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3일
노 대통령 서거
3년 전쯤. 일본어 학원 기초반을 다닐 때 회화 시간 선생님이 질문을 던졌다. "아나타, 다이토오료우가 스키데스까?"(당신 대통령을 좋아합니까?)" 그저 문형연습을 위한 회화 수업일 따름인데, 순간 멈칫했다. 그 때는 한미FTA가 추진되고 있었고, 한국사회는 양극화의 시름에 찌들어가고 있었는데. '하이'라 할까 '이에'라 할까 순간 망설였다. 풋내기의 과잉정치화된 의식도 어느정도 있었겠지. 그러나 그 때 '하이'라고 답하지 않아서 이렇게 괜스레 마음이 무거운지도 모르겠다.
이제는 누가 자살했다고 한들 안 놀랄 줄 알았다. 토요일 오전이란걸 핑계삼아 늦잠자다가, 창밖의 누군가 "노무현 대통령이 죽었대"하는 소리에 깼다. 이상한 꿈을 꿨나 하고 컴퓨터를 켠 다음 지금 세 시간째 멍한 상태다. 그는 산등성이에서 추락하던 짧은 순간 후회하지 않았을까. 누가 됐건 한 사람의 죽음은 슬픈 일인데. 누구보다도 욕을 많이 먹었던 사람의 죽음을 보니까 더욱 마음이 아프다. 그의 실험은 결국 이런 결과로 끝내기 위해서는 분명 아니었을텐데.
한국사회에 적지않은 의미를 안긴 대통령. 한편으로 많은 과제를 수행해내지 못했던 대통령. 그와 관련한 숱한 담론과 평가는 여전히 진행중인데, 이렇게 훌쩍 가 버리면, 어떡하냔말야. 그에 관한 사유는 여기서 종결되고, 살아남은 자들에게는 부담으로 남아버렸다. 그러나 이런 것들보다도 한 사람의 자연인을 전혀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는 사회가 슬픈 거다. 박종태 열사가 되었건, 노무현 전 대통령의 죽음이 되었건. 하지만 최소한 당신도 '사람사는 세상'을 꿈꾸었던만큼, 살아남아서 끝까지 당신이 꿈꾼 세상을 계속 지켜보기를 바라는 건 과한 기대였을까.
한국의 역대 대통령은 거의 모두 퇴임 후 영예롭지 않은 모습으로 남았다. 그 고리를 그나마 끊어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던 사람이 가장 비참한 죽음을 맞았으니, 한국 정치의 안정은 여전히 요원한 거 같다. 민주주의 2.0이라는 유쾌발랄한 실험과 통치자의 자살이라는 극단적 선택의 공존. 이런 나라의 미래는 오롯이 살아남은 자들만의 몫이다. 죽음에 대한 미화와 죽은 자에 대한 무례 사이를 비집고, 그의 공과에 대해 더 힘든 평가를 해야한다. 그래서 마음이 더 무겁지만, 충격, 착잡함, 연민 등을 딛어야 할 이유다.
사랑과 미움이 정말 극단적으로 갈렸던 사람이었다. 한국 사회의 어떤 경향이 분명 반영됐고, 이 문제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거의 없다. 그의 마지막이 그 어떤 경향에 대한 경종을 울렸기만을 바랄 뿐이다. 오늘 하루는 최소한 한 인간에 대한 예의를 지킬 줄 알았으면 좋겠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빈다.
서거한 노 전 대통령 출생부터 사망까지 (조선일보)
# by 은하 | 2009/05/23 12:24 | 우리시대 | 트랙백(2) | 핑백(1) | 덧글(2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