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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꺾이지 않는 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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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스케일 큰 현세주의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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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ubDate>Sun, 23 Nov 2008 17:04:15 GMT</pubDa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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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꺾이지 않는 펜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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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스케일 큰 현세주의자</descriptio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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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참치와 이성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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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금융위기 때문에&nbsp;애써&nbsp;모아 둔&nbsp;금융자산의 가치가 곤두박칠을 쳐, 뜨악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장교 월급을 꼬박꼬박&nbsp;펀드에 붓고 있었던 내 주변의 선배도 그러하다. 이 선배는 반토막 난 펀드에 비명을&nbsp;지르면서도 "괜찮아, 난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는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종국적 승리'라는&nbsp;패러디가 웃겨서 웃는다. 우리가 웃는 게 웃는 건 아니지만.<br><br>자본주의가 겪어 온 역사적 변화 과정은 자본주의 자체의 자기조절능력이 꽤 만만한 것임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nbsp;그리하여 당분간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들어선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이&nbsp;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자본주의의&nbsp;변화에 기대를 거는 쪽이 빠르리라. 헌데,&nbsp;나는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br><br>자본주의는 생태적 위기로 결국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끝까지 살아남아, 인류사와 함께 순장당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치고 있다. 그렇다면 나름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는 승리이리라. 확실한 건 환경문제는 근본적 삶의 양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기술적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nbsp;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br><br>환경문제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인간 소비의 결과, 자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폐기물이 나온다는 데 있다.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온실기체도 그러한 폐기물의 일종이다. 결국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는 폐기물을 "자연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배출하여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헌데 그 어떠한 친환경 연료라도 폐기물 자체를 0으로 할 수는 없으며, 지금 지구의 방대한 인구는 1인당 아주 약간의 폐기물을 배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총량을 굉장한 수치로 만들어버린다. <br><br>대대적이고 혁신적인 폐기물의 감축이 필요하다. 폐기물의 감축은 곧 소비의 감축이다. (인구의 감축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recession(경기침체)이라 부른다. 더 나아가면 depression(불황)도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받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열쇠는 친환경 에너지나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생계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nbsp;토대와 이를 뒷받침할 만한&nbsp;정치적 시스템을&nbsp;창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nbsp;즉 recession을&nbsp; recession이라 부르지 않는 혁신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결국 가출한 홍길동 수준의 혼란은 겪지 않을까 예상된다.<br><br>핵심은 인간의 이성이다. 자본주의건 이와 결별한 인류의 미래이건 지속가능성이란&nbsp;결국 인간의 이성에 달렸다. 관성적으로 유지되어 온 현재의 소비수준을 커다란 외부적 충격 및&nbsp;그로 인한 갈등을 최대한 완화시키면서 감축시키는 방안이란, 결국 이성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데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인 이유는 바로 이 점에 대한 불신 탓이다. 결코 나는 이성을 불신하지는 않는다. 이성이 관성과 감각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연유하는 불신인 것이다. 최근 나의 이러한 불신을 유지시킬 것인지를 가늠할 만한 시험대가 떠오르고 있다. <br><br><a href="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0811181749285&amp;code=100100">한국 참치 어획량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경향)</a><br><br>생뚱맞게 웬 참치? 아니다. 참치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nbsp;분명한 리트머스 시험지라 생각한다. 혼자서 밥 해먹기 귀찮을 때, 자취생들의&nbsp;대표적인 애용 아이템 '참치캔'을 따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도대체 참치는 얼마나 잡아대길래,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먹어댈 수 있단 말인가. 바다에 참치가 그렇게나 풍부한가.&nbsp;당연히 그럴&nbsp;리는 없고, 그저 인간이 열심히 잡아댄 탓이다. 그리고 좋은 시절이 얼마 안 있어 끝날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오고 있다.<br><br>온난화와 해양오염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는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고래같이 꼭 안 먹어도 되는 동물들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하다. 그린피스가 일본 포경선의 남극 불법 조업을 극렬히 반대하고, 실제 조업행동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일본&nbsp;측은 꿋꿋하다. 오히려 꽁치가 아니라 사치품인 고래이기 때문에, 더욱 꿋꿋한지도 모르겠으니, 이런 게 인간의 이성이다.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세상, 내 생에 참치를 실컷 먹고, 후손들은 먹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 쪽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일 수 있으니, 어찌 비관주의자가 안 될 수 있겠나. <br><br>하지만 이 참치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류의 미래에 한 가닥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간은 미래와 후손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여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를 희망이라 부르자. 허나 희망이 나타날 때 까지는, 당분간 이성으로서 비관하고 의지로서 낙관하는 날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만 같다. 대공황이 인류 이성의 능력에 낙관적 신호를 보여주었다면, 참치는 과연 어떤 신호를 보내줄 지 궁금하다.</p><br /><br /><span style="COLOR: #666666">만약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이렇게 미래를 위해 극히 제한된 참치만을 잡아야만 한다면, 그 참치는 기왕이면 고급 일식집의 참치회가 이니라, 자취생들을 위한 '참치캔'으로 쓰여질 수 있는 체제라고 답하고 싶다. 물론 경험적으로 매우 비관적 전망이다. <br><br>비유를 하기 위해 참치캔을 예로 들었지만, 참치캔은 고급 횟감을 만들고 남은 찌끄래기로 만든다고 들었다. 사실 참치 어획량을 대폭 줄인다면, 타격받는 곳은 2만~4만원대의 중저가 참치횟집이다. 정작 참치회는 호텔에서 한 50만원 주고&nbsp;먹을 수 밖에 없는 초고급 상품이 될 가능성이 크다. 몇 천원 짜리 참치캔과, 50만원짜리 참치회 사이에서, 그 동안 참치회를 적당히 즐길 수 있었던 '중산층들의 분노와 박탈감'이 이 참치 문제 해결의 열쇠이다. 민주주의가 무엇이 되어야 하느냐고 다시 한 번 묻는다면, 이들을 설득하고 합의를 이끌어내는 힘이 되어야 할 것이다.<br></span><br><span style="COLOR: #666666">지금의 민주주의가 무엇이냐고 묻는다면, 바로 이 중산층들을 위해 여전히 2~4만원대 참치회를 제공하는 시스템을 뒷받침하는 체제라고 말하고 싶다.</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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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category>
		<pubDate>Sat, 22 Nov 2008 05:14:24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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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멈출 수 없는 본능, 그것은 바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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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요즘 좀 책을 많이 읽는다.<br>한동안 안 하던 블로깅도 다시 한다.<br>심지어 친구들과도 줄줄이 약속 투성이다.<br><br>아마도 이건<br><br><br><br>12월 7일 JLPT 시험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br><br>딴짓본능. 아아아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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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Fri, 21 Nov 2008 15:30:44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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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운명의 책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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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description>
			<![CDATA[ 
  <span style="COLOR: #000000">수학자 J는 항상 나에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MSN 창을 끄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까닭은,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J가 얼마나 수학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은 느낌만으로도 좋다. 다른 사람들도 그 순수함에 물들게(?) 만들 거 같은 기분을 준달까. 아, 물론&nbsp;J의 일상적 생활과는 별 개의 이야기.<br><br>그 날도 J는 수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중 3때 만난 그를 수학으로 이끈 '운명의 책'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한 J는 나에게 되물어본다. "은하씨도 이런 운명의 책이 있어요?" 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불현듯 나도 궁금해진다. J만큼이나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을 운명의 책. 나에게도 있었나? <br><br>있다. 때로는 손에 잡자마자 번쩍 하고 영혼을 때리던 책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번 읽은 끝에 시나브로 마음 속에 무언가 자리잡게끔 만든 것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책과 조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대화를 재생해본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응?)&nbsp;자꾸자꾸 거슬러올라다보니 나의 원점이 거기 있었다. 몇 권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span><br><br><br /><br /><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span style="COLOR: #003300">운명의 책 영예의 1위! : &lt;세계사신문&gt;/ 사계절 (1999년)<br><br></span></strong>J로부터 질문을 받았을 때 가장 먼저 떠오른 책은 사계절 출판사에서 나온 &lt;세계사신문&gt; 시리즈이다. 이전에&nbsp; &lt;역사신문&gt; 시리즈도 재미있게 읽었던 바, &lt;세계사 신문 &gt; 시리즈도 나오자마자 단번에 구입했다. &lt;역사신문&gt;이 완간되었던 때가 내가 초등학교 6학년때. 그리고 &lt;세계사 신문&gt;의 경우는 중학교 2학년 때이다. 한 가지 추억이 더 있다면, 바뀐 출판문화와 대형서점/온라인서점 등에 밀리고 치인 끝에 이미 내가 고등학교 들어갈 무렵에 문제집 가게가 되어버렸던, 학교 앞 조그마한 서점, 이른 바 '동네서점'에서 산 마지막 책이기도 했다.<br><br>&lt;역사/세계사 신문&gt; 시리즈는 참신한 형식에 출간당시부터 워낙 호평이 자자했다. 확실히 놀라운 것은 &lt;세계사 신문&gt; 이 책은 거의 10년이 지나고, 대학생이 되어서 다시 읽어보아도 새롭고 흥미로운 내용들을 계속 발견하게 된다는&nbsp;것이다.<span style="COLOR: #666666"></span>신문 형식인 만큼, 한 번에 꼭 다 읽지 못하고 '놓치는' 기사가 있어서이기도 하지만, 당시는&nbsp;온전히 이해하기 어려웠던 새로운 시도들이 신문 곳곳에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유목세계에 대한 조명, 세계체제론, 서구중심주의와 이에 대한 반동으로 벌어진 막연한 '동양적 판타지' 사이의 길을 찾으려는 노력. 하나같이 깊고 무거운 주제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책은 쉽고 재미있었으니, 저자들이 얼마나 노력을 기울였을지 짐작할 만 하다.<br><br>신문 형식의 역사서가 주는 가장 큰 강점은 생생한 현장감이다. 마치 오늘의 신문을 읽는 것처럼, 과거의 사실이 단순한 사실이 아니라 당대인들의 시대정신의 맥락 속에서 펄떡펄떡 살아서 내게로 왔고, 나는 그 생동감이 좋았다. <span style="COLOR: #cc0000">"모든 역사는 당대에 있어 '오늘의 고민'이었다"</span>. &lt;세계사신문&gt;을&nbsp;통해 본 역사는 그러했다. 자연스레 어느덧 이 시대의 고민들에 눈을 돌리지 않을 수&nbsp;없게 되었고,&nbsp;단순히 옛날 이야기를 좋아하는 것을 넘어서 대학에 가서 역사학을 공부해야겠다는 생각을 한 것도 이 때부터였으니, 가히 운명의 책이라 할 수 있다. 무엇보다도&nbsp;나의 변할 수 없는 원초적 사관을&nbsp;부여해 주었다는 점에서, 진정으로 나라는 인간의 원점이랄까.<br><br>그러고보니 세계사'신문'이라니. 이래저래 운명을 못 비껴가는 책인듯 하다.-.-;;<br><br>* 유사한 종류 <br><br><span style="COLOR: #003300">&lt;먼나라 이웃나라</span>&gt;/ 이원복 (초등학교 4학년)&nbsp;-&nbsp; 나에게 있어 유럽문화 및 역사에 관한 입문서. 나의 복지국가와 혁명을 향한 열망이 생기도록 제대로 불붙여 주셨더랬다. 얄궂게도 이원복 아저씨는 그래놓고 지금은 새파란 만화를 그리시긴 하지만 말이다.<br><br><span style="COLOR: #003300">&lt;거꾸로 읽는 세계사&gt;/</span>유시민 (고등학교 1학년) - 고등학교 1학년 때 읽기에 매우 적절했던 책이었다. 끓는 피로 읽어야 제 맛인 책. 또한 그러하게 만드는 책. 대장정-4.19-베트남 전쟁으로 이어지는 동아시아 근현대사 3부작(?)은 바로 그 열혈감성의 정점을 찍어준다. 지금 보면 낯간지러워서 조용히 웃지만,&nbsp;스피디하게 읽어내리기에는 여전히&nbsp;재미있다. 동아시아 근현대사에 대해 본격적으로 관심을 가지게 된 게 여기에서 출발했다. 생각해보니 김원태&nbsp;선생님 추천도서였네.<br><br><strong><span style="COLOR: #003300">대학와서 읽은 것 중에는? &lt;아리랑&gt; 님 웨일즈/김산 (2008년)</span></strong><br><br>&lt;아리랑&gt;은 고등학교 때 읽었어야 했다. 아니면 최소 대학교 1,2학년. 대학교 5학년이 되어서 읽으니, 여전히 가슴벅차기는 한데, 확실히 청소년기 때 읽었다면, 온 영혼을 사르면서 보았을텐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 온 이후 가장 나에게 영향력을 미친 책이라고 꼽는 까닭은 이 책이&nbsp;내&nbsp;20대&nbsp;한 단락의 마침표였기 때문이다. <br><br>혁명가의 이야기는 어지간해서는 정말 흥미진진하기는 하지만 &lt;아리랑&gt;에는 무용담을 넘어서는 인간에 대한 강한 경외를 품도록 만드는 힘이 있다. 가장 인상깊었던 대목. 제 1차 국공합작이 깨지고, 김산의 중국공산당 동지들은 뿔뿔히 흩어진다. 나중에 구사일생 끝에 다시 만난 동지들은 각자의 탈출 경험담을 들려준다. 그 중 가장 극적인 것이 벙어리 거지 행세로 간신히 살아도망쳐나온 어느 소년의 사연. 그 역시 다른 동지들과 함께 잡혀서 수감되어 사형만을 기다리고 있는데, 다른 수감 동료가 그에게 속삭인다. 자신들과 달리 그 소년의 결박이 느슨하니 얼른 결박을 풀어서 창을 통해 탈출하라는 것이다. 죽음을 문턱에 두고, 혼자 살아 탈출하는 이 소년을 질투할 법도 하건만, 감방의 수형자들은 그렇지 않았다. 진심으로 그의 탈출을 기원하고, 그가 벽을 기어올라 창문을 빠져나갔을 때 자신의 생을 맡기는 것 마냥 진심으로 환호해 주었던 것이다. 그들을 뒤로 하고 눈물의 탈주를 했을 소년을 생각하면, 그 와중에 소년을 응원하던 동지들을 생각하면, 그저 마음이 뭉클해진다. 흔히 인간 본성에 관한 현실주의적 접근은 주로, 인간에 대해 시니컬함 태도를 보이기는 하지만, 가끔 이렇게 극한의 상황에서 극한의 인간미가 나오는 모습들이 이 모든 시니컬함을 뒤엎을 때가 있다.<br><br>2008년 여름, &lt;아리랑&gt;을 읽으면서 새삼 내가 왜 동아시아 근대사에 관심을 기울였는지 다시 확인했다. 폭력이 만연한 시대에, 평화로운 삶을 위해, 비극적 삶을 걸었던 인생들이 영혼을 강렬하게 사로잡았기 때문이었다. 오히려 나는 승자의 찬가가 아니라, 시대의 모순을 온 몸으로 고발하고 떠난 패자들 덕에, 억압과 폭력에&nbsp;대한&nbsp;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기에, 나에게 그들은 결코 패자가 아니었다. 다시 말하면 20세기 동아시아 역사는 나에게 억압과 폭력에 대한 저항적 감수성의 원천이라고나 할까.<br><br>그래서 시작이 중2때 &lt;세계사 신문&gt;이었다면 마무리는 대학교 5학년때의 &lt;아리랑&gt;이다. 난 이 마침표를 찍고 나서야 다음 단락으로 넘어갈 수 있지 않았나 싶다. 진로에 대한 고민으로 그토록 좋아하던 역사학이 한동안 다소 환멸의 대상이 되었고, 그런 자신에 대한 회의로 영혼을 갉아먹었던 날들을 청산한 마침표다. 대학원에 가지 않아도, 자신의 역사학을 공부했다는 것을 평생 자랑스럽게 여길 수 있다고 생각하게 된 건&nbsp;이 책 덕분일 것이다.<br><br>사실 가장 재미있었던 대목은 연애에 관한 김산과 김충창의 논쟁. 혁명가들도 다 똑같아, 다 똑같아. 상황에 따라, 커플을 갈굴 때 혹은 솔로를 놀릴 때 모두 다양하게 활용할 수 있다. 역시 아는 것이 힘. <br><br>나머지는 운명의 책 까지는 아니지만 영향력을 많이 미쳤던 책들.<br><br><strong>문학 중에는</strong><br></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lt;운명의 딸&gt;/이사벨 아옌데, 권미선 옮김(2003) , <br>&lt;천개의 찬란한 태양&gt;/할레드 호세이니, 왕은철 옮김 (2008)</strong><br><br>뭐니뭐니해도 책은 중고등학교 때 많이 읽어야 한다는 사실을 요즘 새삼 느끼곤 한다. 언제 읽어도 책은 좋기는 하지만, 나이 들어서 읽으면 어쩔 수 없이 자기 고집이란 게 생겨서, 어지간해서는 영혼이 움직이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런 의미에서 무진장 후회하는 일이 하나 있는데, 중고등학교 때 의도적으로 문학을 멀리했다는 점이다. 이유는 감정을 배제한 논리적인 인간이 되고 싶어서. 참 시덥잖은 이유같지만 그 때는 나름 심각했다. 그래서 문학은 안 읽고 역사만 주구장창 읽었더니, 결국 문장력만 증발해 버렸다.-_- 그렇다고 이성적인 인간이냐. 그런것도 아니고, 감정적이긴 감정적인데 그걸 부드럽게, 현명하게 못 풀어내는 인간이 되었다고나 할까. 혹시 나 같은 망상을 하고 있는 청소년들은 얼른 생각 접으시길 흑흑흑.<br><br>그런 청소년기였음에도 시절 가슴에 완전히 박혀들어왔던 문학작품이 있엇으니, 이사벨 아옌데의 &lt;운명의 딸&gt;이다. 칠레의 인디오 혼혈 소녀가 자신의 삶을 찾아, 골드러시 시기 미국으로 떠나고 그 곳에서 온갖 인간군상을 만나면서 모험을 겪고 성장해 나가는 내용으로. 모험소설의 흥미진진함과 성장소설의 깊이를 동시 갖춘 수작이다. 또한&nbsp;여성으로서 삶을 개척해나가는 주인공의 모습 역시,&nbsp;나 또한 한 사람의 여성으로서 진지하게 공명할 수 있는 부문이었다.<br><br>최근 아주 오랫만에 소설책 읽다가 밤을 샜는데, 다름 아닌 아프가니스탄 여성의 삶을 다룬 &lt;천 개의 찬란한 태양&gt;이다. 이 책에 대해서는 나중 따로 서평을 쓰겠지만, 내 인생 최고의 소설이 아닐까 싶다. 그런데 참 사람 취향 변하지 않는다는 걸 새삼 느낀다. 보다 극한적 환경이 자아내는 감동은 &lt;천 개...&gt; 쪽이 다소 더 강렬하다만, 어쨌거나 공통점은 세계와 대면하는 여성의 삶. 그리고 그들은 어쨌거나 열심히 살아갔습니다로 끝나는&nbsp;해피엔딩. 가장 중요한 건 어쨌든 주인공들의 연애가 행복하게 결말이 났다는 거. 그래그래, 바로 연애가 중요해.<br><br>* 초등학생때는<br>&lt;작은아씨들&gt;: 아마 책 좋아하는 여자애들이라면 다 한 번 이상 읽었을 법한 책. 독서소녀들은 또한 자신을 조 마치에 이입시켜, 에이미를 미워하는 경향이 있는데.....나도 그랬다. OTL<br>&lt;빨간머리 앤&gt;: 의외로 여자애들 이야기를 좋아했는데, 그러고보면 문학, 특히 소설이란 역시나 삶의 모델로서의 세계인 것인가.<br>&lt;사랑의 학교&gt;: 공화주의적 애국주의 감성에 심하게 반응했다고 믿고 있다;;;<br><br><strong>학술서: &lt;농민의 도덕경제&gt;/제임스 스콧, 김춘동 옮김&nbsp;(2006)</strong><br><br>관심이 정치사에서 문화사로, 다시 문화사에서 경제사로 옮겨가던 중에 발견한 책. 자본주의 체제에 대한 막연한 찬양 혹은 어쩔 수 없다는 대세론 사이에서 빛나던 주옥같은 책. 극단의 시대 읽기 모임에서도 추천받았다. 꼼꼼한 자료조사를 바탕으로 한 신선한 관점과, 약자들에 대한 애정도 물씬 묻어나서, 학술서적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한다고 마음 속 이상적 모델로 자리잡은 책이다.<br><br>그렇지만 정작 내 마음을 사로잡은 건 이 한 구절. 근데 인용문이었어 -0-<br><br><span style="COLOR: #333399">급진주의의 중요한 사회적 토대는 농민들과 읍내의 영세 장인들이 만들어 왔다. 이러한 사실로 볼 때 혹자는<strong> 인간 자유의 원천</strong>은 마르크스가 본 것처럼 권력을 막 획득하려는 계급의 열망뿐만 아니라 <strong>진보의 물결이 막 굽이치려고 하는 사이에 사멸하고 있는 한 계급의 통곡 속에 어쩌면 더 존재한다는 결론을 내릴지도 모른다.</strong> (Moore, The Social Origins of Dictatiorship and Democracy)</span><br><br><br>* 유사 *<br>&lt;한국노동계급의 형성&gt;/구해근, 신광영 옮김 (2005) : 새로운 사실을 알려준 책이랄까. 한국노동사에 생경했던만큼 인상깊었던 책. 문제는 이 책이나, &lt;농민의 도덕경제&gt;나 모두 E.P. 톰슨의 관념을 빌려서 쓰고 있는데, 정작 톰슨의 책은 안 읽었으니 과연 제대로 이해한 건지는 의문...;;<br><br></span><span style="FONT-FAMILY: '바탕','Batang'"><strong>교양 사회과학서적 : <br>&lt;쾌도난마 한국경제&gt; 장하준-정승일 대담/이종태 엮음 (2005)<br>&lt;아파트 공화국&gt; 발레리 줄레조/길혜연 옮김&nbsp;(2007)<br>&lt;굶주리는 세계&gt; 프란시스 무어 라페/허남혁 옮김&nbsp;(2004)</strong><br><br>이 시대에도 위험한 서적이 있을 수 있다는 희망을 안겨준 장하준의 서적 중 &lt;나쁜 사마리아인들&gt;이 아니라 &lt;쾌도난마 한국경제&gt;를 먼저 올려놓은 까닭은 꽤나 얄팍하다. &lt;나쁜 사마리아인들&gt;은 불온서적 파문이 일어난 후 읽었던 것이고, &lt;쾌도난마 한국경제&gt;는 책이 출간되자마자 관심을 갖고 내가 사 본 책이라는 얄랑한 자존심. 으으 하지만 포기할 수 없어 ㅠㅠ (이 소인배녀석!) 그렇지만 최근 들어 눈여겨 보는 점은, 장하준, 정승일의 지식과 관점도 중요하지만, 사회를 본 이종태의 이슈제기능력! 저널리스트로서의 역할모델로서 염두에 두고 있다.<br><br>&lt;아파트 공화국&gt;은 그야말로 사람냄새 나는 사회과학. 한국의 아파트라는 미시적 현상을 통해서, 한국 사회의 개발독재, 건설자본주의, 도시문화, 통제 등의 현상을 줄줄이 꿰뚫은 책. 한편으로 사회과학을 쓴다면 이렇게 써야 한다는 이상형을 제시했달까. 덕분에 발레리 줄레조의 팬이 되어 이 분이 차기작으로 연구한다는 한국의 '방'(찜질방, 노래방, PC방) 문화도 기대중이다.<br><br>&lt;굶주리는 세계&gt;는 수능 끝나고 대학에 입학하기 전의 애매한 시절 읽었던 책. 농업, 세계화, 환경 문제에 관심을 갖도록 해 준 책이기도 하다. 돌이켜보니 대학다니면서 특히 관심많았던 문제들은 여기에서 시작되었던 듯. 한국의 사례가 아니라서 공감하기 어려운 문제도 있지만,&nbsp;대신에 시야를 확장시켜준 책이다. 한 권을 더 사서 고등학교 도서관에 한 권, 반방 도서관에 한 권 기증했는데, 반방에 기증한 건 행방이 묘연하다. <br><br>생각해보니 환경에 대한 나의 원초적 감수성을 형성한 또 하나의 책은 다름 아닌 아~주 어릴 적 읽었던 &lt;과학앨범&gt;!!! 아니 읽었다고 표현해야 할 지 모르겠다. 거의 말 그대로 '앨범'이라 슥슥 넘기면서 본 사진이 전부. 동물편과 식물편, 그리고 희한하게 광물편을 매우 좋아했었는데(특히 '청설모와 다람쥐'랑 '코끼리'를 매우 좋아했다;;)...자연에 대한&nbsp;무조건적 애정과도 같은 감성이 심어졌달까. 자연과 접하기 어려운 도시 아이로서는 간접 경험이나마 좋은 계기였다는 생각도 든다.<br></span><br><br>J가 무심코 던진 한 마디에 참으로 많은 생각을 했다. 허나 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20대 중반으로 들어서려고 하는 무렵, 신산한 감정과 방황들을 정리하는 데 많은 도움이 되었던 일이었다. 그러니 J가 MSN 물귀신질로 나의 숱한 밤들을 나락으로 빠뜨린 것은 눈감아주기로 하자. 물론 농담이고, 매우 깊이 감사한다. J의 막장 폐인 생활과는 별개로.<br><br>때로는 이처럼 무심코 던진 질문이 다른 사람에게 매우 큰 영향을 미치기도 한다. 무언가에 미치는 순수한 열정을 그래서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타인에게 자신의 존재를 돌아볼 수 있도록 하는 질문. 그건 자기 존재에 매우 충실한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게 아닐까. 내가 이어받아 집어던진 이 질문도, 누군가에게는 삶의 고민에 대해 좋은 답이 되었으면 좋겠다.<br><br><span style="FONT-SIZE: 130%; FONT-FAMILY: '바탕','Batang'">당신도 나처럼, 운명의 책이 있나요?</span>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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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발견</category>
		<pubDate>Thu, 20 Nov 2008 06:51:33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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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트라우마 세대, 20대. 겁 먹지마라!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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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a href="http://cynews.cyworld.com/Service/news/ShellView.asp?LinkID=740&amp;articleID=2008112001030463138&amp;sid=641">20대 겁먹지 마라 살면 다 살아져</a>&nbsp;(중앙일보)<br><br><span style="COLOR: #ff6600">◆겁에 질려 있는 이십대=대한민국 이십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들은 “요새 젊은이들은 노회하고 영악하고,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해 보인다”는 데 동의했다. “이십대와 청춘이 최초로 분리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이제 이십대로부터 분리되어 부유(浮遊)하는 청춘을 부유(富裕)한 칠십대가 전유한다.”(김홍중)</span><div class="article"><br><span style="COLOR: #ff6600">김현진 작가는 이십대가 보는 이십대를 말했다. “가방 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좌파 우파에 상관없이 겁에 질려 있다”며 “나보다 시집 잘 가는 애가 있을 거야,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차지할 수 있는 잘난 놈이 있겠지, 이런 식의 겁에 질려 있는데 그건 부모 세대에게 주입받은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진 게 당연하다’는 심리가 있다”고 말하며 “게임의 룰 자체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의 이십대는 게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br><br>◆IMF라는 간접경험, 불안감은 더 커져=이들은 왜 이렇게 겁에 질려있을까. 백 작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IMF 때 집에 대학생이 세 명이었다. 아버지가 안정된 월급을 받는 선생님이었음에도 당시 가정경제가 거의 무너졌다. 잘 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려고만’ 한 것뿐이었는데. 그런 절망을 겪으면서 훨씬 더 현실적으로 계급을 인정하게 됐다.”</span><div class="article"><br><span style="COLOR: #ff6600">김현진 작가는 이십대의 심리를 두고 “가족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IMF 경제위기를 맞은 것”에 비유했다. “맞긴 맞았는데 충격은 이차적으로 온 거다. 자기가 직접 맞은 것이 아니라 대리전을 했기 때문에 이 전투의 경험을 다들 엄청나게 오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br><br>우 교수는 우파와 좌파 모두 이들을 이용하려 했을 뿐 실제로 끌어주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남은 건 결국 대기업과 공무원인데 이젠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br><br>◆청춘, ‘처세’가 아닌 ‘불화’를 꿈꿀 때=『20대, 공부에 미쳐라』 『20대, 미쳐야 살아남는다』 등 20대를 타깃으로 한 자기계발서 열풍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십대는 사실 세상과 어떻게 화해하느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세상과 불화하는 시기다.”(김홍중) “이십대가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자기계발서가 파고들었다.”(우석훈)</span></div><div class="article"><br><span style="COLOR: #ff6600">우 교수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학과 예술을 공부해야 새로운 게 나온다”고 짚으며 “적대적 상호경쟁이라는 관념을 깨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진 작가는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 이라고 말하며 덧붙였다. “공포감을 완화시키는 게 굉장한 숙제다. ‘괜찮아, 안 죽어’ 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 이런 정신 말이다.” <br><br>&lt;임주리 기자&gt;</span></div><br><br></div><div class="article">에세이스트 김현진의 말에 적극&nbsp;동의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이 말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유는 명확하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생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더랬다. 물론 이 자괴감조차 답을 명확히 내려주지 못해서 그냥 철회해 버렸지만. 그런데 김현진이 여기서 아주 정확히 지적해 주었다.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88만원세대'라는 표현이 주는 강렬한 첫 인상. 그것은 공포. 바로 그 점이 싫었다. 비록 이 책이 이전에 아무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던 20대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설명했다는 큰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환기하기 위해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호러블함이 20대의 현실 그 자체이니까, 호러블하게 쓰는 것이 뭐가 어떠냐는 주장도 가능하다. 공포 역시 나름의 충실한 리얼리즘이라고.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그런데 연대는 결코 공포감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공포감은 그야말로 행동의 의지마저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lt;농민의 도덕경제&gt;의 저자 제임스 스콧은 20세기 초 동남아시아 농민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하면서, '농민에게 제1의 도덕은 생존이며,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최대한 위험을 줄이는 극도로 보수적인 생선방식을 선택한다'는 결론을 내었다. 오늘날 공포에 질린 20대와 베트남 소농들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물론 스콧의 논의에 따르면 지극히 보수적 생활방식에도 생존이 보장이 되지 않으면 그 다음 수순은 반란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전통적 농촌공동체가 잔존한 상황에서 일종의 '도덕적 원리'가 개입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동체는 간데없고 각개약진만 강요받는 이 상황에서 공포는 고립된 개인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중요한 것은 20대의 패배감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패배감과 싸워서 이겨내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김현진의 말이 시큰하게 와 닿는다.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span style="COLOR: #fe1100">괜찮아, 안 죽어.</span></div><div class="article"><span style="COLOR: #fe1100">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span></div><div class="article"><span style="COLOR: #fe1100">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span></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언젠가 대화 도중,&nbsp;나는 신혼집을 원룸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말을 꺼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환경과 경험의 영향일 수 있다.&nbsp;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을 시작했고,&nbsp;그 곳에서 10년 동안 잘 살았다. 나에게 단칸방이란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 아니라 나름 추억이 담긴 현실적 공간이다. 물론 기왕이면 좋은 집에서 사는 게 편하고 좋을&nbsp;것이다. 하지만 형편상 단칸방에 살더라도 나름 또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10년도 살았잖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이제 갓 독립한 신혼부부가 돈 없는게 당연하잖아.</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물론 부모님 세대와 달리 제로의 출발점에서 쉽게 상승하지 못하게 된 사회현실의 변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단칸방 생활 자체에 대한 경험없는 막연한 공포와 이를 비루하게 느끼는 감성은, 지난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모독, 누군가의 현재 삶에 대한 폭력이다. 특히나, 어느 순간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가난한 아빠'의 초라함으로 전락시킨, 부자아빠 너 말이다.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그런데 문득 든 생각. 평생 단 한 번도 단칸방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단칸방 생활에 대한 공포가 나보다 훨씬 더 클 거 같다. 그것이야말로 리얼리즘과 동떨어져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한국식 천박한 자본주의. 그러니 바리케이트와 짱돌은 켜녕 토익책 속에 파묻히거나, 아니면 아예 인생을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기 십상이지만. 이 공포도 진짜 리얼리즘으로 봐야 할까? 내 생각에는 거품이 굉장하다. 그것도&nbsp;축 처진 어깨를 더욱&nbsp;짓누르는 무거운 거품이.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한 번도 단칸방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과장된 공포를 비웃지만, 그렇지만 나 역시 본질적으로 다를까 싶다. 내가 느끼는 이 시대에 대한 공포 중 경험적 적합성이 있는 게 얼마나 되냔 말야. 그리고 방탄조끼를 입고 IMF를 경험한 88만원 세대의 공포란 사실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용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스스로는 결코 불안감과 무기력에 찌든 '88만원 세대'가 아니라고 한사코 우겨왔지만, 오늘 이거 읽고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네 그래요. 저 88만원 세대 맞았어요. 잘난척 안할게요. ㅠㅠ 하지만 다음부터는 당당하게 말할게요. 아, 물론 단칸방보다야 아파트가 좋아. 하지만 단칸방에서 살아도 안 죽어. 그렇게 살게 된다면 어쩌겠어. 거기서 당당하게 인생을 설계해 나가야지.</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다시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20대의 패배감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nbsp;실제로 이&nbsp;패배감과 맞서 싸워 이겨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포의 거품부터 빼는 게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거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어쨌거나 세상에 맞서야 겠다는 악 혹은 깡.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우리에게 생존의 명령을 내리는 공동체의 힘. </div><div class="article">&nbsp;</div><div class="article">문학과 담론에서 새로운 변화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실성이란,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독하게만 파들어가는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태백, 사오정, 청년실업 100만 시대, 88만원 세대. 트라우마 세대. 모두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카피라이팅으로 결집된 막연한 공포는 막연한 희망 만큼이나 해롭다. 그리고 인간이 생각보다 끈질기다는 또 다른 진실도 있지 않는가. 괜찮아, 안 죽는다니까.&nbsp;그쵸? 의외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거, 얘기해줘서 진짜 고마워. 현진언니.&nbsp;</div>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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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우리시대</category>
		<pubDate>Thu, 20 Nov 2008 02:57:49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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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내가 하고 싶은 거짓말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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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span style="COLOR: #6e0017">너 꼭 기자 해야겠어? 니가 아직 사회를 한참 몰라서 그렇지 공무원이 최고야. 서울대까지 나와서 쪼들리며 살래?</span></p><p>&nbsp;어제 저녁에 한겨레 문화센터 기자 아카데미에 등록할 80만원 중 30만원만 달라고 했다가 엄마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미 익숙한 대화 패턴에 서운하다기보다는 강좌에 등록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먼저 앞선다.</p><p>&nbsp;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우리집에 정말로 현금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nbsp;하다. 얼마 전에도 할머니 생신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나갔다. 그렇지만 만약에 내가 행시준비를 위해 학원비 80만원을 달라고 했으면, 빚 내어서라도 흔쾌히 내어주실 걸 알기에 그 부분만은 조금 서럽다.</p><p>&nbsp;기왕 이번 학기 자체가 거짓인 바에, 고시학원 등록한다고 해서 일단 돈이라도 타 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이내 고쳐먹었다. 말은 저래도 어차피 주실 터인데, 그 때의&nbsp;괴로움은 또&nbsp;어찌 견딜 것인가. 역시나 내일 중으로 계좌이체 해 주신댄다. </p><p>&nbsp;기왕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그토록 고시에 목매는 까닭은 그들의 세계관에 격조높고 행복한 삶을 살 방도로서'5급 이상의 공무원과 교사' 외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nbsp;나름 딸더러 품위있게 살라는 절실한 외침이다. </p><p>&nbsp;나는 그걸 깨 보여주고 싶다. 좁은 세계관을 지녔다고 해서&nbsp;도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서운함에, 질투에, 강박증에. 그러니 다른 종류의 품위있고 행복한 삶도 존재할 수 있음을 꼭 이해시켜야만 한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이해는&nbsp;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서가&nbsp;아니라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실존적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p><p>&nbsp;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감내해야만 한다. 이상과 맞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무던히도 방황할 것이고, 육체적 피로와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스러워도 할 테고, 때로는 후회조차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집에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 행여나 '그래서 고시 보라할 때 보지 그랬냐'라는 회한서린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들게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의연하고 강하게, 후회없는 삶을 살고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정신이 아찔해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더 해야 하나.</p><p>&nbsp;하지만 나는 믿는다. </p><p>강한 척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로 강한 것이다.<br><br></p><p>&nbsp;</p><p><span style="COLOR: #fefefe">그러나 친구들 앞에서는 오히려 거짓말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span></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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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Tue, 28 Oct 2008 16:13:24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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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모든 건 때가 있는 법이지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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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취직만큼은 MB 취임 이전에 했어야&nbsp;했어 하는&nbsp;불안감이 엄습해온다.<br>이건 뭐 하루하루 헤드라인이 호러야.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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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각</category>
		<pubDate>Fri, 24 Oct 2008 17:07:23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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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학문을 업으로 택하고자 하는 그대에게.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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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p>&nbsp;또 다시 대학원 원서접수 시즌이 왔다. 일반 기업 공채와 달리 6개월에 한 번씩 있기 때문에 자주 돌아온다는 느낌을 받지만, 그 만큼 사람 마음도 자주 흔들어놓는 법. 게다가 그냥 상위교육과정으로의 진입이라고 생각하면 사실 여태까지 해오던 것 중에 그나마 유일하게 잘 했던 거라 마음이 가벼워지려 하는데, 누구 말마따나 종잇장의 '석사과정'이란 단어는 왜 이리 큰 무게감을 주는지.</p><p>대학을 다니면서 진지하게 생각해본 대학원 원서 접수 기간이 3번&nbsp;지나갔지. 그 중 2번은 주저주저하다 끝내&nbsp;쓰지 않았고 한 번은 아예 다른 곳을 썼다. 막다른 골목에서 탈출하자는 심리였다만 덜컥 붙어버렸고, 그랬기에 더 많은 고민을 하다 엎어져 버렸다. 그러느라 대학원 원서쓰게되기까지의 모든 고민을 겪어봤다는 게 위안이랄까.</p><p>&nbsp;4번째 접수 기간은 그냥 그럭저럭 편안하게 지나가고 있다. 대학원에 관련한 모든 고민과 방황&nbsp;끝에, 이제 대학원을 안 쓰는 심리까지도 알 수 있게 되었으니, 관악 구렁이 만세! 갈망하는 자는 구원받는다는 &lt;파우스트&gt;의 한 대목에도 만세!</p><p>근데 구원은 결국 자기가 하는 거더란 말이지. 답사가서 자문해 보았어. 이런저런 핑계와 구실들을 다 제껴놓고 말이야. 우리 집이 어마어마하게 부자라서 내가 돈을 벌어야 한다는 부담도 전혀 없고, 나는 또한 어떤 일이든 잘 해낼 수 있는 재능이 있어. 운명의 신인지 여신인지 확실히 그 분은 나의 편이야. 이 보다 더 좋은 조건이 어디있어? 자 그래도 너는 공부를 계속 할래?</p><p>나의 답은 '아니다'였어. 정작 그런 상황이 온다면 말이야, 물론 평생 공부를 하는 삶이란 멋있기야 하지만 나는 답답해서 못 견딜 거 같단 말이지. 차라리 거리로 나갈래. 하늘이 언제나 나의 펀이라면 그 놈과 손을 맞잡고 혁명을 할 거야. 물론 현실은 그렇지 못하니까 적절하게 수정이 가해져야 하겠지. 하지만 이제 확실해 진 건 내가 평생을 걸고 이루고 싶은 나의 진짜 꿈은 학문이 아니란 거야.</p><p>&nbsp;스케일 큰 현세주의자. 아마 나를 표현하는 말 중 가장 적당한 말일거야. 나는 당면한 현실적 과제를 해결하는데 가장 관심사가 쏠려있는 현세주의자라고.&nbsp;다만 이 세상 고민 저 혼자 다 짊어진 듯&nbsp;스케일이&nbsp;광활한 건 아마 지금 사는&nbsp;나의 삶이 '과거와 미래 사이 그 어느 지점'에 서 있다는 '역사의식' 때문이겠지. </p><p>5년 동안 학부에서 지지고 볶았던 역사가 나에게 원하는 것은 바로 이 진실이지, 역사적 지식 그 자체를 더 생산해내라는 건 아니었어. 그런데 또 모르지. 나 말고 영혼이 맞는 다른 녀석에게는 그것을 또 원할 거 아니겠어. 어떤 존재든 이 세상에 꼭 필요한 것들이니 말야.</p><p>&nbsp;자, 이제 모든 조건은 클리어야. 그 동안 나를 가장 미치게 했던 건, 그토록 오래 지녀왔던 나의 소망을 외부의 힘(가정형편, 부모님과의 갈등, 나랑 잘 안 맞는 학풍 등)&nbsp;&nbsp;혹은 어쩔 수 없는 나의 한계 때문에 포기해야한다는 억울함과 무력감에서였지. 그런데 말야, 그거 그냥 착각이더라구. 결국 선택하는 건 자기 자신이야. 이런 저런 어려움이나 핑곗거리가 있어도 할 사람은 그냥 하게 되어있어. 그러니까 중요한 건 어쨌거나 선택했다는 행위 그 자체야. </p><p>&nbsp; 애드거 스노 같은 종군(?)기자를 동경했더랬지. 허나 어리버리한 내가 했다가는 죽기 딱 좋을 직업 같다고 했더니, 은영언니가 전에 그런 사람들은 자기가 선택한 게 아니라 그냥 삶이 그곳으로 밀어넣은 것이라고 말 했어. 지금 절실하게 동의해. 아니 그들 뿐일까. 모든 사람의 운명은 그냥 삶이 거기다 나를 쳐박아 버렸기에 이루어지는 거 아니겠어. 근데 그 놈의 삶은 자기 안에서 나오더란 말이지.</p><p>&nbsp; 나를 미치게까지는 안 해도 곤혹스럽게 하는 부분은 아직까지 남아있고, 어떤 건 컴플렉스가 아니라 恨이 되어 버려서 평생 안 없어지겠지. 뭐 그래도 다른 운명이 날 간택했으니까 당당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 이게 답사갔다 와서 뭔가 후련해진 이유야.</p><p>&nbsp; 내가 했던 이런저런 고민을 다 거친 끝에, 이미 대학원에 간 사람도 있어. 정말 대단한 사람들이야. 이 모든 고민을 이겨내서 대단한 게 아니라, 공부로부터 그냥 간택받은 그 자체로&nbsp;대단한거야. 다른 운명에게 간택받은 나와 같이&nbsp;말이야.&nbsp;그렇게 모든 운명에 경의를. </p><p>&nbsp; 지금 대학원 원서를 앞에 두고 고민하는 사람도 마찬가지야. 불확실한 미래때문에 고민할 것이 산더미같을테고, 우울하게도 뭐 앞으로도 그럴테지만-_-;; 당신이 공부를 택한게 아니야. 공부가 당신을 택한거고, 대학원이 당신 앞으로 온 거지. 남은 건 선택받은 자의 자부심. 그에 합당한 노력. 그리고 당신의 앞날에 당당하게 치어스☆</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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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Wed, 22 Oct 2008 14:56:17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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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요즘의 글쓰기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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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DATA[ 
  하고 싶은 말은 많다. 요즘 국내외적으로 정말 시절이 뒤숭숭한, 어쩌면 세계사의 분수령이 되는 때일지도 모른다고 하루하루 생각하고 있다. 자신에 대해 느낀 바도 많고 일상에 꽤나 큰 전환점들도 있었다. 뭐 그렇기는 한데,<br><br>글을 쓰기 전에 노트에 쓴다. 친구가 컴퓨터가 고장나 노트에 레포트를 쓰고 학교와서 옮겨 타이핑할 수밖에 없었던 적이 있었다고 하는데, 종이에 펜을 꾹꾹 눌러쓸 때 오히려 보다 깊이 생각하고 글을 쓰게 되었다는 경험담을 꽤 오랫동안 간직하고 있었다. 얼마 전에는 과 도서실에서 78학번 선배의 석사논문 초록을 발견했는데...지극히도 당연한 일이지만...무려 노트 전체에 손으로 썼다!! 주석 하나하나까지 손으로 쓴 이 원고를 보면서 왠지 모를 신선한 충격이 전해져왔다. 그리고, 이렇게 공부하는 사람과 우리는 뭔가 다를거 같다는 위기감도 살짝. 아무튼 이런저런 이유로 노트에다 글쓰기를 결심했다. 사료로써의 온라인 텍스트에 대한 불신도 있지만..^^<br><br>역시나. 일단 다작이 불가능하다. 또한 정제되지 않은 감정을 마음대로 휘갈기고자 하더라도, 글자를 새겨넣는 동안 이미 부끄러움이 확 밀려와서 그만두게 된다. 다 써놓고 보니까, 왠 군더더기가 이리도 많냐. 그리고 최근에야 알게 된 사실인데, 나는 글 속에서 나 자신을 굉장히 과장하는 경향이 있었다!&nbsp;글 자체를 객관화해서 보기보다는 지독한 나르시시즘을 갖고 자화상 그리듯이 쓴다고나 할까. 그게 매력이라는 사람도 있지만, 여러가지 한계에 봉착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nbsp;뭐 이런저런 문제점들을 발견하며 퇴고에 돌입. 한 3번쯤 거치면 노트 4쪽짜리 글이 2쪽으로 깔끔하게 거듭난다. 팔이 매우 아프지만 그럭저럭 만족한다. 그리고 블로그에 옮겨볼까 하는데.<br><br>막상 이걸 블로그에 올려놓을 가치가 있을까? <br><br>이런 의문으로 대체로 그냥 안 쓰고 넘어간다. 노트에다 글을 쓰고 나면 팔이 아파서 만사가 귀찮은 이유도 영향을 미쳤을 거 같기는 하다. 하지만 더 큰 이유는 역시나 자기 글의 가치에 대한 판단이다. 블로그는 기본적으로 타인에게 보이고 소통하는 것을 전제로 삼는데, 이게 굳이 다른 이에게도 보여주어야 할 만한 글일까 하는 의문. 음 그냥 나 혼자 보고 말자. 이러고 노트를 덮는다.<br><br><br>음.<br><br /><br />그나저나 노트에 글을 쓰는 세대와 인터넷에 글을 쓰는 것이 보편화 된 세대의 지식습득방식 및 지식에 대한 태도를 연구해보면 재미있겠다라는 생각이 든다. 누가 연구 좀 해 주세요 *_*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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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Fri, 10 Oct 2008 09:57:00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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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요즘의 아침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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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새벽 5시에 일어나서 EBS 라디오 영어프로그램을 듣는다.</p><p>원래 5시 20분에 하는 죠셉 킴의 TEPS를 듣기 위해서였지만, 그 이전에 하는 ENGLISH BOOK CAFE에 더 푹 빠져버렸다. </p><p>그리고 8시까지 학교에 가서 텝스 특강을 듣는다. e-uls라는 특강전문업체에서 하는 건데, 가격도 저렴하고 (2달 교재비 포함 13만원) 강사도 매우 괜찮다. 월~목 하루 1시간씩 하는 거라 학습 효율도 좋다. 텝스 급하게 준비할 사람에게는 이거 추천.</p><p>그 이후 하루가 시작한다.</p><p>절대로 못할 스케줄이라고 생각했는데, 막상 적응되니까, 그리 어렵지도 않다. 오랫동안 무기력한 생활을 하다가 탈출한 자신을 보며 놀라면서도, 한편으로는 인간이란 습관에 상당히 잘 길들여지는 동물 같다는 생각도 든다. 한 개인이란 결국 그 사람 습관의 총체인걸까.&nbsp;한편으로는 뿌듯한데&nbsp;한편으로는 허무하기도 하다.</p><p>문제는 금요일.</p><p>원래 금요일에 있던 수업이 수요일 오후로 이사오면서 텅 비게 되었다. 이 날은 특강도 안 듣는다. 저녁에 있는 과외 하나. 오늘같은 날은 애가 시험 마지막 날이라 과외도 없기는 하지만.</p><p>시간이 텅 빈다!!</p><p>간만에 살짝 늦잠을 자면서도 적당히 일찍 일어나, 여유있는 하루를 보내면 좋으련만</p><p><strong>자신이 없다.</strong></p><p>...참고로 그 동안 주로 일어나는 시간은&nbsp;11시 반-_-;; 그건&nbsp;야근하고 아빠 돌아올 때의 퇴근시간이기 때문이다. 엄마는&nbsp;이미 3시간 전에 출근하고..;;; 이런 제약도 없는 날이면 오후에 눈을 뜨는 일도 다반사였다. </p><p>게다가 일찍 일어난다고 한들 자동으로 컴퓨터를 켜고, 웹툰이 하나하나씩 뜰 때를 기다리며, 웹의 바다를 들락날락거리는 자신의 모습이 너무나도 잘 그려진다.&nbsp;그러니 꼭&nbsp;집을 떠야해 -_-;;; 나는 이렇게나 의지가 약한 인간이다.</p><p>결국 금요일 오전에 하는 언어교육원 텝스 수업을 넣었다.</p><p>사실 텝스강좌를 이미 듣고 있고 라디오까지 들으니 굳이 이 수업을 수강할 필요는 없다. 다만 금요일 오전에만 하는 강좌를 찾다 보니 이리 되었을 뿐이다. 덕분에 오늘 하루 역시 부지런하게 잘 돌아다녔다. </p><p>부지런하게 자기개발을 게을리 하지 말아야 한다는 현대사회의 강박..을 논하기 전에, 바빠야 할 나이대란 있는 법이다. 아 그리고 지난 1년 동안 심하게 방종하며 살아서 뭔가 타이트한 생활에 난 무척 만족하고 있다. </p><p>하지만 '공백을 두려워하는 나 자신'이라니 낯설다. 살짝은 경계심이 들기도 한다.</p><p>자발적으로 선택했건 아니건간에, 외부적 스케줄에 따라야만 움직이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다만, 한 동안 기본적으로 해야 할 것들을 방기하고 살았기 때문에, 책임감을 키워가는 훈련을 한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래도 언젠가는 이렇게 씁쓸한 텝스 강의를 듣는 대신 시립도서관에 가서 책 한권이라도 여유롭게 읽거나 자전거 타고 동네 한 바퀴라도 돌&nbsp;수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 </p><p>긴(?) 학생생활의 끝무렵, 나는&nbsp;이렇게 보내고 있다. <br><br></p><p>&nbsp;</p>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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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Fri, 10 Oct 2008 09:41:05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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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itle><![CDATA[ 앗 역시 ]]> </tit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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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간만의 운동은 근육통을 유발 ㅡ_ㅡ<br><br>오늘은 살짜쿵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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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category>생활</category>
		<pubDate>Mon, 06 Oct 2008 11:11:55 GMT</pubDate>
		<dc:creator>은하</dc:creato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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