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와 이성

금융위기 때문에 애써 모아 둔 금융자산의 가치가 곤두박칠을 쳐, 뜨악하는 사람들이 한 둘이 아니다. 얼마 안 되는 장교 월급을 꼬박꼬박 펀드에 붓고 있었던 내 주변의 선배도 그러하다. 이 선배는 반토막 난 펀드에 비명을 지르면서도 "괜찮아, 난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는다"며 쓴웃음을 짓는다. 이 말을 들은 사람들은 '종국적 승리'라는 패러디가 웃겨서 웃는다. 우리가 웃는 게 웃는 건 아니지만.

자본주의가 겪어 온 역사적 변화 과정은 자본주의 자체의 자기조절능력이 꽤 만만한 것임은 아님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하여 당분간 자본주의 외에 다른 체제가 들어선다는 것은 쉽사리 상상이 되지는 않는다. 차라리 자본주의의 변화에 기대를 거는 쪽이 빠르리라. 헌데, 나는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를 믿지 않는다. 사회주의자라서가 아니라, 굳이 따지자면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이기 때문일 것이다.

자본주의는 생태적 위기로 결국 종언을 고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인류 역사에서 자본주의가 끝까지 살아남아, 인류사와 함께 순장당할 가능성도 매우 높게 치고 있다. 그렇다면 나름 자본주의의 종국적 승리는 승리이리라. 확실한 건 환경문제는 근본적 삶의 양태 변화를 수반하지 않은 채, 기술적 차원으로만 접근해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점이다.

환경문제를 간단하게 정의하자면, 인간 소비의 결과, 자연 스스로 감당할 수 있는 수준을 넘어서는 폐기물이 나온다는 데 있다. 온난화 문제를 일으키는 온실기체도 그러한 폐기물의 일종이다. 결국 환경문제를 해결하는 핵심 키워드는 폐기물을 "자연이 수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배출하여 균형을 유지할 수 있느냐에 달렸다. 헌데 그 어떠한 친환경 연료라도 폐기물 자체를 0으로 할 수는 없으며, 지금 지구의 방대한 인구는 1인당 아주 약간의 폐기물을 배출한다고 하더라도, 그 총량을 굉장한 수치로 만들어버린다.

대대적이고 혁신적인 폐기물의 감축이 필요하다. 폐기물의 감축은 곧 소비의 감축이다. (인구의 감축도 포함한다.) 그런데 이러한 상황을 경제학에서는 recession(경기침체)이라 부른다. 더 나아가면 depression(불황)도 가능하다. 실제로 많은 이들이 일자리를 잃고 고통을 받을 것이다. 자본주의가 생태적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고 한다면, 그 열쇠는 친환경 에너지나 하이브리드 카를 개발하는 것이 아니라, 바로 이로 인해 일자리를 잃은 사람들의 생계문제를 책임질 수 있는 경제적 토대와 이를 뒷받침할 만한 정치적 시스템을 창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을 것이다. 즉 recession을  recession이라 부르지 않는 혁신적 패러다임의 전환이 필요한데, 그 과정에서 아버지를 아버지라 부를 수 없어 극심한 정체성 혼란을 겪다가 결국 가출한 홍길동 수준의 혼란은 겪지 않을까 예상된다.

핵심은 인간의 이성이다. 자본주의건 이와 결별한 인류의 미래이건 지속가능성이란 결국 인간의 이성에 달렸다. 관성적으로 유지되어 온 현재의 소비수준을 커다란 외부적 충격 및 그로 인한 갈등을 최대한 완화시키면서 감축시키는 방안이란, 결국 이성적으로 소비를 줄이는 데 합의하고 실천해 나가는 수밖에 없다. 내가 비관적 에콜로지스트인 이유는 바로 이 점에 대한 불신 탓이다. 결코 나는 이성을 불신하지는 않는다. 이성이 관성과 감각을 쉽게 이길 수 없다는 데서 연유하는 불신인 것이다. 최근 나의 이러한 불신을 유지시킬 것인지를 가늠할 만한 시험대가 떠오르고 있다.

한국 참치 어획량 절반으로 줄여야 한다 (경향)

생뚱맞게 웬 참치? 아니다. 참치야말로 인류의 미래가 어디까지 지속될 것인지를 확인할 수 있는 가장 분명한 리트머스 시험지라 생각한다. 혼자서 밥 해먹기 귀찮을 때, 자취생들의 대표적인 애용 아이템 '참치캔'을 따면서, 한편으로는 의문에 사로잡힌 적도 있었다. 도대체 참치는 얼마나 잡아대길래, 이렇게 저렴한 가격으로 먹어댈 수 있단 말인가. 바다에 참치가 그렇게나 풍부한가. 당연히 그럴 리는 없고, 그저 인간이 열심히 잡아댄 탓이다. 그리고 좋은 시절이 얼마 안 있어 끝날 것이라는 경고가 들어오고 있다.

온난화와 해양오염으로 인한 어획량 감소는 어제, 오늘 제기된 문제는 아니다. 더욱이 고래같이 꼭 안 먹어도 되는 동물들이 오히려 문제가 심각하다. 그린피스가 일본 포경선의 남극 불법 조업을 극렬히 반대하고, 실제 조업행동을 방해하기도 하지만, 일본 측은 꿋꿋하다. 오히려 꽁치가 아니라 사치품인 고래이기 때문에, 더욱 꿋꿋한지도 모르겠으니, 이런 게 인간의 이성이다. 어차피 한 번 왔다가는 세상, 내 생에 참치를 실컷 먹고, 후손들은 먹거나 말거나 신경쓰지 않는 쪽이 나름의 합리적 판단일 수 있으니, 어찌 비관주의자가 안 될 수 있겠나.

하지만 이 참치 문제를 해결한다면 인류의 미래에 한 가닥 서광이 비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인간은 미래와 후손들의 삶을 위해 스스로의 욕망을 억제하고 자발적으로 소비를 줄여나갈 수 있는 존재라는 증거가 드러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 증거를 희망이라 부르자. 허나 희망이 나타날 때 까지는, 당분간 이성으로서 비관하고 의지로서 낙관하는 날들이 계속되어야 할 것만 같다. 대공황이 인류 이성의 능력에 낙관적 신호를 보여주었다면, 참치는 과연 어떤 신호를 보내줄 지 궁금하다.



덧. 참치와 민주주의

by 은하 | 2008/11/22 14:14 | 생각 | 트랙백(1) | 핑백(1) | 덧글(15)

멈출 수 없는 본능, 그것은 바로

요즘 좀 책을 많이 읽는다.
한동안 안 하던 블로깅도 다시 한다.
심지어 친구들과도 줄줄이 약속 투성이다.

아마도 이건



12월 7일 JLPT 시험을 치기 때문일 것이다.

딴짓본능. 아아아 -_-;;;

by 은하 | 2008/11/22 00:30 | 생활 | 트랙백 | 덧글(13)

운명의 책

수학자 J는 항상 나에게 수학에 관한 이야기를 하곤 했다. 물론 무슨 말인지 알아듣는 것은 거의 없다. 그럼에도 MSN 창을 끄지 않고 그의 이야기를 들어준 까닭은, 한밤중에 잠이 오지 않아서가 아니라, J가 얼마나 수학을 좋아하는지 생생히 전해져 왔기 때문이다. 무언가를 향한 순수한 열정은 느낌만으로도 좋다. 다른 사람들도 그 순수함에 물들게(?) 만들 거 같은 기분을 준달까. 아, 물론 J의 일상적 생활과는 별 개의 이야기.

그 날도 J는 수학에 관해서 얘기했다. 중 3때 만난 그를 수학으로 이끈 '운명의 책'에 대해서였다. 역시나 알 수 없는 이야기를 한참 한 J는 나에게 되물어본다. "은하씨도 이런 운명의 책이 있어요?" 어라? 한 번도 생각해 보지 않았던 문제인데. 불현듯 나도 궁금해진다. J만큼이나 순수한 열정을 불어넣을 운명의 책. 나에게도 있었나?

있다. 때로는 손에 잡자마자 번쩍 하고 영혼을 때리던 책도 있었고, 때로는 여러번 읽은 끝에 시나브로 마음 속에 무언가 자리잡게끔 만든 것도 있었다. 어느 쪽이건, 책과 조우하던 순간부터 지금까지의 대화를 재생해본다. 자신이 태어난 곳으로 거꾸로 강을 거슬러 올라가는 저 힘찬 연어들처럼.(...응?) 자꾸자꾸 거슬러올라다보니 나의 원점이 거기 있었다. 몇 권만 간단히 정리해 보자면.




운명의 책들! 뭘까 *.*

by 은하 | 2008/11/20 15:51 | 발견 | 트랙백 | 덧글(21)

트라우마 세대, 20대. 겁 먹지마라!

20대 겁먹지 마라 살면 다 살아져 (중앙일보)

◆겁에 질려 있는 이십대=대한민국 이십대를 어떻게 정의할 수 있을까. 이들은 “요새 젊은이들은 노회하고 영악하고, 젊음 고유의 패기나 무모함이 부족해 보인다”는 데 동의했다. “이십대와 청춘이 최초로 분리되는 현상이 목격된다. 이제 이십대로부터 분리되어 부유(浮遊)하는 청춘을 부유(富裕)한 칠십대가 전유한다.”(김홍중)

김현진 작가는 이십대가 보는 이십대를 말했다. “가방 끈이나 계급에 상관없이, 좌파 우파에 상관없이 겁에 질려 있다”며 “나보다 시집 잘 가는 애가 있을 거야, 나보다 더 예쁜 여자를 차지할 수 있는 잘난 놈이 있겠지, 이런 식의 겁에 질려 있는데 그건 부모 세대에게 주입받은 욕망”이라고 설명했다. 우 교수는 “‘진 게 당연하다’는 심리가 있다”고 말하며 “게임의 룰 자체에 대해서 물어봐야 하는데, 지금의 이십대는 게임 자체에는 문제가 없고 자신에게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덧붙였다.

◆IMF라는 간접경험, 불안감은 더 커져=이들은 왜 이렇게 겁에 질려있을까. 백 작가는 개인적인 이야기를 꺼내놓았다. “IMF 때 집에 대학생이 세 명이었다. 아버지가 안정된 월급을 받는 선생님이었음에도 당시 가정경제가 거의 무너졌다. 잘 살려고 한 것도 아니고 그냥 ‘살려고만’ 한 것뿐이었는데. 그런 절망을 겪으면서 훨씬 더 현실적으로 계급을 인정하게 됐다.”

김현진 작가는 이십대의 심리를 두고 “가족이라는 방탄조끼를 입고 IMF 경제위기를 맞은 것”에 비유했다. “맞긴 맞았는데 충격은 이차적으로 온 거다. 자기가 직접 맞은 것이 아니라 대리전을 했기 때문에 이 전투의 경험을 다들 엄청나게 오버해서 말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우 교수는 우파와 좌파 모두 이들을 이용하려 했을 뿐 실제로 끌어주지 못했음을 지적했다. 그래서 남은 건 결국 대기업과 공무원인데 이젠 이마저도 쉽지 않다는 것이다.

◆청춘, ‘처세’가 아닌 ‘불화’를 꿈꿀 때=『20대, 공부에 미쳐라』 『20대, 미쳐야 살아남는다』 등 20대를 타깃으로 한 자기계발서 열풍의 문제점도 지적됐다. “이십대는 사실 세상과 어떻게 화해하느냐를 생각하기 이전에 세상과 불화하는 시기다.”(김홍중) “이십대가 꿈꿀 수 있는 공간을 자기계발서가 파고들었다.”(우석훈)

우 교수는 “경제도 중요하지만, 문학과 예술을 공부해야 새로운 게 나온다”고 짚으며 “적대적 상호경쟁이라는 관념을 깨고 ‘연대’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현진 작가는 “우리 이십대가 계속 싸워야 하는 것은 무기력감과 패배감” 이라고 말하며 덧붙였다. “공포감을 완화시키는 게 굉장한 숙제다. ‘괜찮아, 안 죽어’ 라는 생각이 중요하다.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 이런 정신 말이다.”

<임주리 기자>


에세이스트 김현진의 말에 적극 동의한다. '88만원 세대'라는 말을 처음 접했을 때, 이 말에 왠지 모를 거부감이 들었다. 그런데 이유는 명확하게 콕 집어 말하기는 어려웠다. 그래서 내가 서울대생이기에 그런 것일까 하는 자괴감에 빠진 적도 있더랬다. 물론 이 자괴감조차 답을 명확히 내려주지 못해서 그냥 철회해 버렸지만. 그런데 김현진이 여기서 아주 정확히 지적해 주었다.
 
'88만원세대'라는 표현이 주는 강렬한 첫 인상. 그것은 공포. 바로 그 점이 싫었다. 비록 이 책이 이전에 아무도 제대로 지적하지 않았던 20대가 처한 부당한 현실을 설명했다는 큰 의의가 있기는 하지만, 이를 환기하기 위해 '공포를 자극하는 방식'으로 서술했다는 점은 부인하기 어려울 것이다. 물론 호러블함이 20대의 현실 그 자체이니까, 호러블하게 쓰는 것이 뭐가 어떠냐는 주장도 가능하다. 공포 역시 나름의 충실한 리얼리즘이라고.
 
그런데 연대는 결코 공포감으로부터 나올 수 없다. 공포감은 그야말로 행동의 의지마저 무력화시키기 때문에. <농민의 도덕경제>의 저자 제임스 스콧은 20세기 초 동남아시아 농민들의 행동양식을 연구하면서, '농민에게 제1의 도덕은 생존이며, 생존이 위태로운 상황에서는 오히려 최대한 위험을 줄이는 극도로 보수적인 생선방식을 선택한다'는 결론을 내었다. 오늘날 공포에 질린 20대와 베트남 소농들의 상황이 오버랩되어 보인다. 물론 스콧의 논의에 따르면 지극히 보수적 생활방식에도 생존이 보장이 되지 않으면 그 다음 수순은 반란이다. 그러나 이 역시 전통적 농촌공동체가 잔존한 상황에서 일종의 '도덕적 원리'가 개입된 선택이었다. 하지만 공동체는 간데없고 각개약진만 강요받는 이 상황에서 공포는 고립된 개인을 완벽하게 지배할 수 있을 것이다.
 
중요한 것은 20대의 패배감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패배감과 싸워서 이겨내는 일이다. 이 대목에서 김현진의 말이 시큰하게 와 닿는다.
 
괜찮아, 안 죽어.
래미안에 안 살아도 안 죽고, 자이에 안 살아도 괜찮고,
반지하에 살아도 살아져.
 
언젠가 대화 도중, 나는 신혼집을 원룸에서 시작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주변 사람들이 나를 비웃을까 봐 말을 꺼내지 못한 적이 있었다. 어쩌면 환경과 경험의 영향일 수 있다. 별로 의식하지 않았지만 생각해보면 반지하 단칸방에서 생을 시작했고, 그 곳에서 10년 동안 잘 살았다. 나에게 단칸방이란 경험하지 못한 현실이 아니라 나름 추억이 담긴 현실적 공간이다. 물론 기왕이면 좋은 집에서 사는 게 편하고 좋을 것이다. 하지만 형편상 단칸방에 살더라도 나름 또 잘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믿고 있다. 그렇게 10년도 살았잖아. 그리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그렇게 살고 있잖아. 그리고 이제 갓 독립한 신혼부부가 돈 없는게 당연하잖아.
 
물론 부모님 세대와 달리 제로의 출발점에서 쉽게 상승하지 못하게 된 사회현실의 변화를 무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이와 별개로, 단칸방 생활 자체에 대한 경험없는 막연한 공포와 이를 비루하게 느끼는 감성은, 지난날 열심히 살아온 사람들의 과거에 대한 모독, 누군가의 현재 삶에 대한 폭력이다. 특히나, 어느 순간 보통사람들의 일상을 '가난한 아빠'의 초라함으로 전락시킨, 부자아빠 너 말이다.
 
그런데 문득 든 생각. 평생 단 한 번도 단칸방에 살아보지 않은 사람이라면 오히려 단칸방 생활에 대한 공포가 나보다 훨씬 더 클 거 같다. 그것이야말로 리얼리즘과 동떨어져 있다. 경험해 보지 못한 삶에 대한 막연한 공포. 그리고 이를 조장하는 한국식 천박한 자본주의. 그러니 바리케이트와 짱돌은 켜녕 토익책 속에 파묻히거나, 아니면 아예 인생을 포기하거나 둘 중의 하나가 되기 십상이지만. 이 공포도 진짜 리얼리즘으로 봐야 할까? 내 생각에는 거품이 굉장하다. 그것도 축 처진 어깨를 더욱 짓누르는 무거운 거품이.
 
한 번도 단칸방에 살아보지 못한 사람들의 과장된 공포를 비웃지만, 그렇지만 나 역시 본질적으로 다를까 싶다. 내가 느끼는 이 시대에 대한 공포 중 경험적 적합성이 있는 게 얼마나 되냔 말야. 그리고 방탄조끼를 입고 IMF를 경험한 88만원 세대의 공포란 사실 이런 게 아닐까 싶다. 용어에 대한 막연한 거부감으로 스스로는 결코 불안감과 무기력에 찌든 '88만원 세대'가 아니라고 한사코 우겨왔지만, 오늘 이거 읽고 백기투항하고 말았다. 네 그래요. 저 88만원 세대 맞았어요. 잘난척 안할게요. ㅠㅠ 하지만 다음부터는 당당하게 말할게요. 아, 물론 단칸방보다야 아파트가 좋아. 하지만 단칸방에서 살아도 안 죽어. 그렇게 살게 된다면 어쩌겠어. 거기서 당당하게 인생을 설계해 나가야지.
 
다시금 말하지만, 중요한 것은 20대의 패배감을 해석하는 일이 아니라, 실제로 이 패배감과 맞서 싸워 이겨내는 일이다. 이를 위해서는 공포의 거품부터 빼는 게 필요하다. 그런 다음에야 거품에 가려져 보이지 않았던 것을 볼 수 있다. 거창한 건 아니고, 어쨌거나 세상에 맞서야 겠다는 악 혹은 깡. 나와 같은 처지의 사람들. 우리에게 생존의 명령을 내리는 공동체의 힘.
 
문학과 담론에서 새로운 변화의 패러다임이 필요하다고 생각하고 있다. 진실성이란, 이 시대의 아픔과 상처를 독하게만 파들어가는데 있지는 않을 것이다. 이태백, 사오정, 청년실업 100만 시대, 88만원 세대. 트라우마 세대. 모두 일말의 진실을 담고 있지만, 카피라이팅으로 결집된 막연한 공포는 막연한 희망 만큼이나 해롭다. 그리고 인간이 생각보다 끈질기다는 또 다른 진실도 있지 않는가. 괜찮아, 안 죽는다니까. 그쵸? 의외로 아무도 말해주지 않았던거, 얘기해줘서 진짜 고마워. 현진언니. 

by 은하 | 2008/11/20 11:57 | 우리시대 | 트랙백(1) | 핑백(1) | 덧글(30)

내가 하고 싶은 거짓말

너 꼭 기자 해야겠어? 니가 아직 사회를 한참 몰라서 그렇지 공무원이 최고야. 서울대까지 나와서 쪼들리며 살래?

 어제 저녁에 한겨레 문화센터 기자 아카데미에 등록할 80만원 중 30만원만 달라고 했다가 엄마한테 이런 소리를 들었다. 이미 익숙한 대화 패턴에 서운하다기보다는 강좌에 등록하지 못할까봐 걱정이 먼저 앞선다.

 엄마가 저렇게 말씀하시는 건 우리집에 정말로 현금이 별로 없기 때문이기도 하다. 얼마 전에도 할머니 생신 때문에 적지 않은 돈이 나갔다. 그렇지만 만약에 내가 행시준비를 위해 학원비 80만원을 달라고 했으면, 빚 내어서라도 흔쾌히 내어주실 걸 알기에 그 부분만은 조금 서럽다.

 기왕 이번 학기 자체가 거짓인 바에, 고시학원 등록한다고 해서 일단 돈이라도 타 냈어야 했나 하는 생각이 잠시 스쳐갔지만, 이내 고쳐먹었다. 말은 저래도 어차피 주실 터인데, 그 때의 괴로움은 또 어찌 견딜 것인가. 역시나 내일 중으로 계좌이체 해 주신댄다.

 기왕 거짓말을 하려면 큰 거짓말을 하기로 했다. 우리집에서 그토록 고시에 목매는 까닭은 그들의 세계관에 격조높고 행복한 삶을 살 방도로서'5급 이상의 공무원과 교사' 외에는 정말로 아무것도 없기 때문이다. 나름 딸더러 품위있게 살라는 절실한 외침이다.

 나는 그걸 깨 보여주고 싶다. 좁은 세계관을 지녔다고 해서 도덕적인 문제가 되지는 않지만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 서운함에, 질투에, 강박증에. 그러니 다른 종류의 품위있고 행복한 삶도 존재할 수 있음을 꼭 이해시켜야만 한다, 다만 이런 종류의 이해는 언어적 의사소통에 의해서가 아니라 눈 앞에서 펼쳐지는 실존적 삶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다만 그 과정에서 나는 감내해야만 한다. 이상과 맞지 않는 현실 사이에서 무던히도 방황할 것이고, 육체적 피로와 경제적 어려움에 고통스러워도 할 테고, 때로는 후회조차 할 지도 모른다. 그러나 절대로 집에다 드러내서는 안 된다. 행여나 '그래서 고시 보라할 때 보지 그랬냐'라는 회한서린 안타까움이 조금이라도 들게해서는 안 된다. 언제나 의연하고 강하게, 후회없는 삶을 살고있는 것처럼 보여야 한다는 생각에 벌써 정신이 아찔해온다. 나는 도대체 얼마나 많은 거짓말을 더 해야 하나.

 하지만 나는 믿는다.

강한 척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할 수 있다면 그건 진짜로 강한 것이다.

 

그러나 친구들 앞에서는 오히려 거짓말을 못 할지도 모르겠다.

by 은하 | 2008/10/29 01:13 | 생활 | 트랙백(1) | 덧글(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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