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3일
착해질 각오
변화를 위해서라면 개인의 의지와 희생에 기댈 것이 아니라, 사회 시스템을 뜯어고쳐야 한다는 생각은 얼마나 멋진가. 문제의 근본적이고 본질적인 부분을 건드린다는 인상을 주면서도, 한편으로는 사회변혁은 필요하지만 나의 욕망은 한 발짝도 꺾고 싶지 않은 이중성에 적절한 방패막이가 되기까지 하다. 그러나 내 욕망의 방패막이가 아니라 진정한 변화를 원한다면 이는 틀렸다. 근본적인 부분이라고 하면 오히려 개인의 욕망 쪽이다. 사회 시스템이란 것도 결국 개개인의 욕망이 구조화된 것 아닌가. 자신의 욕망을 억제하고자 하는 개개인의 의지와 희생 없이 근본적인 시스템개혁이란 불가능하다.
우리의 욕망은 누군가의 죽음보다 나의 수고로움을 더욱 중요하게 여긴다. 원근법의 원리가 작동하는 것이다. 일상에 젖어드는 편리함은 나의 욕망을 넘어서고 나가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이다. 익숙해진다는 것은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사례를 몇 가지 생각해볼까.
녹색성장의 허구성을 비판하며 소비를 줄이자고 한다. 그러나 에어컨을 안 틀어줘서 찜통이 된 지하철에서 분노를 터뜨리지 않고 이를 온몸으로 받아내지 않으면, 구조적으로 소비억제를 강요할 방법은 없다. 하나 예외. 물적 기반이 완전히 박살나는 것. 엄청난 전기세가 한 방법이 되겠지만, 문제는 우리 몸이 에어컨의 시원함에 익숙해졌다는 것이다. 전기세가 오르면 편리함을 기억하는 우리의 관성은 더위를 참아내던 옛날의 전통으로 되돌아가기보다는 싸게 전기를 공급하라고 에너지 당국을 압박할 것이 분명하다.
<88만원세대>를 읽고 온 몸에 전율을 느끼며 구구절절이 옳다고 말하면서도, 무의식적으로 가게에서는 체크카드를 내민다. 영세 상인들에게 부담이 되는 높은 수수료, 더구나 현금이 바로바로 들어오지 않는 지불방식. 결국은 대기업 프랜차이즈에 절대 유리. 우리나라처럼 카드 사용이 만연한 나라가 없다. 미국을 제외하면 카드발급 세계 1위인데, 우리와 미국의 인구차이가 대체 몇 배냔 말이냐. 1만 원 이하 소액결제의 경우 현금사용 의무화 법안이 추진되자 반발이 보통이 아니다. 물론 스타벅스 같은 경우 3~4천원 짜리 커피 마시고 카드 내밀어도 별로 미안하지 않다. 투명한 징세 문제도 있다. 그러나 사실 귀찮은 거다. 굳이 카드로 결제해야 할 이유가 있는가. 나라의 조세수입이 걱정된다면 현금영수증제도도 있는데. 게다가 언제부터 카드 긁을 때 일일이 이런 거 걱정하면서 긁었나. 그냥 긁었지.
제3세계 어린이들의 현실에 분노하고 때로는 눈시울이 뜨거워지면서 '착한커피'를 찾는 것을 보면 우리는 정말 착한 게 틀림없다. 그러나 이 땅의 커피값이 쓸데없이 비싸다는 것 역시 굉장한 변수다. 착한 초콜릿. 물론 좋지. 그런데 우리가 착한 초콜릿을 허용하는 범위는 현재 가나초콜릿 가격 500원 이내가 아닐까. 500원 내에서 기업이 가져가는 몫은 줄이고, 그 부분을 노동자에게 줘랴. 그런데 카카오 한 그루 안 나는 나라에서 500원이 심각하게 싸다는 생각은 해 본적 없었을까. 기업의 희생은 당연하지만 소비자인 자신의 희생은 전혀 용납할 수 없다. 소비자 주권의 시대 아닌가. 그런데 기업도 똑같이 말한다. 자기들이 왜 희생해야 하냐고. 아 물론 커피, 초콜릿 회사들은 어마어마한 폭리를 취하고 있으니 희생 좀 하더라도 덜 불쌍해 보이긴 한다. 문제는 이 나라의 영세농민들도 똑같은 고민을 한다는 것이다.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 물론 이게 기본이지만 값싸고 질 좋은 농산물이 있을 수 있냐. 유기농 하고 질 좋아지려면 결국 단가가 높아질 수밖에 없다. 이 당연한 진리에 소비자들은 몸부림친다. 단가가 비싼 음식을 '덜' 먹는다는 다른 대안도 있는데.
소비자 주권은 충분히 전복적이고 혁명적일 수 있다. 자본주의 시대 거대 권력 기업도 결국 소비자가 외면한다면 답이 없지 않은가. 또한 날이 갈수록 분화되고 공동체의 이질성이 심화되는 사회에서 우리가 공유하는 유일한 정체성은 사실 '소비자'인지도 모른다. 그런고로 소비자 정체성을 충분히 활용하는 전략은 필요하지만
역시나 시민성이 결여된 '소비자'로서의 자기규정에만 기대기는 불안하다. 소비자는 결국 욕망하는 자. 물론 우리는 제3세계 어린이들의 복지를 욕망하고, 뜨거워져가는 지구의 미래를 욕망할 수 있겠지만. 문제는 이를 위해서 내가 희생하기는 싫다는 거다. 여태까지 누린 나의 풍요가 사실 이런 희생을 바탕으로 존재할 수 있었던 것인데. 결국 나의 욕망과 부당한 현실 앞에서 고민은 나 말고 다른 누군가가 책임을 지라는 방식으로 '착한 소비자'는 탄생한다. 그러나 그런 '착한 소비자'가 정말로 세상의 변화를 이뤄낼 것인가. 자신이 가진 편리함을 과감히 버릴 각오도 없이 착해지려고 하는 거니까 이런 모순에 빠지는 거야.
...라고 말하는 나도 이 밤중까지 컴퓨터를 켜고 있다는 사실에서 온난화의 공범 중 하나다.
그러니까 간만에 생각나는 대로 막 쓰고 있는
이 글을 서둘러 마무리해본다면
역시 답은 맹자다.
당신 정말 위대했어.
# by 은하 | 2009/05/23 03:31 | 생각 | 트랙백(1) | 덧글(2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