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1월 22일
참치와 이성
금융위기 때문에 애써 모아 둔 금융자산의 가치가 곤두박칠을 쳐, 뜨악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장교 월급을 꼬박꼬박 펀드에 붓고 있었던 내 주변의 선배도 그러하다. 이 선배는 반토막 난 펀드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괜찮아, 난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는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종국적 승리'라는 패러디가 웃겨서 웃는다. 우리가 웃는 게 웃는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겪어 온 역사적 변화 과정은 자본주의 자체의 자기조절능력이 꽤 만만한 것임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당분간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들어선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자본주의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쪽이 빠르리라. 헌데, 나는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태적 위기로 결국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끝까지 살아남아, 인류사와 함께 순장당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치고 있다. 그렇다면 나름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는 승리이리라. 확실한 건 환경문제는 근본적 삶의 양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기술적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환경문제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인간 소비의 결과, 자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폐기물이 나온다는 데 있다.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온실기체도 그러한 폐기물의 일종이다. 결국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는 폐기물을 "자연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배출하여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헌데 그 어떠한 친환경 연료라도 폐기물 자체를 0으로 할 수는 없으며, 지금 지구의 방대한 인구는 1인당 아주 약간의 폐기물을 배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총량을 굉장한 수치로 만들어버린다.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폐기물의 감축이 필요하다. 폐기물의 감축은 곧 소비의 감축이다. (인구의 감축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recession(경기침체)이라 부른다. 더 나아가면 depression(불황)도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받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열쇠는 친환경 에너지나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생계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토대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치적 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즉 recession을 recession이라 부르지 않는 혁신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결국 가출한 홍길동 수준의 혼란은 겪지 않을까 예상된다.
핵심은 인간의 이성이다. 자본주의건 이와 결별한 인류의 미래이건 지속가능성이란 결국 인간의 이성에 달렸다. 관성적으로 유지되어 온 현재의 소비수준을 커다란 외부적 충격 및 그로 인한 갈등을 최대한 완화시키면서 감축시키는 방안이란, 결국 이성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데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인 이유는 바로 이 점에 대한 불신 탓이다. 결코 나는 이성을 불신하지는 않는다. 이성이 관성과 감각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연유하는 불신인 것이다. 최근 나의 이러한 불신을 유지시킬 것인지를 가늠할 만한 시험대가 떠오르고 있다.
한국 참치 어획량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경향)
생뚱맞게 웬 참치? 아니다. 참치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리트머스 시험지라 생각한다. 혼자서 밥 해먹기 귀찮을 때, 자취생들의 대표적인 애용 아이템 '참치캔'을 따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도대체 참치는 얼마나 잡아대길래,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먹어댈 수 있단 말인가. 바다에 참치가 그렇게나 풍부한가.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그저 인간이 열심히 잡아댄 탓이다. 그리고 좋은 시절이 얼마 안 있어 끝날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오고 있다.
온난화와 해양오염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는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고래같이 꼭 안 먹어도 되는 동물들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하다. 그린피스가 일본 포경선의 남극 불법 조업을 극렬히 반대하고, 실제 조업행동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일본 측은 꿋꿋하다. 오히려 꽁치가 아니라 사치품인 고래이기 때문에, 더욱 꿋꿋한지도 모르겠으니, 이런 게 인간의 이성이다.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세상, 내 생에 참치를 실컷 먹고, 후손들은 먹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 쪽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일 수 있으니, 어찌 비관주의자가 안 될 수 있겠나.
하지만 이 참치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류의 미래에 한 가닥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간은 미래와 후손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여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를 희망이라 부르자. 허나 희망이 나타날 때 까지는, 당분간 이성으로서 비관하고 의지로서 낙관하는 날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만 같다. 대공황이 인류 이성의 능력에 낙관적 신호를 보여주었다면, 참치는 과연 어떤 신호를 보내줄 지 궁금하다.
만약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미래를 위해 극히 제한된 참치만을 잡아야만 한다면, 그 참치는 기왕이면 고급 일식집의 참치회가 이니라, 자취생들을 위한 '참치캔'으로 쓰여질 수 있는 체제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경험적으로 매우 비관적 전망이다.
비유를 하기 위해 참치캔을 예로 들었지만, 참치캔은 고급 횟감을 만들고 남은 찌끄래기로 만든다고 들었다. 사실 참치 어획량을 대폭 줄인다면, 타격받는 곳은 2만~4만원대의 중저가 참치횟집이다. 정작 참치회는 호텔에서 한 50만원 주고 먹을 수 밖에 없는 초고급 상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몇 천원 짜리 참치캔과, 50만원짜리 참치회 사이에서, 그 동안 참치회를 적당히 즐길 수 있었던 '중산층들의 분노와 박탈감'이 이 참치 문제 해결의 열쇠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고 다시 한 번 묻는다면, 이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
지금의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중산층들을 위해 여전히 2~4만원대 참치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체제라고 말하고 싶다.
# by 은하 | 2008/11/22 14:14 | 생각 | 트랙백 | 핑백(1) | 덧글(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