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2일
학문을 업으로 택하고자 하는 그대에게.
또 다시 대학원 원서접수 시즌이 왔다. 일반 기업 공채와 달리 6개월에 한 번씩 있기 때문에 자주 돌아온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 만큼 사람 마음도 자주 흔들어놓는 법. 게다가 그냥 상위교육과정으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여태까지 해오던 것 중에 그나마 유일하게 잘 했던 거라 마음이 가벼워지려 하는데, 누구 말마따나 종잇장의 '석사과정'이란 단어는 왜 이리 큰 무게감을 주는지.
대학을 다니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이 3번 지나갔지. 그 중 2번은 주저주저하다 끝내 쓰지 않았고 한 번은 아예 다른 곳을 썼다.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하자는 심리였다만 덜컥 붙어버렸고, 그랬기에 더 많은 고민을 하다 엎어져 버렸다. 그러느라 대학원 원서쓰게되기까지의 모든 고민을 겪어봤다는 게 위안이랄까.
4번째 접수 기간은 그냥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나가고 있다. 대학원에 관련한 모든 고민과 방황 끝에, 이제 대학원을 안 쓰는 심리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관악 구렁이 만세! 갈망하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파우스트>의 한 대목에도 만세!
근데 구원은 결국 자기가 하는 거더란 말이지. 답사가서 자문해 보았어. 이런저런 핑계와 구실들을 다 제껴놓고 말이야. 우리 집이 어마어마하게 부자라서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도 전혀 없고, 나는 또한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있어. 운명의 신인지 여신인지 확실히 그 분은 나의 편이야.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있어? 자 그래도 너는 공부를 계속 할래?
나의 답은 '아니다'였어. 정작 그런 상황이 온다면 말이야, 물론 평생 공부를 하는 삶이란 멋있기야 하지만 나는 답답해서 못 견딜 거 같단 말이지. 차라리 거리로 나갈래. 하늘이 언제나 나의 펀이라면 그 놈과 손을 맞잡고 혁명을 할 거야.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적절하게 수정이 가해져야 하겠지. 하지만 이제 확실해 진 건 내가 평생을 걸고 이루고 싶은 나의 진짜 꿈은 학문이 아니란 거야.
스케일 큰 현세주의자. 아마 나를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적당한 말일거야. 나는 당면한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관심사가 쏠려있는 현세주의자라고. 다만 이 세상 고민 저 혼자 다 짊어진 듯 스케일이 광활한 건 아마 지금 사는 나의 삶이 '과거와 미래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서 있다는 '역사의식' 때문이겠지.
5년 동안 학부에서 지지고 볶았던 역사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진실이지, 역사적 지식 그 자체를 더 생산해내라는 건 아니었어. 그런데 또 모르지. 나 말고 영혼이 맞는 다른 녀석에게는 그것을 또 원할 거 아니겠어. 어떤 존재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들이니 말야.
자, 이제 모든 조건은 클리어야. 그 동안 나를 가장 미치게 했던 건, 그토록 오래 지녀왔던 나의 소망을 외부의 힘(가정형편, 부모님과의 갈등, 나랑 잘 안 맞는 학풍 등) 혹은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 때문에 포기해야한다는 억울함과 무력감에서였지. 그런데 말야, 그거 그냥 착각이더라구. 결국 선택하는 건 자기 자신이야.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핑곗거리가 있어도 할 사람은 그냥 하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어쨌거나 선택했다는 행위 그 자체야.
애드거 스노 같은 종군(?)기자를 동경했더랬지. 허나 어리버리한 내가 했다가는 죽기 딱 좋을 직업 같다고 했더니, 은영언니가 전에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삶이 그곳으로 밀어넣은 것이라고 말 했어. 지금 절실하게 동의해. 아니 그들 뿐일까. 모든 사람의 운명은 그냥 삶이 거기다 나를 쳐박아 버렸기에 이루어지는 거 아니겠어. 근데 그 놈의 삶은 자기 안에서 나오더란 말이지.
나를 미치게까지는 안 해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은 아직까지 남아있고, 어떤 건 컴플렉스가 아니라 恨이 되어 버려서 평생 안 없어지겠지. 뭐 그래도 다른 운명이 날 간택했으니까 당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게 답사갔다 와서 뭔가 후련해진 이유야.
내가 했던 이런저런 고민을 다 거친 끝에, 이미 대학원에 간 사람도 있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이 모든 고민을 이겨내서 대단한 게 아니라, 공부로부터 그냥 간택받은 그 자체로 대단한거야. 다른 운명에게 간택받은 나와 같이 말이야. 그렇게 모든 운명에 경의를.
지금 대학원 원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고민할 것이 산더미같을테고, 우울하게도 뭐 앞으로도 그럴테지만-_-;; 당신이 공부를 택한게 아니야. 공부가 당신을 택한거고, 대학원이 당신 앞으로 온 거지. 남은 건 선택받은 자의 자부심. 그에 합당한 노력. 그리고 당신의 앞날에 당당하게 치어스☆
# by | 2008/10/22 23:56 | 생활 | 트랙백 | 핑백(1) | 덧글(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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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학원...가고 싶지만, 제 스스로 능력이 안된다고 절망하고 있지요. 제 블로그에 방금 끄적인 글에서도 말한 바이지만, 제대로된 지식도 없는 저를 공부가 택해줄런지...
공부가 앞으로도 계속 저를 택하련지는 모르지만...ㅡㅋ
우리 모두 화이팅입니닷!!
나아가는자, Wingyㅋㅋ//모르는 건 아직 안 왔다는 거고, 조금 더 갈 데 까지 가 보면 공부건 뭐건 내게 맞는 운명이 오겠지요 ㅋ 화링~
비공개//고마워요. 생일은 잘 보내셨는지.
자그니//어맛?ㅋㅋ 저는 딴 놈 알아보려고.
코나//Yeah~
중간자//브이^^
말하는당근//누가 공부를 본디 하고 싶어서 한대요.ㅋ
Lectom//11월 3~13일 제외하고, 월토일 어드매쯤
너도 치어스! 고마워. 시험 끝나면 맥주 한 잔 ㅇㅋ? ㅋㅋㅋㅋ 성춘이랑 주용한도 같이 보면 되겠네 ㅋㅋ
저 역시 내년에 대학원엘 가는데..
{공부하고 싶은 마음 + 돈 벌어야하는 현실} = 파트타임
이렇게 나오더군요.
운명을 설명하는 부분에서 탄성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