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1월 19일
덕촌을 부탁해
충북 괴산군 불정면 지장리 덕촌마을. 우리나라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인 이 곳 어귀에 들어서면 ‘덕촌마을 유래비’가 우뚝 서 있다. 앞면에는 마을 이름의 유래가 적혀있고, 뒷면에는 비석을 세운데 힘을 보탠 사람들의 명단이 빼곡히 적혀 있다. 나의 아버지 이름도 여기 있다. 그렇다고 현재 이 마을에서 사는 것은 아니다. 아버지 뿐 아니라, 비석에 적힌 많은 사람들 중 실제로 이 곳에 사는 사람의 이름은 얼마 되지 않는다. 대부분은 젊은 날 고향을 떠나 도시로 향한 사람들이고, 그랬기에 덕촌에 남아있는 촌로들보다 더 많은 헌금을 낼 수 있게 된 이들이다. 나는 이 비석을 볼 때마다 도리어 덕촌의 슬픈 현실을 떠올리지 않을 수가 없다.
비석은 10여 년 전쯤 세워졌다. 떠날만한 젊은이들은 다 떠난 80년대 이후 별 다른 변화 없이 정적같은 시간만 흐르던 마을이었다. 초등학교가 폐교되고, 상점이 하나 둘 씩 사라졌다. 그나마 도시로 나간 아들딸네미들이 토끼같은 자식들을 안고 돌아오는 명절은 그래도 수십 년 전으로 돌아간 것 마냥 동네가 활기에 찼다. 그 꼬맹이들조차 이제는 대체로 스물을 넘겨 점잖기만 하다. 마을 사람들은 모두 20살 씩 더 먹었고, 더러는 영원히 떠나간 사람도 있었다. 그리고 영원히 떠나갈 사람은 더욱 많을 것이다. 하지만 새로 들어오는 사람은 없다. 이제 명절에도 그다지 붐비지 않게 된 고요한 마을. 비석을 세우자고 누군가 말했던 게 그 무렵 즈음이었다고 한다.
나는 이 마을에 일 년에 4번 정도 간다. 7월의 할아버지 생신. 9월의 추석. 11월의 할머니 생신. 2월의 설. 그리고 방학을 이용해 짬짬이 1~2번 더 방문한다. 공교롭게도 모두 하반기에 몰려 있어,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들을 보기 위해 겨울이 끝나면, 기나긴 꽃피는 봄을 견뎌내야 한다. 여름이 되면 두 달에 한번 꼴로 가게가 아수라장이 된다. 할머니는 40년 전부터 작은 구멍가게도 하고 있었다. 담배를 비롯하여, 덕촌 사람들의 생활용품은 대부분 이 가게에서 나간다. 그리고 가게 한가득 쌓인 과자들은, 일 년에 네 번씩 이 집 손자, 손녀들이 몰려와서 모조리 먹어치운다. 부모님께 혼쭐이 나도 어쩔 수 없었다. 맏이가 되어 점잖게 동생을 타이를 시점이 되었을 때, 할머니께선 “너는 어렸을 때 죄다 부숴먹지 않았니?”라며 그저 웃으신다. 재작년 할아버지께서 가겟방을 완전히 비운 것은 내게도 큰 충격이 아닐 수 없었다. 덕촌의 모든 것들처럼, 이 가게처럼 언젠가 할머니, 할아버지도 사라질 것이라는 현실이 불현듯 눈앞에 다가왔다. 그 때 할아버지 연세가 80이었다. 누구나 겪을 현실이기에 담담해보려 애쓰지만, 어쩌면 할머니, 할아버지가 아니라 이들을 추억할 공간마저 사라질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는 눈시울이 살짝 붉어지지 않을 수 없었다. 어쩌면 덕촌이 사라질지도 모른다. 모두가 떠난 자리에, 언젠가 아버지 세대도 떠나고, 나 같은 손자세대마저도 떠나고 나면, 이 곳은 누가 기억해줄까. 누군가 이 가게를 이어받을 사람도, 그리고 이어받을 이유도 없는 사라져가는 작은 시골 마을에 묻힌 추억이 그저 가엾다.
명절이 되면 마을 어귀에는 현수막도 하나 더 붙는다. 고향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문득 이 마을 사람들은 어떤 심정으로 이 현수막을 걸 지 궁금해졌다. '6시 내 고향‘이라는 프로그램이 있다. 농촌 사람들의 삶을 보여주는 몇 안 되는 프로그램인데, 제목이 ’내 고향‘이다. 고향을 두고 온 도시 사람들을 겨냥한 것이다. 물론 이 나라 사람들의 대다수는 농촌을 어릴 적 추억이 담긴 고향으로 기억한다. 하지만 그 곳에서도 분명 사람들은 살고 있다. 그들에게는 ’돌아갈‘ 고향이 아니라 현재 살고 있는 생업과 생활의 공간이다. 누군가의 현실적 삶이 그리운 고향이라는 이름에 은폐되어 돌보아지지 않은 채, 언젠가 찾아올 죽음만 기다리고 있다. 더욱 슬픈 건 이 나라가 어쩌면 이들의 안락사를 바라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다. 농산물 수입의 경제적 효용을 따지는 관료들에게, 방치만 하면 자연스럽게 사라질 이 시골 마을에 새로 꿈을 투여할 이유는 없을 게다.
하지만, 마을 사람들은 온 몸으로 말하고 있었다. 우리를 잊지 말라고. 이 곳이 현재 우리가 살아있는 곳임을 잊지 말라고. 마을 사람들의 평균 나이가 70이 되었을 무렵, 새삼 유래비를 세우자는 의견이 괜스레 나온 것은 아닐 것이다. 외지로 나간 자식들도 앞다투어 돈을 보내왔다. 그러나 덕촌에 필요한 것은 단지 돈이 아니다. 누군가의 존재가 철저히 외면 받고, 후대에 가서는 아예 잊혀질까 두렵다. 누군가의 존재를 아무렇지도 않게 망각할 수 있는 사회가 슬프다. 온기가 흐르는 사회라면 조금은 달리 생각하지 않을까. 작은 시골마을의 미래를 함께 고민해야 하지 않을까.
조금 있으면 돌아올 설 명절에, 나는 또 다시 마주해야만 한다. ‘덕촌을 부탁해’라고 말하고 있는 저 슬픈 유래비를. 유래비의 대답이 언제 들릴지 아직은 아득하기만 하다.
# by 은하 | 2009/01/19 04:48 | 발견 | 트랙백 | 덧글(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