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0일
운명의 책
수학자 J는 항상 나에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MSN 창을 끄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까닭은,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J가 얼마나 수학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은 느낌만으로도 좋다. 다른 사람들도 그 순수함에 물들게(?) 만들 거 같은 기분을 준달까. 아, 물론 J의 일상적 생활과는 별 개의 이야기.
그 날도 J는 수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중 3때 만난 그를 수학으로 이끈 '운명의 책'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한 J는 나에게 되물어본다. "은하씨도 이런 운명의 책이 있어요?" 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불현듯 나도 궁금해진다. J만큼이나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을 운명의 책. 나에게도 있었나?
있다. 때로는 손에 잡자마자 번쩍 하고 영혼을 때리던 책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번 읽은 끝에 시나브로 마음 속에 무언가 자리잡게끔 만든 것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책과 조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대화를 재생해본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응?) 자꾸자꾸 거슬러올라다보니 나의 원점이 거기 있었다. 몇 권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운명의 책 영예의 1위! : <세계사신문>/ 사계절 (1999년)
J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사신문> 시리즈이다. 이전에 <역사신문>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던 바, <세계사 신문 > 시리즈도 나오자마자 단번에 구입했다. <역사신문>이 완간되었던 때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그리고 <세계사 신문>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한 가지 추억이 더 있다면, 바뀐 출판문화와 대형서점/온라인서점 등에 밀리고 치인 끝에 이미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문제집 가게가 되어버렸던, 학교 앞 조그마한 서점, 이른 바 '동네서점'에서 산 마지막 책이기도 했다.
<역사/세계사 신문> 시리즈는 참신한 형식에 출간당시부터 워낙 호평이 자자했다. 확실히 놀라운 것은 <세계사 신문> 이 책은 거의 10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아도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신문 형식인 만큼, 한 번에 꼭 다 읽지 못하고 '놓치는' 기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시도들이 신문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세계에 대한 조명, 세계체제론, 서구중심주의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벌어진 막연한 '동양적 판타지' 사이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 하나같이 깊고 무거운 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고 재미있었으니, 저자들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만 하다.
신문 형식의 역사서가 주는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오늘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사실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서 내게로 왔고, 나는 그 생동감이 좋았다. "모든 역사는 당대에 있어 '오늘의 고민'이었다". <세계사신문>을 통해 본 역사는 그러했다. 자연스레 어느덧 이 시대의 고민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때부터였으니, 가히 운명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의 변할 수 없는 원초적 사관을 부여해 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나라는 인간의 원점이랄까.
그러고보니 세계사'신문'이라니. 이래저래 운명을 못 비껴가는 책인듯 하다.-.-;;
* 유사한 종류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초등학교 4학년) - 나에게 있어 유럽문화 및 역사에 관한 입문서. 나의 복지국가와 혁명을 향한 열망이 생기도록 제대로 불붙여 주셨더랬다. 얄궂게도 이원복 아저씨는 그래놓고 지금은 새파란 만화를 그리시긴 하지만 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고등학교 1학년) - 고등학교 1학년 때 읽기에 매우 적절했던 책이었다. 끓는 피로 읽어야 제 맛인 책. 또한 그러하게 만드는 책. 대장정-4.19-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3부작(?)은 바로 그 열혈감성의 정점을 찍어준다. 지금 보면 낯간지러워서 조용히 웃지만, 스피디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여전히 재미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여기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김원태 선생님 추천도서였네.
대학와서 읽은 것 중에는? <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2008년)
<아리랑>은 고등학교 때 읽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대학교 1,2학년. 대학교 5학년이 되어서 읽으니, 여전히 가슴벅차기는 한데, 확실히 청소년기 때 읽었다면, 온 영혼을 사르면서 보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온 이후 가장 나에게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고 꼽는 까닭은 이 책이 내 20대 한 단락의 마침표였기 때문이다.
혁명가의 이야기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아리랑>에는 무용담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강한 경외를 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 제 1차 국공합작이 깨지고, 김산의 중국공산당 동지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나중에 구사일생 끝에 다시 만난 동지들은 각자의 탈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벙어리 거지 행세로 간신히 살아도망쳐나온 어느 소년의 사연. 그 역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잡혀서 수감되어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수감 동료가 그에게 속삭인다. 자신들과 달리 그 소년의 결박이 느슨하니 얼른 결박을 풀어서 창을 통해 탈출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문턱에 두고, 혼자 살아 탈출하는 이 소년을 질투할 법도 하건만, 감방의 수형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의 탈출을 기원하고, 그가 벽을 기어올라 창문을 빠져나갔을 때 자신의 생을 맡기는 것 마냥 진심으로 환호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을 뒤로 하고 눈물의 탈주를 했을 소년을 생각하면, 그 와중에 소년을 응원하던 동지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뭉클해진다. 흔히 인간 본성에 관한 현실주의적 접근은 주로, 인간에 대해 시니컬함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인간미가 나오는 모습들이 이 모든 시니컬함을 뒤엎을 때가 있다.
2008년 여름, <아리랑>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왜 동아시아 근대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다시 확인했다.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평화로운 삶을 위해, 비극적 삶을 걸었던 인생들이 영혼을 강렬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승자의 찬가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고발하고 떠난 패자들 덕에, 억압과 폭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에게 그들은 결코 패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나에게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적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시작이 중2때 <세계사 신문>이었다면 마무리는 대학교 5학년때의 <아리랑>이다. 난 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토록 좋아하던 역사학이 한동안 다소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자신에 대한 회의로 영혼을 갉아먹었던 날들을 청산한 마침표다.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자신의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이 책 덕분일 것이다.
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은 연애에 관한 김산과 김충창의 논쟁. 혁명가들도 다 똑같아, 다 똑같아. 상황에 따라, 커플을 갈굴 때 혹은 솔로를 놀릴 때 모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아는 것이 힘.
나머지는 운명의 책 까지는 아니지만 영향력을 많이 미쳤던 책들.
문학 중에는
<운명의 딸>/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옮김(2003) ,
<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2008)
뭐니뭐니해도 책은 중고등학교 때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새삼 느끼곤 한다. 언제 읽어도 책은 좋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고집이란 게 생겨서, 어지간해서는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무진장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 의도적으로 문학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감정을 배제한 논리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 참 시덥잖은 이유같지만 그 때는 나름 심각했다. 그래서 문학은 안 읽고 역사만 주구장창 읽었더니, 결국 문장력만 증발해 버렸다.-_- 그렇다고 이성적인 인간이냐. 그런것도 아니고, 감정적이긴 감정적인데 그걸 부드럽게, 현명하게 못 풀어내는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혹시 나 같은 망상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얼른 생각 접으시길 흑흑흑.
그런 청소년기였음에도 시절 가슴에 완전히 박혀들어왔던 문학작품이 있엇으니,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이다. 칠레의 인디오 혼혈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 골드러시 시기 미국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모험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내용으로. 모험소설의 흥미진진함과 성장소설의 깊이를 동시 갖춘 수작이다. 또한 여성으로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나 또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진지하게 공명할 수 있는 부문이었다.
최근 아주 오랫만에 소설책 읽다가 밤을 샜는데, 다름 아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다룬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 따로 서평을 쓰겠지만,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 사람 취향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보다 극한적 환경이 자아내는 감동은 <천 개...> 쪽이 다소 더 강렬하다만, 어쨌거나 공통점은 세계와 대면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그들은 어쨌거나 열심히 살아갔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주인공들의 연애가 행복하게 결말이 났다는 거. 그래그래, 바로 연애가 중요해.
* 초등학생때는
<작은아씨들>: 아마 책 좋아하는 여자애들이라면 다 한 번 이상 읽었을 법한 책. 독서소녀들은 또한 자신을 조 마치에 이입시켜, 에이미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나도 그랬다. OTL
<빨간머리 앤>: 의외로 여자애들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면 문학, 특히 소설이란 역시나 삶의 모델로서의 세계인 것인가.
<사랑의 학교>: 공화주의적 애국주의 감성에 심하게 반응했다고 믿고 있다;;;
학술서: <농민의 도덕경제>/제임스 스콧, 김춘동 옮김 (2006)
관심이 정치사에서 문화사로, 다시 문화사에서 경제사로 옮겨가던 중에 발견한 책.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막연한 찬양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 사이에서 빛나던 주옥같은 책. 극단의 시대 읽기 모임에서도 추천받았다.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관점과, 약자들에 대한 애정도 물씬 묻어나서, 학술서적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한다고 마음 속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은 책이다.
그렇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 한 구절. 근데 인용문이었어 -0-
급진주의의 중요한 사회적 토대는 농민들과 읍내의 영세 장인들이 만들어 왔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혹자는 인간 자유의 원천은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권력을 막 획득하려는 계급의 열망뿐만 아니라 진보의 물결이 막 굽이치려고 하는 사이에 사멸하고 있는 한 계급의 통곡 속에 어쩌면 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Moore, The Social Origins of Dictatiorship and Democracy)
* 유사 *
<한국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신광영 옮김 (2005) :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책이랄까. 한국노동사에 생경했던만큼 인상깊었던 책. 문제는 이 책이나, <농민의 도덕경제>나 모두 E.P. 톰슨의 관념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 정작 톰슨의 책은 안 읽었으니 과연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의문...;;
교양 사회과학서적 :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대담/이종태 엮음 (2005)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길혜연 옮김 (2007)
<굶주리는 세계> 프란시스 무어 라페/허남혁 옮김 (2004)
이 시대에도 위험한 서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장하준의 서적 중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먼저 올려놓은 까닭은 꽤나 얄팍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불온서적 파문이 일어난 후 읽었던 것이고,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관심을 갖고 내가 사 본 책이라는 얄랑한 자존심. 으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ㅠㅠ (이 소인배녀석!) 그렇지만 최근 들어 눈여겨 보는 점은, 장하준, 정승일의 지식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본 이종태의 이슈제기능력!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모델로서 염두에 두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은 그야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회과학. 한국의 아파트라는 미시적 현상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개발독재, 건설자본주의, 도시문화, 통제 등의 현상을 줄줄이 꿰뚫은 책. 한편으로 사회과학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이상형을 제시했달까. 덕분에 발레리 줄레조의 팬이 되어 이 분이 차기작으로 연구한다는 한국의 '방'(찜질방, 노래방, PC방) 문화도 기대중이다.
<굶주리는 세계>는 수능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애매한 시절 읽었던 책. 농업, 세계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대학다니면서 특히 관심많았던 문제들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던 듯. 한국의 사례가 아니라서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대신에 시야를 확장시켜준 책이다. 한 권을 더 사서 고등학교 도서관에 한 권, 반방 도서관에 한 권 기증했는데, 반방에 기증한 건 행방이 묘연하다.
생각해보니 환경에 대한 나의 원초적 감수성을 형성한 또 하나의 책은 다름 아닌 아~주 어릴 적 읽었던 <과학앨범>!!! 아니 읽었다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거의 말 그대로 '앨범'이라 슥슥 넘기면서 본 사진이 전부. 동물편과 식물편, 그리고 희한하게 광물편을 매우 좋아했었는데(특히 '청설모와 다람쥐'랑 '코끼리'를 매우 좋아했다;;)...자연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과도 같은 감성이 심어졌달까. 자연과 접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로서는 간접 경험이나마 좋은 계기였다는 생각도 든다.
J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허나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무렵, 신산한 감정과 방황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J가 MSN 물귀신질로 나의 숱한 밤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눈감아주기로 하자. 물론 농담이고, 매우 깊이 감사한다. J의 막장 폐인 생활과는 별개로.
때로는 이처럼 무심코 던진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언가에 미치는 순수한 열정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질문. 그건 자기 존재에 매우 충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어받아 집어던진 이 질문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민에 대해 좋은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처럼, 운명의 책이 있나요?
그 날도 J는 수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중 3때 만난 그를 수학으로 이끈 '운명의 책'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한 J는 나에게 되물어본다. "은하씨도 이런 운명의 책이 있어요?" 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불현듯 나도 궁금해진다. J만큼이나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을 운명의 책. 나에게도 있었나?
있다. 때로는 손에 잡자마자 번쩍 하고 영혼을 때리던 책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번 읽은 끝에 시나브로 마음 속에 무언가 자리잡게끔 만든 것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책과 조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대화를 재생해본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응?) 자꾸자꾸 거슬러올라다보니 나의 원점이 거기 있었다. 몇 권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운명의 책 영예의 1위! : <세계사신문>/ 사계절 (1999년)
J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세계사신문> 시리즈이다. 이전에 <역사신문>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던 바, <세계사 신문 > 시리즈도 나오자마자 단번에 구입했다. <역사신문>이 완간되었던 때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그리고 <세계사 신문>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한 가지 추억이 더 있다면, 바뀐 출판문화와 대형서점/온라인서점 등에 밀리고 치인 끝에 이미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문제집 가게가 되어버렸던, 학교 앞 조그마한 서점, 이른 바 '동네서점'에서 산 마지막 책이기도 했다.
<역사/세계사 신문> 시리즈는 참신한 형식에 출간당시부터 워낙 호평이 자자했다. 확실히 놀라운 것은 <세계사 신문> 이 책은 거의 10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아도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 것이다.신문 형식인 만큼, 한 번에 꼭 다 읽지 못하고 '놓치는' 기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는 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시도들이 신문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세계에 대한 조명, 세계체제론, 서구중심주의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벌어진 막연한 '동양적 판타지' 사이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 하나같이 깊고 무거운 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고 재미있었으니, 저자들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만 하다.
신문 형식의 역사서가 주는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오늘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사실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서 내게로 왔고, 나는 그 생동감이 좋았다. "모든 역사는 당대에 있어 '오늘의 고민'이었다". <세계사신문>을 통해 본 역사는 그러했다. 자연스레 어느덧 이 시대의 고민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 없게 되었고, 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때부터였으니, 가히 운명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 나의 변할 수 없는 원초적 사관을 부여해 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나라는 인간의 원점이랄까.
그러고보니 세계사'신문'이라니. 이래저래 운명을 못 비껴가는 책인듯 하다.-.-;;
* 유사한 종류
<먼나라 이웃나라>/ 이원복 (초등학교 4학년) - 나에게 있어 유럽문화 및 역사에 관한 입문서. 나의 복지국가와 혁명을 향한 열망이 생기도록 제대로 불붙여 주셨더랬다. 얄궂게도 이원복 아저씨는 그래놓고 지금은 새파란 만화를 그리시긴 하지만 말이다.
<거꾸로 읽는 세계사>/유시민 (고등학교 1학년) - 고등학교 1학년 때 읽기에 매우 적절했던 책이었다. 끓는 피로 읽어야 제 맛인 책. 또한 그러하게 만드는 책. 대장정-4.19-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3부작(?)은 바로 그 열혈감성의 정점을 찍어준다. 지금 보면 낯간지러워서 조용히 웃지만, 스피디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여전히 재미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여기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김원태 선생님 추천도서였네.
대학와서 읽은 것 중에는? <아리랑> 님 웨일즈/김산 (2008년)
<아리랑>은 고등학교 때 읽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대학교 1,2학년. 대학교 5학년이 되어서 읽으니, 여전히 가슴벅차기는 한데, 확실히 청소년기 때 읽었다면, 온 영혼을 사르면서 보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온 이후 가장 나에게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고 꼽는 까닭은 이 책이 내 20대 한 단락의 마침표였기 때문이다.
혁명가의 이야기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아리랑>에는 무용담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강한 경외를 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 제 1차 국공합작이 깨지고, 김산의 중국공산당 동지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나중에 구사일생 끝에 다시 만난 동지들은 각자의 탈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벙어리 거지 행세로 간신히 살아도망쳐나온 어느 소년의 사연. 그 역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잡혀서 수감되어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수감 동료가 그에게 속삭인다. 자신들과 달리 그 소년의 결박이 느슨하니 얼른 결박을 풀어서 창을 통해 탈출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문턱에 두고, 혼자 살아 탈출하는 이 소년을 질투할 법도 하건만, 감방의 수형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의 탈출을 기원하고, 그가 벽을 기어올라 창문을 빠져나갔을 때 자신의 생을 맡기는 것 마냥 진심으로 환호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을 뒤로 하고 눈물의 탈주를 했을 소년을 생각하면, 그 와중에 소년을 응원하던 동지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뭉클해진다. 흔히 인간 본성에 관한 현실주의적 접근은 주로, 인간에 대해 시니컬함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인간미가 나오는 모습들이 이 모든 시니컬함을 뒤엎을 때가 있다.
2008년 여름, <아리랑>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왜 동아시아 근대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다시 확인했다.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평화로운 삶을 위해, 비극적 삶을 걸었던 인생들이 영혼을 강렬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승자의 찬가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고발하고 떠난 패자들 덕에, 억압과 폭력에 대한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에게 그들은 결코 패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나에게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적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나 할까.
그래서 시작이 중2때 <세계사 신문>이었다면 마무리는 대학교 5학년때의 <아리랑>이다. 난 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토록 좋아하던 역사학이 한동안 다소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자신에 대한 회의로 영혼을 갉아먹었던 날들을 청산한 마침표다.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자신의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 이 책 덕분일 것이다.
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은 연애에 관한 김산과 김충창의 논쟁. 혁명가들도 다 똑같아, 다 똑같아. 상황에 따라, 커플을 갈굴 때 혹은 솔로를 놀릴 때 모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아는 것이 힘.
나머지는 운명의 책 까지는 아니지만 영향력을 많이 미쳤던 책들.
문학 중에는
<운명의 딸>/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옮김(2003) ,
<천개의 찬란한 태양>/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2008)
뭐니뭐니해도 책은 중고등학교 때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새삼 느끼곤 한다. 언제 읽어도 책은 좋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고집이란 게 생겨서, 어지간해서는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무진장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 의도적으로 문학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감정을 배제한 논리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 참 시덥잖은 이유같지만 그 때는 나름 심각했다. 그래서 문학은 안 읽고 역사만 주구장창 읽었더니, 결국 문장력만 증발해 버렸다.-_- 그렇다고 이성적인 인간이냐. 그런것도 아니고, 감정적이긴 감정적인데 그걸 부드럽게, 현명하게 못 풀어내는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혹시 나 같은 망상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얼른 생각 접으시길 흑흑흑.
그런 청소년기였음에도 시절 가슴에 완전히 박혀들어왔던 문학작품이 있엇으니, 이사벨 아옌데의 <운명의 딸>이다. 칠레의 인디오 혼혈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 골드러시 시기 미국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모험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내용으로. 모험소설의 흥미진진함과 성장소설의 깊이를 동시 갖춘 수작이다. 또한 여성으로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 나 또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진지하게 공명할 수 있는 부문이었다.
최근 아주 오랫만에 소설책 읽다가 밤을 샜는데, 다름 아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다룬 <천 개의 찬란한 태양>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 따로 서평을 쓰겠지만,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 사람 취향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보다 극한적 환경이 자아내는 감동은 <천 개...> 쪽이 다소 더 강렬하다만, 어쨌거나 공통점은 세계와 대면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그들은 어쨌거나 열심히 살아갔습니다로 끝나는 해피엔딩.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주인공들의 연애가 행복하게 결말이 났다는 거. 그래그래, 바로 연애가 중요해.
* 초등학생때는
<작은아씨들>: 아마 책 좋아하는 여자애들이라면 다 한 번 이상 읽었을 법한 책. 독서소녀들은 또한 자신을 조 마치에 이입시켜, 에이미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나도 그랬다. OTL
<빨간머리 앤>: 의외로 여자애들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면 문학, 특히 소설이란 역시나 삶의 모델로서의 세계인 것인가.
<사랑의 학교>: 공화주의적 애국주의 감성에 심하게 반응했다고 믿고 있다;;;
학술서: <농민의 도덕경제>/제임스 스콧, 김춘동 옮김 (2006)
관심이 정치사에서 문화사로, 다시 문화사에서 경제사로 옮겨가던 중에 발견한 책.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막연한 찬양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 사이에서 빛나던 주옥같은 책. 극단의 시대 읽기 모임에서도 추천받았다.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관점과, 약자들에 대한 애정도 물씬 묻어나서, 학술서적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한다고 마음 속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은 책이다.
그렇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 한 구절. 근데 인용문이었어 -0-
급진주의의 중요한 사회적 토대는 농민들과 읍내의 영세 장인들이 만들어 왔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혹자는 인간 자유의 원천은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권력을 막 획득하려는 계급의 열망뿐만 아니라 진보의 물결이 막 굽이치려고 하는 사이에 사멸하고 있는 한 계급의 통곡 속에 어쩌면 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 (Moore, The Social Origins of Dictatiorship and Democracy)
* 유사 *
<한국노동계급의 형성>/구해근, 신광영 옮김 (2005) :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책이랄까. 한국노동사에 생경했던만큼 인상깊었던 책. 문제는 이 책이나, <농민의 도덕경제>나 모두 E.P. 톰슨의 관념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 정작 톰슨의 책은 안 읽었으니 과연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의문...;;
교양 사회과학서적 :
<쾌도난마 한국경제> 장하준-정승일 대담/이종태 엮음 (2005)
<아파트 공화국> 발레리 줄레조/길혜연 옮김 (2007)
<굶주리는 세계> 프란시스 무어 라페/허남혁 옮김 (2004)
이 시대에도 위험한 서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장하준의 서적 중 <나쁜 사마리아인들>이 아니라 <쾌도난마 한국경제>를 먼저 올려놓은 까닭은 꽤나 얄팍하다. <나쁜 사마리아인들>은 불온서적 파문이 일어난 후 읽었던 것이고, <쾌도난마 한국경제>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관심을 갖고 내가 사 본 책이라는 얄랑한 자존심. 으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ㅠㅠ (이 소인배녀석!) 그렇지만 최근 들어 눈여겨 보는 점은, 장하준, 정승일의 지식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본 이종태의 이슈제기능력!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모델로서 염두에 두고 있다.
<아파트 공화국>은 그야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회과학. 한국의 아파트라는 미시적 현상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개발독재, 건설자본주의, 도시문화, 통제 등의 현상을 줄줄이 꿰뚫은 책. 한편으로 사회과학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이상형을 제시했달까. 덕분에 발레리 줄레조의 팬이 되어 이 분이 차기작으로 연구한다는 한국의 '방'(찜질방, 노래방, PC방) 문화도 기대중이다.
<굶주리는 세계>는 수능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애매한 시절 읽었던 책. 농업, 세계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대학다니면서 특히 관심많았던 문제들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던 듯. 한국의 사례가 아니라서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 대신에 시야를 확장시켜준 책이다. 한 권을 더 사서 고등학교 도서관에 한 권, 반방 도서관에 한 권 기증했는데, 반방에 기증한 건 행방이 묘연하다.
생각해보니 환경에 대한 나의 원초적 감수성을 형성한 또 하나의 책은 다름 아닌 아~주 어릴 적 읽었던 <과학앨범>!!! 아니 읽었다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거의 말 그대로 '앨범'이라 슥슥 넘기면서 본 사진이 전부. 동물편과 식물편, 그리고 희한하게 광물편을 매우 좋아했었는데(특히 '청설모와 다람쥐'랑 '코끼리'를 매우 좋아했다;;)...자연에 대한 무조건적 애정과도 같은 감성이 심어졌달까. 자연과 접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로서는 간접 경험이나마 좋은 계기였다는 생각도 든다.
J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허나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무렵, 신산한 감정과 방황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J가 MSN 물귀신질로 나의 숱한 밤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눈감아주기로 하자. 물론 농담이고, 매우 깊이 감사한다. J의 막장 폐인 생활과는 별개로.
때로는 이처럼 무심코 던진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언가에 미치는 순수한 열정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질문. 그건 자기 존재에 매우 충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어받아 집어던진 이 질문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민에 대해 좋은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
당신도 나처럼, 운명의 책이 있나요?
# by 은하 | 2008/11/20 15:51 | 발견 | 트랙백 | 핑백(1) | 덧글(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