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29일
내가 하고 싶은 거짓말
너 꼭 기자 해야겠어? 니가 아직 사회를 한참 몰라서 그렇지 공무원이 최고야. 서울대까지 나와서 쪼들리며 살래?
어제 저녁에 한겨레 문화센터 기자 아카데미에 등록할 80만원 중 30만원만 달라고 했다가 엄마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미 익숙한 대화 패턴에 서운하다기보다는 강좌에 등록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먼저 앞선다.
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우리집에 정말로 현금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도 할머니 생신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나갔다. 그렇지만 만약에 내가 행시준비를 위해 학원비 80만원을 달라고 했으면, 빚 내어서라도 흔쾌히 내어주실 걸 알기에 그 부분만은 조금 서럽다.
기왕 이번 학기 자체가 거짓인 바에, 고시학원 등록한다고 해서 일단 돈이라도 타 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이내 고쳐먹었다. 말은 저래도 어차피 주실 터인데, 그 때의 괴로움은 또 어찌 견딜 것인가. 역시나 내일 중으로 계좌이체 해 주신댄다.
기왕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그토록 고시에 목매는 까닭은 그들의 세계관에 격조높고 행복한 삶을 살 방도로서'5급 이상의 공무원과 교사' 외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름 딸더러 품위있게 살라는 절실한 외침이다.
나는 그걸 깨 보여주고 싶다. 좁은 세계관을 지녔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서운함에, 질투에, 강박증에. 그러니 다른 종류의 품위있고 행복한 삶도 존재할 수 있음을 꼭 이해시켜야만 한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이해는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실존적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감내해야만 한다. 이상과 맞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무던히도 방황할 것이고, 육체적 피로와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스러워도 할 테고, 때로는 후회조차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집에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 행여나 '그래서 고시 보라할 때 보지 그랬냐'라는 회한서린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들게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의연하고 강하게, 후회없는 삶을 살고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정신이 아찔해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더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믿는다.
강한 척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로 강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 앞에서는 오히려 거짓말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
# by 은하 | 2008/10/29 01:13 | 생활 | 트랙백(1) | 덧글(3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