 더 감당할 만하게 만드는 것이었습니다. 그 곳에서 가정들이 빚으로부터 빠져나오는 것을 더욱 어렵게 하는 파산법에 맞서 싸웠습니다. 그리고 거기에서 저는 현 세대에서 가장 로비를 몰아내는 개혁(법안)을 통과시켰습니다. 이 개혁은 로비스트들이 미국 시민들에게 그들이 누구에게서 돈을 모금하고, 의회의 누구에게 그 돈을 보내는지를 말하도록(tell) 하는 것이었습니다.

(버락 오바마, 2008. 02. 13. 제너럴 모터스 연설, 출처:
테라포밍의 이글루)


변화와 희망을 주된 모토로 하는 오바마는 그 실현수단으로 의료보험, 교육, 에너지 분야의 개혁을 내걸고 있다. 그러나 오바마에게 미국사회의 가장 근본적인 문제점을 묻는다면 그는 워싱턴의 정치구조라고 대답할 것이다. 주옥같은 명문으로 심금을 울리기로 유명한 그의 연설문은, 때때로 그러기에 가장 중요한 부분은 부각되지 않기도 한다. 그렇지만 우리는 오바마는 매 연설마다 로비스트에게 좌지우지되는 워싱턴 정가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숨기지 않으며, 여기에서 미국 민주주의의 위기가 비롯되었다는 신념을 끊임없이 역설한다는 점에 주목해 볼 필요가 있다.

로비정치의 가장 큰 문제점은 대의성을 심각하게 왜곡시킨다는 점이다. 의사소통과 여론형성과정을 무력화시키고, 거대한 자금력을 바탕으로 한 로비능력을 지닌 소수에게 사실상의 권력을 집중시킨다. 스스로에 의한 지배라는 민주주의의 대원칙이 희석되어버리는 것이다. 오바마 진영에서 경선기간부터 로비스트들의 후원금은 받지 않기로 한 것도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소수에 의한 정치지배를 고쳐내지 못한다면 공익과 약자를 위한 그 어떤 정책도 실현화 될 것이라는 확신은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최장집이 정당정치의 제도화를 그토록 강조한 이유도 별반 다르지 않다. 미국에서는 로비정치가 대의성을 왜곡시킨다면, 한국에서는 실제 우리 사회의 갈등의 구조와 여론을 반영하지 못하는 보수독점적 정치구조가 민주주의의 위기를 초래하고 있다. 반면 이러한 구조의 반작용으로 일상화된 시민여론이 직접적으로 폭발하는 현상은, 그 폭발력에 비해 미미한 제도적 실천성으로 정치 자체에 대한 혐오와 반감을 키우고 있다. 지금 한국사회에 절실히 필요한 것은 폭발적인 시민의 힘이 아니라 (이것이 불필요해서가 아니라, 이미 충분히 갖추어져 있기 때문이다), 시민사회의 다양한 갈등과 목소리가 실질적이고도 지속적인 영향력을 확보할 수 있는 제도적 공간과 실천의 장이다.

문제는 언제나 정치였다. 지난 서울시 교육감 선거에서 '교육이 정치판에 물들어서는 안 된다'는 논리가 상당한 설득력을 발휘했던 것도 바로 이 때문이며, 그 결과가 전교조가 미는 후보를 떨어뜨려야 한다는 판단으로 귀결된 것은, 정치는 애초에 글러먹었으니 정치바깥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인식이 성공적으로 사람들의 뇌리에 뿌리박힌 탓이다. 특히나 정치의 대안으로 경제계에 기대는 심리는 한 시대를 풍미한 CEO 지도자론을 거쳐, 스스로 화식열전의 인물임을 자임하는 이명박 정부를 탄생시켰다. 이 정부는 정치는 경제회생을 선도하는 기업을 철저하게 후원해주는 서포터즈의 역할을 자임하고 있다. 그 전에 '권력은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말한 노무현 정부가 있었으니 어느 날 하늘에서 뚝 떨어진 배는 아니다. 그러나 이렇게 끝없는 정치부정 끝에 '정치를 부정하는 정치세력'이 출범했음에도 불구하고 정치는 아직도 문제다.

정치가 문제인 까닭은 정치는 모든 것이기 때문이다. 이는 '구슬이 서 말이라도 꿰어야 보배'라는 아주 간단한 비유만으로도 설명할 수 있다. 구슬은 꿰기 나름에 따라 목걸이도, 귀고리도, 팔찌도 될 수 있다. 목걸이를 만들 것인지, 귀고리를 만들 것인지 미리 상을 잡아놔야 이에 걸맞는 훌륭한 구슬이 나오는 것도 당연한 일이다. 그러니 보배를 만드는 건은 구슬업자들에게 넘어갔다고 불평을 터뜨리는 곳에서, 목걸이만한 팔찌가 나오고, 짝이 안 맞는 귀고리가 생겨나는 것은 이상스러운 일이 아니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는 노무현의 이전 발언에 분노했던 것은 스스로 정치의 임무를 방기했기 때문이다. 권력이 시장으로 넘어갔다고 규정해버리는 것 자체가 정치다. 장하준이 지적한대로 지적소유권 및 아동노동에 관한 논쟁처럼 어떤 시장을 만들 것인지가 철자한 정치적 논쟁을 통해 결정된다. 대통령이 할 일은 바로 여기에 집중하는 일이지, 앞장서서 시장을 초권력화시키는 것이 아니다. 하물며 "규제도 풀어놨는데 재계가 투자를 안 한다"는 불평이라니!

정치가 문제라는 의미는 지금의 정치권이 경제를 성공한 기업인의 무림쟁패극으로 인식하여, 그 안팎의 수많은 경제주체들의 삶과 눈물을 완벽히 지워버린 얄팍하고도 천박한 인식을 지녔음을 말한다. "미국의 경제력이란 포춘지에 랭크되어 있는 상위 500개 기업의 수익률이 아니라, 한 개인의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시장에서 기회를 얻을 수 있는지 여부와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웨이트리스가 아픈 아이를 위해 휴가를 내어도 해고당할 두려움에 떨지 않아도 되는가에 달렸다"는 오바마의 대선후보 수락연설의 한 대목이 진짜 정치의 의미가 무엇인지 가르쳐준다. 정치계에서 로비스트를 몰아내야 하는 까닭은 이 웨이트리스와 아이디어 외에 가진 것 없는 무명씨의 의지가 정치에 반영되는 것을 방해받지 않기 위해서이다. 정치가 문제라는 것은 정치에서의 작은 결정이 세상의 많은 부분을 바꾸어놓을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쯤에서 우리의 출발선은 명확해진다.

IMF 이후 10년도 더 지났건만, 해마다 경제가 이슈가 아닌 적이 없었다. 경제살리기 담론은 지나칠정도로 쏟아져나오는데, 정작 어떤 경제여야 하는지는 논의된 바가 없다. 한국사회의 근본적인 문제는 경제가 아니고 정치다. 경제가 제대로 돌아가지 않게끔 만들어버리는 정치구조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권이 해야할 일이 대기업 후원이라고 믿음이 상식이 되어버린 정치철학이다.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시원하게 일갈할 수 있어야 한다. MB 이 바보야, 문제는 정치야! 아마 현 정권이 이를 전혀 모르고 있을테니 이는 비극이다만, 그보다 더 큰 비극은 시민사회에 만연한 정치 그 자체에 대한 끝없는 환멸과 증오다. 그러나 우리가 정치를 포기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심판할 때, 정치는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정치야말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1. 오바마는 정작 정치개혁을 어떻게 할 것인지 구체적 사안에 대해서는 두루뭉실하게 넘어간다. 그의 성향보다는 오히려 이 점이 더욱 걱정된다. 당신, 미국인 뿐만 아니라 세계인에게 희망의 증거가 되어줄 수 있겠나. 당선 자체가 업적이지만, 우리나라의 사정이 사정이다 보니, 오바마 대선후보 수락연설은 수십번 들으며, 들을 때마다 울컥하고 있다.

2. 최장집의 지론은 장기적으로 한국사회가 구축해야 할 것을 분명히 제시해주는 탁월한 지론이지만, 요동치는 정국에서 한 개인으로서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실존적 선택을 앞에 두면 무력해지는 감이 있다.

3. 마지막 문단의 한 문장은 관악구 진보신당에서 일하는 선배가 총선직후 남긴 말에서 따왔다. "유권자는 기권으로 정치를 심판하지만, 정치는 심판받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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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하 | 2008/09/06 06:23 | 우리시대 | 트랙백(2)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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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racked from zagni's me2DAY at 2008/09/08 04:36

제목 : 자그니의 생각
유권자는 기권으로 정치를 심판하지만, 정치는 심판받지 않는다...more

Tracked from metavital's .. at 2008/09/26 03:43

제목 : meta의 생각
"우리가 정치를 포기라는 이름으로 정치를 심판할 때, 정치는 결코 심판받지 않는다. 정치야말로 우리가 살아갈 세계를 함께 설계해나가는 과정이기 때문일 것이다." - 은하...more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8/09/06 06:25
수십전 -> 수십번?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1:44
아니 '철자한' 도 오타 찾아주시지 ㅜㅜ
Commented by 차가운사과 at 2008/09/06 06:48
정치가 짜증난다는 사람은 있어도, 국회의사당에 지긋지긋할 정도로 많은 남자들이 꾸역꾸역 들어 차 있다는 사실에 짜증내는 사람은 별로 없더군요. 저는 상당히 짜증나는데 말입니다. 그렇다고 박근혜을 대통령으로 만들어 유리천장을 박살내 버리자는 구호를 인정하지는 못하는 사람이지만 말입니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1:45
심 언니 같은 사람이 계속 정치계에 입문하여 무언가 변화시키는 모습을 보여준다면 달라지겠지요. 아찔하게 늦은 변화라 감이 안 오기도 하지만, 그래도 역사의 두께가 쌓여있을때는 변화가 없는 것도 아니리라 봅니다.
Commented by 머스타드 at 2008/09/06 08:28
마지막 3번 정말 절실하게 와닿는군요. 유권자에게 선거를 하지 않을 권리 운운하던 치들에게 꼭 말 해줘야 겠습니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1:44
유용한 명언. 저도 여기저기 막 써먹어요 ㅎㅎㅎ
Commented by 나아가는자 at 2008/09/06 10:58
글 잘 읽었습니다. 음..최장집씨와 그의 제자들이 쓴 '어떤 민주주의인가."라는 책을 두세번 읽어 봤는데 그 의견 -정당민주주의,대중정당정치,책임정당정치- 에 깊은 동의를 했습니다만..저 역시 현실앞에서 무엇을 해야하는지 고민하고 있어요. 지금 하고 있는 공익 복무가 끝나면, 정당에 가입할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막상 가입한다고 해도 무엇을 어떻게 해야할지 고민되네요.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2
가입 자체가 하나의 중요한 행동이 될텐데요 뭘. 하지만 제도정치가 제대로 돌아갈 때까진 상당한 시간이 걸릴텐데. ㅡㅜ
Commented by 말하는당근 at 2008/09/06 12:36
우리는 대학 다니면서 '시위나 집회 그런거 가지 말고 고시 공부해라' 소리 듣고 사는 세대인지라... 먹고사니즘은 언제나 정치와 대립되는 것 같습니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6 13:03
시위와 집회는 정치의 극히 일부분일 뿐이니까 꼭 그렇게 생각할 필요는 없을 거 같아요.
Commented by 회기동언니 at 2008/09/06 13:01
1에 적극 공감이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3
오~간만에 언니닷!ㅋㅋ 열망이 클수록 절망이 큰 법이니까. 과연 차기황상주자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을까요.
Commented by megalo at 2008/09/06 13:16
교육도 경제도 문화도, 심지어 종교마저도 정치와 연관 짓지 않으면 그 어떤 실마리를 찾지 못할거 같습니다. 기득권이 언제나 대중이 알면 안되는 것, 그들에게서 철저히 떼어놓아야하는 것은 '정치'가 아닐까 생각해봅니다. 결국 하나의 작은 조각으로 눈을 가려 전체를 못보게 하려는게 아닐지...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3
그러게요. 정치혐오증은 그들이 바라던 것일지도 몰라요.
Commented by 공감하며 at 2008/09/06 13:45
예로부터 정치는 엘리트 양반 '나랏님들'이 하는 것으로 타자화 시켜놓고, 번번이 실망스러운 모습에 '정치인들은 썩었어..'하고 물러서서 한숨만 쉬고 있는 것이 우리 모습이었던듯. '신성한' 시민들의 촛불집회가 '불순한 정치세력'으로 변질된다는 표현만으로 쇼킹한 우리사회의 정치에 대한 관념을 보여주었듯이 말이지요. 언제나 날카로워서 즐거운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4
엉뚱한 방향으로 날카로워지지 않을까 늘 걱정입니다. 불순한 정치적 목적을 허하라!...가 이 시대에 필요한 말이 되겠네요.
Commented by Arouet at 2008/09/06 16:00
사실 2에 대해 사회과학적 '이론'은 크게 기여하기 힘들지 않나 생각합니다. 오히려 그보다는 개인의 실존적 결단 내지 방향성을 제시해줄 수 있는 문학이나 예술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지 않을까 싶어요. 물론 사실관계를 보는 패러다임을 제시하는 역할을 맡는다는 점에서 사회과학이 완전히 무력하지는 않겠습니다만...(예전에 88만원 세대에 대해 누가 비슷한 비판을 했던 기억이 나서 문득 댓글 적습니다.) 좋은 글 잘 읽고 갑니다.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4
그러네요. 저도 가만 생각해보면 문화나 예술에서 오히려 순간순간의 실존적 결단을 내릴 때 도움을 많이 받은 거 같아요. 역시 세상에서 제일 위대한 직업은 작가! 이러고 있습니다.^^
Commented by 부정변증법 at 2008/09/07 21:37
일전에 오바마가 타이라 쇼에 나와서 "정치는 선거에서 이기는 게임이기에 자기 역시 일종의 술수를 쓸수 밖에 없다."고 밝힌적 있습니다. 그러자 질문자가 "그럼 당신이 하는 말이 실망스러울때 변절인지 정치적 술수인지 어찌 아는가?"라고 묻자, "의료개혁, 교육개혁, 이 두가지마저 딴말 하면 그때는 변절이다. 하지만 다른 분야에서는 아무리 두루뭉실하더라도 이 두가지를 양보하지 않는 한 오바마는 오바마나"라고 했습니다. 과연 그의 두루뭉술함이 변절인지, 아니면 정치적 술수인지는 지나보면 알겠죠.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5
이기는 것은 무엇보다도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손문이나 여운형처럼 수없는 타협을 해왔어도, 본질적인 것만은 변하지 않았던 사람들의 예들이 있는데, 오바마도 과연 그렇게 될까요.
Commented by 핀투리키오 at 2008/09/07 23:00
2와 관련하여, 비판적인 사회과학 이론이 무슨 역할을 할 수 있는가에 대해선 김경만의 '담론과 해방'도 참고해볼 많나 책입니다. 좀 길고 어렵지만. -_-ㅋ (개인적인 책 소개글 남깁니다. http://leoford.egloos.com/4599863)

지식인과 일반인이 '지식'을 바탕으로 하는 일에는 엄연한 차이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존적인 결단은 언제나 개인에게 주어진 무거운 과제죠. 사르트르의 말처럼...분명한 것은 그런 결단조차 사회과학적 지식의 뒷받침을 암암리에 전제한다는 것..이 아닐지.
Commented by 은하 at 2008/09/08 02:16
좋은 글 감사합니다.
실존적 결단을 하다가 막힐 때 사회과학의 지식을 찾기도 하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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