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03월 03일
불안을 강요하는 세상에 옐로카드를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서울특별시 관악구 신림9동 산56-1번지. 《교육저널》 편집실은 지금은 행정구역 정리로 사라진 이 주소상의 좌표 어딘가에 위치해 있다. 남쪽으로 산을 등지고 북쪽으로 창을 낸 덕에, 여름이면 피서지로 알맞고 겨울이면 몸을 웅크려 서로 다닥다닥 붙어 앉아야만 하는 곳이다.
학교에서 동아리방을 찾아가는 길은 꽤 험난하다. 기숙사, 인문대, 사회대, 도서관… 곳곳에서 공사가 진행 중이기 때문에 공사판을 피해 이리저리 둘러 가야한다. 학창시절을 보낸 추억의 공간은 먼지와 소음을 뒤집어 쓴 채 허물어져 있고, 캠퍼스에 새겨진 나의 역사는 흔적도 없이 지워져간다.
아쉬움과 두려움을 건너 그 춥고 어두운 방에 도착하면 오래된 책과 달력, 때가 꼬질꼬질해서 차마 누울 엄두가 안 나는 소파, 그리고 내년에는 기숙사에 들어갈 수 있을까 라든가, 공채가 뜨지 않아 힘들다는 등의 고민을 말하는 이들과 만나게 된다. 한참을 떠들다가 갑자기 편집장이 빛나는 눈으로 “그거 그대로 기사로 쓰세요”라고 말하면 모두들 그녀를 향해 비명을 지른다. “당신은 악마야!” 그러면서도 밤을 새워 글을 쓰고야마는 평균나이 24.6세의 사람들이 있는 곳, 춥고 외지고 낡은 것들로 가득 차 있지만 새로운 이야기가 끊임없이 만들어지는 그곳의 이름은 《교육저널》 편집실 들꽃방이다.
들꽃방에 출판사 골든에이지의 편지가 날아온 것은 2009년 6월 말이었다. 스펙열풍 및 취업고민에 관한 내용을 특집으로 10호를 낸 지 얼마 지나지 않은 무렵이었다. 《교육저널》 10호를 읽었으며 88만원세대의 고민을 책으로 담아내고 싶다는 출판사 대표의 의견을 접하고 기자들은 적잖이 당황했다. 그리고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다. 출판시장에 책을 내 놓는 일은 생각해본 적도 없거니와, ‘88만원세대의 고민’이란 엄청난 타이틀을 우리가 떠맡게 되어도 좋을지 몰라 상당히 난감했기 때문이다. 그 난감함에는 ‘88만원세대’라는 표현에 대한 우리들의 불만도 포함되어 있다.
80년대 언저리에 태어난 사람들은 어느 순간부터 88만원세대로 불리게 됐다. 애초에는 현재 20대들이 처한 불우한 현실을 고발하려는 목적이었겠지만, 88만원세대란 말이 유행처럼 번지면서 정작 당사자인20대들은 기성세대의 세대담론에서 소외받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눈높이를 낮추라며 우리들을 질타하는 목소리는 크게 줄어들었지만, 이 땅의 20대들은 가엾고 움츠러든 존재로만 남아 떠돌기 시작했다. 우리들의 경제적 현실을 고발하려던 의도는 우리들의 모든 실존적 고민을 경제적 불안이란 범주로 우겨넣는 예기치 않은 결과를 가져왔다. 그러한 담론이 확대되고 재생산될수록 대다수 20대들은 용기가 난다기보다는 자기 모습에 대한 자괴감과 불안감만 커질 뿐이었다.
아이러니하게도 ‘88만원세대의 고민’ 따위에 관한 글을 쓰지 않겠다고 결론 내렸을 때, 우리는 책을 써야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정형화된 이미지에서 벗어나 진정으로 원하는 것을 세상에 알릴 방법은 결국 스스로 자신의 이야기를 해나가는 방법 밖에 없다. 그것은 들꽃방에서 스스로 우리의 역사를 지켜내려 글을 쓰는 행위와 별반 다르지 않을 것이다.
《교육저널》 기자들 중에서도 책 작업에 참여한 필진은 다섯 명. 이유는 제각각 다르다. 누군가는 자신의 상처를 마주하여 그것을 넘어서고 싶었고, 누군가는 학교에서조차 삶을 벼랑 가까이로 조금씩 밀어내는 이 세상에 짱돌을 날려주고 싶었다. 무기력하고 겁에 질린 사람들로 기억되는 우리지만, 사실은 사랑은 물론이고 시민으로서의 건강한 삶에 대해서도 고민한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어 참여하게 된 사람도 있다. 우리 자신이나 친구들에게나 너무나 절실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교육저널》 10호에서 취업이나 스펙에 관한 고민을 제대로 다뤄내지 못했다는 부끄러움도 책을 만들어야 한다는 결심을 부추겼다.
그러한 이유로 만들어진 이 책은 꿈꾸는 스무 살의 이야기가 아니다. 불안에 젖은 세대의 자기고백도 아니다. 20대의 절반이 지나간 사람들이 보기에 세상은 마냥 장밋빛이지는 않다. 졸업, 취업 등과 같은 현실적 문제와 본격적으로 대면해야 한다. 꿈을 포기해야 하는 때도 많아지면서, 세상을 낙관적으로 보기가 점점 더 어려워진다. 그렇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반항 어린 시선으로 보기만 했던 부모님에게 동질감을 느끼며 그들을 조금씩 이해하게 되기도 한다. 우리에게 20대 전반기의 삶이란 이처럼 단순하지 않다. 88만원 혹은 그 밖의 표상들은 이 무렵의 20대가 갖는 삶에 대한 불안과 다른 세대에 대한 공감을 동시에 담아낼 수 없다. 이 글들은 여태 틀 바깥에 머물러 있느라 그동안 표현되지 않았던 20대의 삶에 관한 이야기다. 또한 아픔에서 태동한 가능성을 바탕으로 더 나은 삶을 고민해보자는 제언이기도 하다.
글을 쓰는 동안 우리는 자신의 가장 아픈 기억과 마주해야 했고, 이 냉혹한 시대에 졸업과 취업을 늦춰버렸다는 자괴감에 시달리기도 했다. 그러나 개인적 상처라고만 생각했던 일들이 더 나은 세상을 상상하기 위한 연료가 될 수 있음을 깨닫기도 했고, 덕분에 외면하고 싶었던 일들을 긍정하는 경험을 하기도 했다. 우리가 이 책에서 말하는 가능성과 소망이란, 지금 당장 세상을 바꾸기에는 미약하지만 눈앞의 현실에 움츠러들지 않고 그것과 마주하기 위해서는 더없이 필요한 것들이다. 대학에서 우리의 삶을 꿈꾸고 기획할 수 있도록 해 준 곳은 새로 지은 화려한 건물이 아니라 춥고 낡은 방이었던 것처럼, 가난과 불안의 기억이 우리에게 그러한 역할을 해 주리라 믿는다.
《이십대 전반전》은 2009년 8월부터 2010년 2월까지 거의 반년에 걸쳐서 만들어졌다. 책은 총 여덟 개의 장으로 구성돼 있다. 입시, 상경, 자취생활, 아르바이트, 취업준비 등 젊은이들이 보편적으로 겪는 경험과 이를 통해 느낀 모순 등이 다뤄진다. 우리의 눈으로 본 사회에 관한 이야기도 담았다. 여기에는 우리가 생각하는 바람직한 국제관계나 대학사회의 모습도 담겨 있고, 동시대의 청소년 혹은 대학생의 눈으로 본 IMF, 월드컵, 선거, 촛불집회 등도 그려져 있다. 정책비평, 포토에세이, 20대의 책읽기 및 제 8장 개미야 놀자 등은 학내언론으로서 독자들과 함께 고민하며 썼던 글이다. 개인적 경험의 집합이 아니라, 소통을 통해 만들어가는 공동의 경험이 우리에게 진정한 희망을 안겨줄 것이라 생각한다.
학술적 연구 성과나 세상을 바꿀 방안을 제시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사는 모습을 있는 그대로그려내는 것을 목표로 했다는 점에서, 이 책은 《88만원세대》보다는 웹툰 작가 서나래의 《낢이 사는 이야기》나 만화가 최규석의 《습지생태보고서》와 더 닮았다. 만화나 영상, 가요, 소설 등을 통한 20대의 자기 이야기는 이미 여러 곳에서 시도되고 있다. 그러한 작업들에 용기를 받았음을 이 자리를 빌어서 밝힌다. 또한 이 책 역시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픈 사람에게 또 다른 용기가 되었으면 좋겠다. 우리 20대의 전반전은 세상이 얼마나 가혹한지 배워가는 시기였지만, 후반전은 함께 살아가기 위해 노력하는 세상이 돼야 한다. 전반전에서 겪은 모순과 아픔은 후반전을 준비하는 데 가장 큰 힘이 될 것이다
- 여기까지, 내가 직접 쓴《이십대전반전》머리말
글쓰기의 괴로움, 하지만
2010년 1월. 《이십대 전반전》서문을 최종적으로 마무리했다. 글에 나와 있는 대로, 작년 한 해 이미 졸업한 상태에서 학내 언론 활동을 하다가 엉뚱하게 책까지 만들게 됐다. 덕분에 상반기까지만 동아리 일을 하고 하반기부터는 취업준비에만 매진한다는 계획이 쫙 뒤틀려서 지금까지 수습이 잘 안 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이 책을 보니 마음이 복잡해진다. 예전에 《88만원세대》를 보면서 들었던 삐딱한 감정. “토플책 덮으라니? 취업준비생들은 토익을 보는데. 이런 리얼리티 없는 글을 봤나!” 그 때의 욱하는 감정이 살아나서, 책 작업에 참여하게 되었는데 글쎄.
취업준비란 어찌됐건 기성세대의 틀로 진입하려고 노력하는 일이다. 그러한 상태에서 기성사회를 비판하는 글을 쓰려니 영혼이 완전히 분열하는 느낌이었다. 취업준비를 1년 미룬 것보다 다를 힘들게 한 건 바로 이 점이다. 그러한 분열의 모습이, 오늘날 20대의 모습이라며 교육저널 친구들이 격려해주지 않았다면 나는 끝까지 내 원고를 못 썼을 터. 하지만 통과는 별개의 일. 동료들에게 가차 없는 비판을 당해 40장이나 되는 내 원고를 3번 갈아엎기도 했다. 이도저도 엉망이 되는 것 같았던 6개월. 절반은 후회했고 절반은 괴로워했다.
그런데 반전도 있었다. 머리말 쓰기, 제목짓기, 부제정하기, 홍보문구 뽑기, 보도자료 쓰기 등 실용적 글쓰기에서 나는 강세를 보였다. 스스로에게 전혀 모르던 가능성이다.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라도 시장에서 붙어 이겨야 쓸모가 있다. 취업준비하면서 나름대로 시장의 룰과 이에 대응하는 전략을 파악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지금껏 내가 한 일이 쓸모가 없는 건 아니란 생각이 들었다. 괴물도 낙오자도 되지 않기 위해 불안해하는 것이 아니라, 낙오자를 감싸고 괴물을 물리칠 실질적 전략을 익혀나가는 것. 지금 해야 할 일들이다.
그러나 무엇보다도 이 책이 나와서 감사한 건, 친구들의 혼을 짜내는 목소리를 드디어 사회에 전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사회라는 게 뭔지 알기도 전부터 경제는 항상 어려웠고 세상은 언제나 살기 힘든 곳이었다. 1998년에 초등학교 6학년들은 수학여행을 가지 못했다. 수요와 공급이 뭔지조차 몰랐지만 IMF라는 용어를 지겹도록 듣게 되었다. 굳이 뉴스를 보지 않아도 내가 사는 나라의 모든 사람들이 불안에 떨고 있다는 것은 충분히 느낄 수 있었다. 지하철 좌석의 대부분을 중년 아저씨들이 차지하고 있었고, 그 아저씨들은 하루 온종일 지하철을 탔다.
그런 분위기 속에서, 멋진 사람이 되고 싶다는 발랄한 꿈보다 적어도 최악의 상황으로 치닫지는 않아야 한다는 불안감을 더 먼저 마주했다. 무엇을 선택하든 절망적인 결과가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느끼면서 십대를 보냈다. 그렇게 불안해하지 않아도 된다고 토닥거려주는 사람을 만나기는 힘들었다. 이십대가 처음으로 목격한 사회는 누군가는 낙오되어야만 하는 고통스럽고 목마른 곳이었다.
(17-8쪽 〈왕따가 되어주마〉)
명절마다 시골에 갈 때면 어르신들 옛날이야기 속에 개똥이, 범석이 형은 어떻게 됐노, 그 놈들 베트남 가서 죽었잖아, 그 땐 돈 받고 팔려간 마을 청년들이 마을마다 몇씩 꼭 있었쟤, 그런 이야기를 한다. 나라를 위해 지원했단 얘긴 안하고 돈을 참 많이 줬었단 얘기만 한다. 친척들 가운데 한 분은 자기 아들을 이라크에 파병 보낸 이야기를 한다. 1년만 거서 꼬박 일하면 영국에 어학연수 갈 돈이 나온다 하는데 안 보낼 재간이 있나, 지가 벌어 가는 게 아니면 어학연수는 도저히 못 보내줄 집안 형편인데, 한다. 이라크에서 총을 든 대가로 영국에서 어학연수를 하는 방식으로 우리는 국제화 되고 세계화 되고 있구나, 그런 생각이 문득 들었다.
(175-6쪽 〈인도를 여행하는 배낭여행객을 위한 국제정치론〉)
돌이켜보면 그 공부(특목고 입시)는 내 진짜 꿈이랑은 아무런 관계가 없었다. 애초에 내 꿈이 무엇인지 생각할 겨를도 없었고, 꿈을 이룬다는 구실이 당시의 내 고통을 덜어주는 것 같았기 때문에 그렇게 합리화한 것 뿐 이었다. 나는 지금도 수학문제를 잘 못 풀고 머리도 그리 좋지 않다. 지금도 방학 내내 벽에 등을 붙이지 않을 정도의 오기 있는 행동은 못한다. 그러나 지금은 개의치 않는다. 그 오기와 깡이 고시를 칠 때를 제외하고는 절실히 요구되는 곳이 거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또한 막상 대학원의 문턱 앞에 서보니, 영재의 스마트한 재능보다는 박사과정에 6년을 바칠 결심을 할 수 있는 열정과 헌신이 내게 있는지를 더 크게 고민하게 된다.
(116쪽 〈나의 특목고 입시 실패기〉)
등록금, 집세, 취업문제는 물론 정치 및 국적에 대한 고민까지. 우리가 겪은 IMF, 월드컵, 선거, 촛불집회. 기억 속에 사라지기 전에, 어른의 경험으로 또 다시 덧대어지기 전에 온전히 기록하고 싶었다는 작은 바람은 이뤄졌다. 희망도 절망도 쉽게 말하지 않는 책이지만, 공감할 수 있는 분노만큼은 함께 만들어나가고 싶다.
덧
* 이벤트를 하나 하려고 합니다.
비밀방명록으로 주소와 연락처 적어주시면 선착순으로 세 분에게 책을 보내드립니다. (공동저자라 저자 1인당 떨어지는 책이 많지 않아요 ㅠ.ㅠ) 우편번호 꼭 써 주세요.
역동반 사람들과 동양사학과 사람들은 이벤트 응모 금지입니다. 으히히히.
20대 전반의 글쓰기를 해 나가는 데 많은 힘이 된 이곳의 글쟁이들에게 뒤늦게 고마움을 표합니다.
이벤트 마감됐어요^-^
* 이제 진짜 취업준비만 *-_-*
디시인사이드 피겨갤러리도 끊어야지. 흑흑흑 
책은 요렇게 생겼습니다. 악 부끄!!! ㅠ.ㅠ
# by 은하 | 2010/03/03 15:37 | 생활 | 트랙백 | 핑백(1) | 덧글(6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