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05월 23일
꽃보다 남자 : 이것은 트렌디 드라마가 아니다
신데렐라가 되는 법을 아는가. 여기 아주 간단한 방법이 있다. 우선 재벌 2세를 찾아가라. 부족함 없이 자라난 그의 성격은 틀림없이 안하무인. 일단 다짜고짜 뺨을 철썩 내려친다. 그리고 한 마디 쿨하게 외쳐라. "돈이면 다 되는 줄 알아?". 그렇다면 그는 멍하게 홀린 표정으로 뺨을 어루만지며 이렇게 말할 것이다. "나를 막 대한 여자는 네가 처음이야." 오호라 다 됐다. 그는 이제부터 당신의 노예니까.
시중에 널리 알려진 유머로, 비현실적이고 천편일률적인 신데렐라 드라마의 내용을 꼬집고 있다. 말 그대로 재벌 2세의 뺨을 때리고 그와 연애하는 게 유행인 시대. 그런데 이 패턴의 원조가 누군지 생각해 본 적 있는가. 바로 요코 카미오의 <꽃보다 남자>가 그 주인공이다. <꽃보다 남자>는 93년부터 2004년까지 장장 11년에 걸쳐 인기리에 연재되었다. 그리고 더 놀라운 사실은 지금은 진부하기 짝이 없는 이 스토리가 <꽃남>이 처음 연재될 당시로서는 혁명이었다는 것이다.
꽃보다 남자, 넌 혁명이었어.

기존 순정만화의 전형은 <캔디캔디>였다. 밝고 사랑스러운 주인공과 그를 질투하는 악녀, 그리고 한결같이 주인공에게 사랑을 베푸는 테리우스 타입의 왕자님이 주된 구도를 이뤘다. 그런데 <꽃보다 남자>는 이 모든 상식을 뒤엎어버렸다. 여자 주인공은 밝지만 좌충우돌이며, 남자는 돈만 있을 뿐 '뭐 저런 나쁜 놈이 있을까' 싶은 캐릭터다. 그리고 바로 그 소년이 이 겁없는 소녀와 엮이면서 갱생의 삶을 사는 것이 주된 스토리이다. 그런데 이것이 폭발적인 인기를 누리면서, 지금은 순정만화나 멜로드라마의 전형적 패턴으로 정착했다.
인기의 비결은 역시나 돈 앞에서도 당당한 여주인공의 당찬 모습이 소녀들의 가슴을 쳤기 때문이다. 그러나 뒤집어 보면 이는 그만큼 돈 앞에서 당당하기 어려운 세태를 반영한다. 더욱이 성격도 난폭하고, 예의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보기 어려운 이 재벌 2세가 소녀와 사랑에 빠져야 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의 성격은 사랑으로 고칠 수 있지만, 막대한 재력은 결코 노력으로 이뤄낼 수 없다. 남자주인공을 정말로 매력적이게 만드는 것. 결국은 돈이다. 장안에 화제가 되는 F4의 F는 기실 flower가 아니다. 차라리 fortune에 더 가깝다.
원작 <꽃보다 남자>가 배경으로 하는 사회 현실은 더 씁쓸하다. 90년대 초반은 일본이 장기불황에 빠지면서, 일본식 '종신고용시스템'이 붕괴되고, 신자유주의식 구조조정이 도입된 시기였다. 가난한 여주인공의 아버지가 바로 그렇게 해고된 실직자다. 그리고 한번 가난의 수렁에 빠져들기 시작하면 헤어날 길이 없다. 주인공의 어머니가 딸을 억지로 명문학교에 보내는 것은 사실은 허영이 아니라, 처절한 상승의 몸부림이었던 것이다.
더욱이 '에스컬레이터식 명문학교'는 일본사회 내에서 가장 공고한 계층의 재생산 도구다. 게이오 대학, 학습원 대학 등과 같이 일류사립대에서는 부속 유치원에서부터 대학교까지 한 부지에서 공부하며 자동적 진학이 보장되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이들 사립학교 부속의 초등학교에 입학하기만 하면, 말 그대로 입학하기만 하면 에스컬레이터처럼 신분상승이 보장되는 것이다. 일본에서는 바로 이 명문 초등학교에 입학하기 위해 유치원 때부터 입시경쟁이 거세다. <꽃보다 남자>의 원작자 자신도 "에스컬레이터식 학교를 다닌 사람은 뭔가 우리와 다른 것 같다"는 지인의 말에 착안하여 이 만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말한 바 있다. 요컨대 <꽃보다 남자>는 서민들의 삶은 불안해진 반면, 교육을 통한 계층의 분화는 더욱 공고해진 일본사회의 우울한 현실 없이는 단 한 칸도 그릴 수 없는 만화다.
<꽃남>이 히트칠 수 있는 사회, <꽃남>을 이해할 수 있는 사회는 사실 슬프다
2009년 <꽃보다 남자> 열풍이 한국에도 다시 한 번 상륙한다. 실직당한 아버지는 세탁소를 하는 영세 자영업자로 바뀌었으니, 그야말로 한국 경제구조에 절묘하게 들어맞는다. 에스컬레이터식 명문고는 대기업 소유의 자립형 사립고로 변신한다. 사회적으로 귀족학교를 현실의 일부로서 상상할 수 있는 분위기라는 의미다. 그리고 변하지 않은 것은 주인공들의 성격과 구도뿐. "돈 이면 다 되는 줄 알아!"라던 소녀의 외침은 사실 "돈이면 다 되는 사회"에 살고 있기 때문에 시청자들의 가슴을 울릴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꽃보다 남자>는 "돈이면 다 되는 사회"를 부정하는 듯하면서도, 결국 수용한다. 원작의 여주인공은 재벌학교에서도 서민으로서의 자부심을 잃지 않으며 꿋꿋하게 살아간다. 사실은 그 외의 대안이 없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나약한 개인이 할 수 있는 실존적 선택이란, 개인적으로 당당하게 살아가는 것일 뿐. 하지만 우리네 현실은 <꽃남>의 여주인공처럼 주인공을 든든하게 받쳐주는 Fortune 4 도련님들도 없다. 더 큰 문제는 재벌 2세의 인격은 사랑으로 감화시킬 수 있을지 몰라도, 그들이 지배하는 공고한 계층구조는 지속된다는 것이다. 여전히 일본의 대학부속 고등학교에도, 한국의 신화고에도 부유층 자제들이 계속 입학하여 그들만의 특권층만을 형성하는 것처럼. 그러니 <꽃남>은 단순한 꽃미남 드라마도 아니고, 트렌디 드라마도 아니다. 사탕같은 달콤함에 가볍게 넘어가기 쉽지만, 드라마 <꽃남>에서 명백히 드러나는 이 시대의 우울한 현실과 직시해야 한다.
- <교육저널> 10호에도 실은 글입니다.
# by 은하 | 2009/05/23 03:39 | 글,만화,영상 | 트랙백 | 덧글(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