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10월 27일
2004년 시끄러운 한국사회를 보며..
분열, 국회, 개혁....내가 생각한 세 키워드.
그리고 원하는 진보
1. 분열
국론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국론, 결국 國이란 무엇인가? 論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라라는 커다란 실체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일진대, 그 개개인의 국민들은 모두 다른 존재다. 소득, 성, 사는 지역, 학력, 관심사, 지금의 필요, 살아온 경험, 각자가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고 사회에는 천갈래 만갈래 의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나마 대중매체나 정당들의 활동으로 3~4가지로 압축되는 게 아닐까.
분열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분열했어야 할 것도 너무 억눌러-억눌린 통합에 익숙하여 분열이 두렵다. 특히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는 잘못된 국사교육덕분에 분열->우왕좌왕->외세(북한 포함..아니 주로 북한)의 침입->망함의 불운의 생각의 고리들이 재현되겠지만, 그것은 실체적 공포는 아니다. 세칭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그야말로 의견분열의 왕국들 아닌가.
분열은 분열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미 분리독립운동 일어났을거다. 일단 같이 살기로 합의한 사람들끼리 의견차이를 보이는 것이고 자신의 의견이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논리를 갈고 닦는다. 그 과정에 주장의 기반(누구를 무엇을 위해? 왜?)은 명확해지고 더 넓은 공감대를 쌓아서 선택받을 수 있다.
사실 분열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열 그 자체인 사람들도 물론있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며 대한민국은 데모공화국이라고 화를 내시는 어떤 할아버지가 그렇듯이, 경제개발이란 한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마친 세대의 눈에는 지금의 모습이 망국의 징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열된 의견들 중 하나가 선택당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자들도 분명 있다. 주로 기득권층이라고 불리지만- 도저히 의견합의에 수긍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부류임에 해당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분열에서 토론해서 이기고 지기 위해 의견이 갈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회적 합의의 결정을 결코 못 따른다. 자신의 의견에 통합되는 단 하나의 통합만 원한다. 그것이 무슨 진정한 통합인가?
분열...두렵지 않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만 두렵지 않은 일임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분열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분열된 의견중 생산적 통합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결정난 것이 있다면 따르는 것! 이 과정들의 누적 속에 정말로 분열이 두렵지 않음을 만인이 알게 돌 거다.
2. 국회
제 17대 제1당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입법안.
-사립학교 개정안, 언론 개혁안, 친일청산법, 국가보안법 폐지.
한나라당은 이 모든 것이 민생과 관련없는 일이며 김정일이 좋아할 만한 일이라고 폐지를 주장하며 최근 헌재의 힘을 의식하야 헌법소원할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 민생과 관련없으면 논의 하지도 말아야 하나?
일반 국민들도 민생이 급한 시기에 이 무슨 헛소리들이냐고 노무현 정부를 지탄하는 소리가 솔직히 높다. 나에게는 매우 우울한 일이다. 결국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았는가. 늘상 말하지만 민생과 상관이 없다와 민생을 침해한다는 다르다. 민생과 관련이 없으면 아예 논의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민생과 상관이 없어서 민생에 대한 논의의 부족함을 느낀다면 민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내 놓아야지 이런 논의를 왜 하느냐리고 묻는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책임회피다.
두번째 의문. 정말 민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나?
국민들의 자녀들 중 60%는 사립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닐 것이고 대학의 경우 그 비율은 훨씬 높다. 사립학교에서 자녀들의 인권, 복지에 관한 일을 민생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본인의 남자친구는 중학교때 학교가 겨울에 난방을 안 틀어주어 엄청난 추위에 덜덜 떨고 지냈다고 한다. 며칠 뒤 이사장이 난방비 5억을 떼먹어 구속되었다고 뉴스에 나왓다고 한다. 세상에 떼 먹을 게 없어서 애들 난방비를 떼 먹은 이사장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친척의 명의로 슬쩍 이사장 이름만 바꾸어서 그 뒤로도 여전히 학교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게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현실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사실 그 동안 쭉 일어나왔던 일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대학교의 골치아픈 문제인 비싼 등록금. 민생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 비싼 등록금은 과연 정당한가? 학생들은 등록금을 어떻게 쓰는 지도 모르고 있고, 사학비리의 이익은 재단에게 그 부담은 일반 가계로 돌아간다. 이래도 민생과 관련한 일이 아닌 것인가?
이것들이 사립학교법 개혁이 꼭 필요한 예다. 인권과 복지, 가계에 대한 탄압, 바른 교육을 위해 그리고 휘청거리는 개별 가계들을 위해 이 일이 추진되어야 하지 말아야 한다면 좌파적 발상이란 소리 말고 제발 제대로 된 근거를 보고 싶다.
흔히 정치가 결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무철학의 정치, 정책에 대한 비전 없이 지역에 기반한 정치, 그리고 정부의 행정편의주의, 정경유착...민생이 잘 돌아가려면 경제가 펴야 함은 상식이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정치가 뒷받침을 잘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은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다.
정치는 정부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국민들의 역할, 올바른 소리를 할 자유...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정치가 된다. 그래서 공정한 여론형성을 위해 언론개혁법을 시행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과거의 잘못을 따지고 (궁극적으로는 비판과 사과를 통해 ) 용서하자는 친일청산법을 시행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데 왜 민생과 관련이 없다고 아우성인가.
나는 민주노동당 지지자이지만 이번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은 비정규직법 개악이 철회되어야하는 것 만큼 엄연히 필요한 것이다. 지금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경제. 민생. 그리고 민생과 무관하지 않은 이번 일들.
국회에서 드디어 제도의 틀에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국회가 정말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다음 선거때 더욱 적극적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에 하나의 진보가 아닐까.
3. 개혁
세계사 처음 배울 때, 아시아 근대와 관련하여 배울 때 꽤나 통탄했었다. 우리나라의 갑신정변,갑오개혁, 중국의 양무,변법자강운동, 오스만 투르크의 탄지마트, 베트남의 동유운동...모두 실패했다. 보수파의 반발 그리고 외세 때문에.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것만은 성공했다.
과연 왜 그랬을까? 역사에 관하여 내가 가진 최초의 의문이었고 덕분에 지금 역사학과에 와 잇다만...;;; 정말 메이지유신에게 있고 나머지 좌절된 개혁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궁금했었다. 급기야 한 때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햇었다. 메이지 유신처럼 반대할 보수파들을 아예 칼로 쓸어버려야 해. 하지만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동사과 선배를 붙잡고 물어보니까 메이지 유신은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대 타협이라고 했다. 사실 개혁적 유신지사들이 칼로 막부 보수세력들을 쓸어버리고 '피묻은 칼과 희생된 목숨 너머의 ' 신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만화 바람의 검심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흑선내항...사람들의 불안...막부에 대한 불신
2. 막부의 굴욕적인 미일수호조약 체결. 국민들의 불만 폭발, 막부는 그 와중에 서양세력에 막부가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근대화 추진
3. 근대화에 불만을 가진 유신지사 대 폭발. 조슈, 사쓰마 등 막부체제에서 소외된 지역들이 존왕양이 왕정복고 선언
4. 바람의 검심 등에 나오는 도바 후사미 전쟁등 몇 번의 충돌, 점점 더 다가오는 외세의 침입, 이 때 존왕양이를 외쳤던 유신지사들 서구의 무서움 실감.
5.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 외세가 끼기 직전에 막부와 유신지사의 극적 대타협. 왕정복고 + ....근대화
사실 유신지사들이 어찌보면 양보한 막부의 공을 가로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이토 하지메 같은 신선조 출신이...(이 봐;;;) 아무튼 유신의 진짜 비결은 보혁간의 대타협이었고 그 기반에는 보수파들도 개혁에 대한 절실한 필요를 느꼈다는 점이 있다.
사실 왕정복고 신정국가 건설인 메이지 유신이 뭐가 진보냐는 의문도 그 선배는 제기했지만...절반의 성공인 유신으로 인해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메이지 유신은 군국주의의 길만을 닦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후대의 선택일뿐 사실 메이지 유신 다음에 다이쇼 데모크러시(메이지 천황 이후 다이쇼 천황 때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엄청난 여론)가 있지 않았던가.
지금의 개혁도 문제도 많고 미완의 개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더 전진할 길은 열어둘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한국 정치는 진보했다. 국회에서 어떤 사안을 가지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사안에 대한 싸움이 허용되지 못했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으며, 사안에 대해 의견 차이가 안 나던 시절보다는 나아졌다. 과연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지만
그래도 난 한국정치에 희망을 갖고 있다. 분열되고 시끄럽고 때로는 분노케 하는 국회 그리고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그리고 원하는 진보
1. 분열
국론분열을 걱정하는 목소리가 높다. 그러나 국론, 결국 國이란 무엇인가? 論을 가지고 있는 것은 나라라는 커다란 실체가 아니라 국민 개개인일진대, 그 개개인의 국민들은 모두 다른 존재다. 소득, 성, 사는 지역, 학력, 관심사, 지금의 필요, 살아온 경험, 각자가 의견은 당연히 다를 수 밖에 없고 사회에는 천갈래 만갈래 의견들이 나오기 마련이다. 그나마 대중매체나 정당들의 활동으로 3~4가지로 압축되는 게 아닐까.
분열은 나쁜 현상이 아니다. 그동안 우리는 분열했어야 할 것도 너무 억눌러-억눌린 통합에 익숙하여 분열이 두렵다. 특히 당파싸움으로 조선이 망했다는 잘못된 국사교육덕분에 분열->우왕좌왕->외세(북한 포함..아니 주로 북한)의 침입->망함의 불운의 생각의 고리들이 재현되겠지만, 그것은 실체적 공포는 아니다. 세칭 선진국이라 불리는 나라들은 그야말로 의견분열의 왕국들 아닌가.
분열은 분열 그 자체로 끝나지 않는다. 물론 그럴 수도 있지만 그러면 이미 분리독립운동 일어났을거다. 일단 같이 살기로 합의한 사람들끼리 의견차이를 보이는 것이고 자신의 의견이 더 많은 지지를 얻기 위해 치열하게 논리를 갈고 닦는다. 그 과정에 주장의 기반(누구를 무엇을 위해? 왜?)은 명확해지고 더 넓은 공감대를 쌓아서 선택받을 수 있다.
사실 분열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정말로 걱정하는 것은 무엇일까? 분열 그 자체인 사람들도 물론있다. 광화문에서 시위하는 사람들을 보며 대한민국은 데모공화국이라고 화를 내시는 어떤 할아버지가 그렇듯이, 경제개발이란 한 목표를 위해 모든 걸 마친 세대의 눈에는 지금의 모습이 망국의 징조로 보일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분열된 의견들 중 하나가 선택당하는 과정에서 선택되지 못할까 두려워하는 자들도 분명 있다. 주로 기득권층이라고 불리지만- 도저히 의견합의에 수긍을 못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이런 부류임에 해당되는 것은 누구나 마찬가지다. 분열에서 토론해서 이기고 지기 위해 의견이 갈리는 것은 아니지 않는가. 사회적 합의의 결정을 결코 못 따른다. 자신의 의견에 통합되는 단 하나의 통합만 원한다. 그것이 무슨 진정한 통합인가?
분열...두렵지 않다. 두려워하는 사람도 있다만 두렵지 않은 일임으로 보여주어야 한다. 그 방법은? 분열을 두려워 하지 않는 것, 그리고 자신의 입장을 위해 최선을 다하는 것, 그리고 분열된 의견중 생산적 통합을 위해 정당한 방법으로 결정난 것이 있다면 따르는 것! 이 과정들의 누적 속에 정말로 분열이 두렵지 않음을 만인이 알게 돌 거다.
2. 국회
제 17대 제1당 열린우리당의 4대 개혁 입법안.
-사립학교 개정안, 언론 개혁안, 친일청산법, 국가보안법 폐지.
한나라당은 이 모든 것이 민생과 관련없는 일이며 김정일이 좋아할 만한 일이라고 폐지를 주장하며 최근 헌재의 힘을 의식하야 헌법소원할 기미까지 보이고 있다.
여기서 첫번째 의문. 민생과 관련없으면 논의 하지도 말아야 하나?
일반 국민들도 민생이 급한 시기에 이 무슨 헛소리들이냐고 노무현 정부를 지탄하는 소리가 솔직히 높다. 나에게는 매우 우울한 일이다. 결국 속임수에 걸려들지 않았는가. 늘상 말하지만 민생과 상관이 없다와 민생을 침해한다는 다르다. 민생과 관련이 없으면 아예 논의를 하지 말아야 하는가? 민생과 상관이 없어서 민생에 대한 논의의 부족함을 느낀다면 민생에 대한 새로운 대안을 내 놓아야지 이런 논의를 왜 하느냐리고 묻는다면 국회의원으로서 책임회피다.
두번째 의문. 정말 민생과는 아무 상관이 없나?
국민들의 자녀들 중 60%는 사립학교 중고등학교를 다닐 것이고 대학의 경우 그 비율은 훨씬 높다. 사립학교에서 자녀들의 인권, 복지에 관한 일을 민생이 아니라고 볼 수 없다. 본인의 남자친구는 중학교때 학교가 겨울에 난방을 안 틀어주어 엄청난 추위에 덜덜 떨고 지냈다고 한다. 며칠 뒤 이사장이 난방비 5억을 떼먹어 구속되었다고 뉴스에 나왓다고 한다. 세상에 떼 먹을 게 없어서 애들 난방비를 떼 먹은 이사장은 보석금을 내고 풀려난 뒤 친척의 명의로 슬쩍 이사장 이름만 바꾸어서 그 뒤로도 여전히 학교를 지배했다고 한다.
이게 대한민국 사립학교의 현실이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언제든지 일어날 가능성이 있고, 사실 그 동안 쭉 일어나왔던 일이기도 하다.
거의 모든 대학교의 골치아픈 문제인 비싼 등록금. 민생을 가장 어렵게 하는 요인 중 하나다. 이 비싼 등록금은 과연 정당한가? 학생들은 등록금을 어떻게 쓰는 지도 모르고 있고, 사학비리의 이익은 재단에게 그 부담은 일반 가계로 돌아간다. 이래도 민생과 관련한 일이 아닌 것인가?
이것들이 사립학교법 개혁이 꼭 필요한 예다. 인권과 복지, 가계에 대한 탄압, 바른 교육을 위해 그리고 휘청거리는 개별 가계들을 위해 이 일이 추진되어야 하지 말아야 한다면 좌파적 발상이란 소리 말고 제발 제대로 된 근거를 보고 싶다.
흔히 정치가 결제의 발목을 잡는다고 한다. 무철학의 정치, 정책에 대한 비전 없이 지역에 기반한 정치, 그리고 정부의 행정편의주의, 정경유착...민생이 잘 돌아가려면 경제가 펴야 함은 상식이오, 경제가 잘 돌아가려면 정치가 뒷받침을 잘 해야 한다는 것도 많은 사회적 합의를 얻고 있다.
정치는 정부만이 하는 것은 아니다. 민주주의 체제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국민들의 역할, 올바른 소리를 할 자유...이 모든 것이 어우러져 정치가 된다. 그래서 공정한 여론형성을 위해 언론개혁법을 시행하고, 바른 결정을 내릴 바른 역사인식을 위해 과거의 잘못을 따지고 (궁극적으로는 비판과 사과를 통해 ) 용서하자는 친일청산법을 시행하고, 자유로운 사상을 위해 국가보안법을 폐지하겠다는 데 왜 민생과 관련이 없다고 아우성인가.
나는 민주노동당 지지자이지만 이번 열린우리당의 개혁입법은 비정규직법 개악이 철회되어야하는 것 만큼 엄연히 필요한 것이다. 지금 사회에 가장 필요한 일은 무엇일까? 경제. 민생. 그리고 민생과 무관하지 않은 이번 일들.
국회에서 드디어 제도의 틀에서 개혁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고 싶다. 국회가 정말로 이런 것이구나라는 것을 많은 사람들이 실감하고 다음 선거때 더욱 적극적이게 될 것이다. 이것이 한국 정치에 하나의 진보가 아닐까.
3. 개혁
세계사 처음 배울 때, 아시아 근대와 관련하여 배울 때 꽤나 통탄했었다. 우리나라의 갑신정변,갑오개혁, 중국의 양무,변법자강운동, 오스만 투르크의 탄지마트, 베트남의 동유운동...모두 실패했다. 보수파의 반발 그리고 외세 때문에. 그러나 메이지 유신 이것만은 성공했다.
과연 왜 그랬을까? 역사에 관하여 내가 가진 최초의 의문이었고 덕분에 지금 역사학과에 와 잇다만...;;; 정말 메이지유신에게 있고 나머지 좌절된 개혁에 없는 것이 무엇인지는 끊임없이 궁금했었다. 급기야 한 때는 이런 생각을 하기도 햇었다. 메이지 유신처럼 반대할 보수파들을 아예 칼로 쓸어버려야 해. 하지만 이건 민주주의가 아니지 않은가.
그런데 오늘 동사과 선배를 붙잡고 물어보니까 메이지 유신은 개혁파와 보수파 간의 대 타협이라고 했다. 사실 개혁적 유신지사들이 칼로 막부 보수세력들을 쓸어버리고 '피묻은 칼과 희생된 목숨 너머의 ' 신시대를 열었다는 것은 만화 바람의 검심이 만든 이미지일 뿐이다.
메이지 유신의 과정은 다음과 같다.
1. 흑선내항...사람들의 불안...막부에 대한 불신
2. 막부의 굴욕적인 미일수호조약 체결. 국민들의 불만 폭발, 막부는 그 와중에 서양세력에 막부가 대항할 수 없음을 깨닫고 근대화 추진
3. 근대화에 불만을 가진 유신지사 대 폭발. 조슈, 사쓰마 등 막부체제에서 소외된 지역들이 존왕양이 왕정복고 선언
4. 바람의 검심 등에 나오는 도바 후사미 전쟁등 몇 번의 충돌, 점점 더 다가오는 외세의 침입, 이 때 존왕양이를 외쳤던 유신지사들 서구의 무서움 실감.
5. 사카모토 료마의 중재. 외세가 끼기 직전에 막부와 유신지사의 극적 대타협. 왕정복고 + ....근대화
사실 유신지사들이 어찌보면 양보한 막부의 공을 가로챘던 것일 수도 있다. 그러니 사이토 하지메 같은 신선조 출신이...(이 봐;;;) 아무튼 유신의 진짜 비결은 보혁간의 대타협이었고 그 기반에는 보수파들도 개혁에 대한 절실한 필요를 느꼈다는 점이 있다.
사실 왕정복고 신정국가 건설인 메이지 유신이 뭐가 진보냐는 의문도 그 선배는 제기했지만...절반의 성공인 유신으로 인해 일본은 군국주의의 길을 걷기도 했지만...메이지 유신은 군국주의의 길만을 닦은 것은 아니었다. 그것은 후대의 선택일뿐 사실 메이지 유신 다음에 다이쇼 데모크러시(메이지 천황 이후 다이쇼 천황 때 자유주의, 민주주의를 요구하던 엄청난 여론)가 있지 않았던가.
지금의 개혁도 문제도 많고 미완의 개혁이 될 가능성이 매우 높지만, 그래도 더 전진할 길은 열어둘 것이다. 그리고 확실히 한국 정치는 진보했다. 국회에서 어떤 사안을 가지고 싸우고 있지 않은가. 사안에 대한 싸움이 허용되지 못했던 시절보다는 나아졌으며, 사안에 대해 의견 차이가 안 나던 시절보다는 나아졌다. 과연 어떻게 싸울 것인가가 과제로 남았지만
그래도 난 한국정치에 희망을 갖고 있다. 분열되고 시끄럽고 때로는 분노케 하는 국회 그리고 이 사회의 모습을 보며 드는 생각이다.
# by 은하 | 2004/10/27 01:40 | 우리시대 | 트랙백 | 덧글(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