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5일
핀트 엇나간 부엉이 사냥
‘미네르바의 부엉이는 황혼녘에야 날개를 편다.’ 헤겔의 유명한 말은 사실 학자의 ‘위대함’보다는 학자의 ‘한계’를 지적하는 쪽에 가깝다. 학자의 분석이란 현상이 벌어진 다음에나 뒤따르는 것임을 자탄하고 있는 것이다. 바꿔 말하면, 누군가의 해석이 등장했다는 것은 심각한 사안은 이미 상당부분 진행되고 있는 것을 의미한다. 한국에서도 미국 서브프라임 위기, 유가폭등, 원자재 대란 등 ‘한낮의 뜨거움’과도 같은 위기징후들이 한참 맹위를 떨치고 나서야, 인터넷 상에서 한 논객이 등장해 ‘노을의 잔상’을 알렸다. 그런데 정부는 때 아닌 ‘부엉이 사냥’을 벌이고 있다. 황혼이 부엉이 때문이라는 것이다.
정부의 ‘미네르바’ 체포 논리는 두 가지 쟁점을 포함하고 있다. 하나는 ‘정부가 표현의 자유를 침해했다’는 관점으로, 정부가 지나치게 인터넷상에서 사적 개인의 의견표출을 제한하고 있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미네르바는 익명으로 글을 올리고 있지만, 사회적 영향력이 커지게 된 만큼, 그에 마땅한 ‘책임’을 져야 한다는 논리로 앞의 의견과 맞서고 있다. 사회적으로 영향력이 큰 저명인사와 정부가 갈등을 빚는 사례는 여럿 있었지만, 네트워크에서의 익명의 개인과 국가권력이 충돌하는 현상은 새롭고 이례적인 일이다. 그러나 인터넷 시대 이와 같은 일은 계속 벌어질 가능성이 높다는 점에서도 이 사건은 중요하다.
미네르바 체포는 정부가 시민사회의 ‘감시’와 ‘비판’ 자체를 인정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 가장 심각한 문제다. 언론학자들은 시민사회의 공론형성 기능이 신문에서 포털로 옮겨왔음을 대체로 인정하고 있다. 촛불집회가 미디어 다음 아고라 게시판의 서명으로 촉발되고, 이 기간 동안 아고라의 페이지뷰가 46억 건을 초과했다는 데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미네르바는 아고라 게시판에 토론글을 올렸고, 이는 또한 수백만 네티즌들의 ‘추천’제도에 의해 베스트에 떠오르면서, 사회적 영향력을 미치게 되었다. 즉 미네르바 신드롬은 미네르바 개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네르바의 글을 매개로 수많은 네티즌들의 토론과 의견이 집약된 결과다. 그런데 여기에 대화나 토론이 아니라 ‘표현의 자유’라는 기본권까지 훼손하며 ‘체포’로 대응한다는 것은, 인터넷을 통한 정부에 대한 비판과 견제 자체를 받아들이지 않는 것이다. 명백한 민주주의의 부정이다.
익명의 공간이지만 영향력이 커진 만큼, 책임도 필요하다는 의견은 인터넷 공론장의 정상화를 위해서라도 타당하다. 따라서 미네르바의 책임성 문제도 따져 볼 필요는 있다. 문제는 정부가 미네르바의 잘못으로 ‘국가신인도 하락’을 거론했다는 것이다. 국가신인도는 한 나라의 경제상황을 종합적으로 판단하여 매기는 것으로, 일개 네티즌에 의해 좌지우지 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만약 이것이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 정도로 국가경제를 부실하게 운영한 정부각료들의 책임이 먼저 추궁되어야 한다. 정부는 경제위기의 탓을 미네르바에게 돌리면서도, 정작 미네르바는 ‘전문대를 졸업한 백수’라고 부각시키는 모순적 행각을 보이고 있다. 그렇다면 백수에게 경제위기의 책임을 묻는 정부는 무엇인가.
괴담이 불안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불안한 심정이 괴담으로 표출되는 것이라 한다. 미네르바는 넷상의 무수한 대중들에 의해, ‘선택된 현인’에 불과하다. 미네르바 현상의 이면에는 현재 경제문제에 대한 대중들의 불안감과 고통이 있음을 더 주목해야 한다. 정부는 권력이 아니라 공론영역을 통해 이러한 불안에 대하여 마땅히 대답해야 할 것이며, 미네르바의 말이 학술적으로 틀렸다면 ‘학술적으로’ 반박해야 할 것이다. 대중은 다가올 어둠을 준비하고 싶어하는데, 애꿎은 부엉이 사냥에만 골몰하다간 정부로서 신뢰마저 잃을 것이다.
# by 은하 | 2009/01/15 01:54 | 우리시대 | 트랙백 | 핑백(1) | 덧글(3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