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09월 08일
지금 '서울대법대' 강의석 군에게 가장 필요한 것
태환아 너도 군대 가(대학내일)
대학에 입학할 무렵, 대학생활 중 강의실에서 얻어가는 것의 비중은 30%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내 경험을 생각해 보았을때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학내자치활동이라던가, 아무 생각없이 노는 것 같아 보이는 술자리나 MT에서조차도 다른 사람과 지내는 법이라던가, 즐겁게 노는 법과 같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수업이라는 단힌 공간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삶의 현장과 묵직한 사유를 마주할 자유와 기회는 대학생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허나 이 말은 이처럼 강의시간 외에도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많으니 이를 놓치지 말라는 충고이지, 결코 강의를 소흘히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강의실 안에서는 죽은 지식 외에 배울 게 없다고 뛰쳐나가던 옛 열혈투사들이 왜 배움을 찾아 도로 학교로 들어오는 것인가.
나는 강의실은 여러가지 교양과 전공지식 이전에, 근본적으로는 '겸손함'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입학 이전 각 고등학교의 불사조들조차 다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공간이며, 설령 낡은 책들에 담긴 내용을 죽은지식이라 부르며 고민하는 순간에도 우리들은 층층히 쌓여 온 낡은 지식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 역사 앞에 고개를 숙이며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덕목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지성인이 되고자 한다면 대학생활동안 꼭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나는 주변의 지인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바로 위와 같은 보충 설명을 꼭 첨부해서 말해준다. 대학생활 중 강의실에서 얻어가는 건 30%정도라고.
강의석 군의 최근 논란이 된 글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안타까움이 들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강의시간에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글에서 너무나 티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2004년, 그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학교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을 때 그를 지지했었다. 그 때부터 유난히 말이 많았던 언론플레이는 정치나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재능이고, 중요한 것은 언론플레이 자체기 아니라 그에 걸맞는 실천이다. 서울대 법대에 수시모집을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시를 위해 단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한끼 굶어도 배고픔에 몸부림치는 범인으로서는, 그러한 생을 건 투쟁의 진정성은 함부로 모욕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 쓴 그 글에서는 그러한 진정성과 지능적 행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석 글의 논리적 모순은 간단하게 넘어가고자 한다.(자세히 보고 싶으면 이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병역면제와 강의석)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는 역으로 병역이 남성들의 삶에 커다란 짐임을 국가 스스로 시인하는 것임에 다름없으나, 강의석은 이 문제의 책임을 오히려 메달리스트 개개인에게 돌리는 우를 범했다. '나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동참하라, 아니면 군대가라'는 논지는 지극히 독선적인데다, 더욱이 그 근거가 '당신만큼 훌륭한 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것이다'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도리어 욕되이 하는 것이다.
강의석 군에게 단순히 논지의 조악함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권력의 정당성이다. 그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바 있던 '유명인'이며, 현재는 서울대 법대생이라는 타이틀마저 달고 있다. 그가 한사코 부정해도 그가 젊은 나이에 쌓아온 이러한 이력들이 그의 활동에 따라다니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대학내일에 실린 일개 대학생의 글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 글쓴이가 '강의석'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언론플레이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세간에 분분한 유명세도, 또한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자 하는 욕망도 어느 활용하기 나름이며 그 자체로 비판을 받아야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설득력을 '철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논리를 세우기 위한 노력' 대신 이와 같은 유명세와 학력자본에 기대면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학력사회의 정점에서 얻은 권력을 벌써부터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조금 억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강의석은 남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하고, 보다 더 설득력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견주어보면 가만히 있어도 더 많은 것들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방향성과 운동목적 갖고 대학내일이란 공적 공간에 글을 썼다. 그러나 글 자체에 담긴 고민의 깊이와 논리의 섬세함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그의 운동은 이미 주어진 유명세와 학력자본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행위 그 이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에 도전하겠다면서 그 기득권의 일부가 되어 이에 의지해 살기에는 23살이면 너무 젊다. 인정받고 싶다면 그 누구도 유명세와 학력을 들먹일 수 없는, 그런 땀의 흔적이 엿보이는 글을 써야 한다. 당신에게 새삼 대학생활의 그 30%는 현재로서는 무엇보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대학내일에도 투고한 글입니다.
* 글 자체가 한 개인에 대해 수없이 쏟아지는 불균등한 논쟁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기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강의석 개인에게 개인으로서 거는 문제제기인만큼 개인에 대한 거친 비방댓글은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 강의석 뿐만이 아닙니다. 방송에 나왔던 공신(공부의신ㅡㅡ;;)이라던가, 상당부분 언론을 타는 서울대생들에게 쉽게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진정 공부를 한다면, 언젠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날이 오겠죠.
대학에 입학할 무렵, 대학생활 중 강의실에서 얻어가는 것의 비중은 30%정도라는 이야기를 들은 적 있다. 그리고 내 경험을 생각해 보았을때 이는 결코 틀린 말이 아니었다. 학내자치활동이라던가, 아무 생각없이 노는 것 같아 보이는 술자리나 MT에서조차도 다른 사람과 지내는 법이라던가, 즐겁게 노는 법과 같은 인생에 꼭 필요한 것들을 배울 수 있었고, 수업이라는 단힌 공간 안에서는 결코 느낄 수 없는 생생한 삶의 현장과 묵직한 사유를 마주할 자유와 기회는 대학생활에 있어서 빼 놓을 수 없는 축복이었다. 허나 이 말은 이처럼 강의시간 외에도 배울 수 있는 삶의 지혜가 많으니 이를 놓치지 말라는 충고이지, 결코 강의를 소흘히 하라는 의미는 아니다. 강의실 안에서는 죽은 지식 외에 배울 게 없다고 뛰쳐나가던 옛 열혈투사들이 왜 배움을 찾아 도로 학교로 들어오는 것인가.
나는 강의실은 여러가지 교양과 전공지식 이전에, 근본적으로는 '겸손함'을 배우는 자리라고 생각한다. 입학 이전 각 고등학교의 불사조들조차 다시 갓 초등학교에 들어간 어린아이의 마음으로 임해야 하는 공간이며, 설령 낡은 책들에 담긴 내용을 죽은지식이라 부르며 고민하는 순간에도 우리들은 층층히 쌓여 온 낡은 지식이라는 거인의 어깨 위에 앉아 있다. 역사 앞에 고개를 숙이며 겸허하게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덕목이야말로, 사람을 사람답게 만들어주는 것이며, 지성인이 되고자 한다면 대학생활동안 꼭 배워야 할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기에 나는 주변의 지인들이 대학에 입학하면, 바로 위와 같은 보충 설명을 꼭 첨부해서 말해준다. 대학생활 중 강의실에서 얻어가는 건 30%정도라고.
강의석 군의 최근 논란이 된 글을 접했을 때 가장 먼저 안타까움이 들었던 이유는 바로 그가 강의시간에 별로 공부를 하지 않았다는 것이 글에서 너무나 티가 났기 때문이다. 나는 2004년, 그가 종교의 자유를 주장하며 학교를 상대로 싸움을 걸었을 때 그를 지지했었다. 그 때부터 유난히 말이 많았던 언론플레이는 정치나 사회변혁을 꿈꾸는 자들에게는 꼭 필요한 재능이고, 중요한 것은 언론플레이 자체기 아니라 그에 걸맞는 실천이다. 서울대 법대에 수시모집을 지원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입시를 위해 단식을 한 것이 아니냐는 비아냥도 있었지만 한끼 굶어도 배고픔에 몸부림치는 범인으로서는, 그러한 생을 건 투쟁의 진정성은 함부로 모욕할 것이 아니라고 보았다. 그러나 최근에 쓴 그 글에서는 그러한 진정성과 지능적 행보를 발견하기란 어려운 일이었다.
강의석 글의 논리적 모순은 간단하게 넘어가고자 한다.(자세히 보고 싶으면 이 포스팅을 참조하세요 병역면제와 강의석) 올림픽 메달리스트에게 병역을 면제해주는 제도는 역으로 병역이 남성들의 삶에 커다란 짐임을 국가 스스로 시인하는 것임에 다름없으나, 강의석은 이 문제의 책임을 오히려 메달리스트 개개인에게 돌리는 우를 범했다. '나와 같이 양심적 병역거부에 동참하라, 아니면 군대가라'는 논지는 지극히 독선적인데다, 더욱이 그 근거가 '당신만큼 훌륭한 내가 양심적 병역거부를 할 것이다'라면 양심적 병역거부자들을 도리어 욕되이 하는 것이다.
강의석 군에게 단순히 논지의 조악함 때문에 비판하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가 얻을 수 있는 권력의 정당성이다. 그는 이미 한국사회에서 화제의 중심에 섰던 바 있던 '유명인'이며, 현재는 서울대 법대생이라는 타이틀마저 달고 있다. 그가 한사코 부정해도 그가 젊은 나이에 쌓아온 이러한 이력들이 그의 활동에 따라다니는 것은 결코 피할 수 없다. 대학내일에 실린 일개 대학생의 글이 이토록 큰 반향을 불러일으키는 것 역시 글쓴이가 '강의석'이기 때문이었다. 예전의 언론플레이와 마찬가지로 또 다시 세간에 분분한 유명세도, 또한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자 하는 욕망도 어느 활용하기 나름이며 그 자체로 비판을 받아야 할 만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자신이 주장하는 바의 설득력을 '철저한 자료조사와 치밀한 논리를 세우기 위한 노력' 대신 이와 같은 유명세와 학력자본에 기대면서 오피니언 리더가 되고자 한다면, 학력사회의 정점에서 얻은 권력을 벌써부터 멋대로 휘두르고 있다고 비판을 면하기는 어렵다.
조금 억울하게 들릴지도 모르겠지만 강의석은 남보다 훨씬 더 많이 공부하고, 보다 더 설득력있는 글을 쓸 수 있도록 노력해야 한다. 그는 현재의 시점에서 그와 비슷한 나이 또래의 젊은이들과 견주어보면 가만히 있어도 더 많은 것들을 손쉽게 가져갈 수 있는 위치에 이르렀다. 이와 같은 상황에서 그는 자기만족을 위해서가 아니라, 분명한 방향성과 운동목적 갖고 대학내일이란 공적 공간에 글을 썼다. 그러나 글 자체에 담긴 고민의 깊이와 논리의 섬세함이 따라주지 못한다면, 그의 운동은 이미 주어진 유명세와 학력자본의 힘으로 권력을 쟁취하고 세상을 바꾸겠다는 행위 그 이상이 되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사회의 기득권에 도전하겠다면서 그 기득권의 일부가 되어 이에 의지해 살기에는 23살이면 너무 젊다. 인정받고 싶다면 그 누구도 유명세와 학력을 들먹일 수 없는, 그런 땀의 흔적이 엿보이는 글을 써야 한다. 당신에게 새삼 대학생활의 그 30%는 현재로서는 무엇보다 필요할지도 모르겠다.
* 이 글은 대학내일에도 투고한 글입니다.
* 글 자체가 한 개인에 대해 수없이 쏟아지는 불균등한 논쟁의 일부가 될 수 밖에 없기에 미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어쨌거나 강의석 개인에게 개인으로서 거는 문제제기인만큼 개인에 대한 거친 비방댓글은 삼가해 주셨으면 합니다.
* 강의석 뿐만이 아닙니다. 방송에 나왔던 공신(공부의신ㅡㅡ;;)이라던가, 상당부분 언론을 타는 서울대생들에게 쉽게 볼 수 있는 태도가 아닐까 싶습니다. 아마 진정 공부를 한다면, 언젠가 진정으로 부끄러워하는 날이 오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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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by 은하 | 2008/09/08 04:48 | 생각 | 트랙백 | 덧글(3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