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10월 06일
운동하다 만난 이웃
저녁을 먹고 운동을 하러 나갔다. 동네 놀이터에 야외 체육 시설이 설치되어 있어 매우 편리하게 이용할 수 있다. 다만 헬스클럽의 러닝머신처럼 TV가 달려있는 것이 아니니 혼자 묵묵히 운동하기에는 심심할 수 있다. 엄마는 mp3 플레이어를 가져가라고 했지만, 그냥 집을 나섰다. 엄마 카드를 긁어서 미키마우스 mp3 플레이어를 사 놓고도 거의 사용을 하지 않는다. 그럴거면 왜 샀느냐는 지극히 타당한 잔소리가 귀를 찔러오지만, 작동을 못 시키고 있는 것이라고 죽어도 말 안 하리라.기계치의 제왕 만세
그러나 기왕 나왔으니 30분은 하고 들어가야 할 텐데 지루함을 참아낼 수 있을까 걱정은 앞선다. 최근 체력이 너무 약해져서 조금이라도 운동을 꼭 하자는 생각이다만, 첫 날부터 무너질수야. 헌데 생각보다 지루하지는 않았다. 기계의 리듬대로 움직이는 러닝머신과 달리 자신의 신체가 리듬을 만들어내는 옥외 기구운동의 경우, 보다 움직임에 집중할 수가 있다. 살갗에 와 닿는 가을바람도, 손톱만한 달을 보는 것도 나름 쏠쏠한 재미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면 그래도 시간이 차기만을 기다리는 운동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한 20분이 지났을 때 처음 보는 할머니가 천천히 다가오신다. 공터에 할머니와 20대 여성인 나와 둘, 그리고 침묵. 눈이 딱 마주치면 일단 싱긋 웃어보이자. 앞으로 몇 십분간은 여기서 함께 운동할 사람 아닌가. 이 때 어색함을 먼저 깨는 쪽은 아무래도 연륜이 있는 할머니시다. "밥도 늦게 먹어 소화도 좀 시키려고...", 나는 받는다. "○○ 사세요? 저도 거기 살아요."
그렇게 대화가 시작되었다. 으레 그 나이대 어른마냥 부모님의 고향과 성씨를 먼저 물어보시고, 나는 일단은 넉살좋게 답한다. 그 쪽도 충청도구만. 나는 충남인데. 일단 어떤 방식이든지 공통점을 먼저 찾는다. 어머나 성씨도 같구먼. 할아버지 돌림자가 '수'라고 하니까 자기 친정아버지도 그렇다고 은근히 반가워하신다. 세대차이라는걸 확연히 느끼지만 또한 우리 할머니에게도 늘 보이던 모습이라 되려 낯설지 않다.
저기 위 놀이터에 중학생 주제에 낯뜨거운(?) 애정행각을 벌이는 커플들이 있다고 하자, 양심을 비우고 열심히 따라 성토한다. 어머, 이런 무개념 커플들. 은행 다니는데 결혼하지 않는 딸이 있다고 하자, 요즘 결혼은 필수만은 아니라고 적당히 젊은 사람들 입장도 대변해준다. 어느 여배우의 안타까운 죽음 이야기도 나왔다. 이 만한 격차를 떠나 공유할 수 있는 추억을 남겨준 대단한 배우가 떠났다는 생각을 새삼 했다. 그럼에도 그녀는 외로웠겠지만. 그 외에도 이런저런. 시계바늘은 무섭게도 빠르게 돌아간다.
재밌으니 매일 나오라는 말씀에 그러려고 노력은 한다고 답했다. 돌아가는 길도 심심하지 않다.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했지만 일정 시간에 운동하는 것도 아니라 다시 만날 기약이 불분명하지만, 뭐 이대로도 좋다. mp3 없이도 심심하지 않게시간을 보낸 것이다. 다음 번에 혹시나 마주할 때의 반가움은 덤, 그렇지 않더라도 누구와도 대화할 수 있었다는 사실은 꽤나 기분이 좋다.
헬스클럽은 말할 것도 없거니와, 공설운동장에 나가보면 수많은 사람들이 귀에 이어폰을 꽂고 일제히 한 방향을 향해 힘차게 달려나간다. 핸드폰과 mp3로 무장한 사람들은 타인이 들어올 틈을 주지 않고, 자신도 타인을 침범하지 않겠다는 뜻을 명백히 보여주며 각자의 세계를 튼튼하게 구축하고 있다. 수많은 사람들이 부대끼고 살아야 하는 도시 사회에서 서로 간의 거리 유지란 건 필수적인 일이지만, 지나치게 심해지면 조금은 답답하다.
일상에서 그 답답함을 가장 많이 느끼는 공간은 엘리베이터이다. 이 좁고 순간적인 공간에서 다른 사람과 함께 있다는 느낌은 영 불편하다. 거울을 보면서 괜스레 머리를 매만진다. 상대방을 최대한 없는 존재처럼 취급해야 한다. 그리고 문이 열리면 서둘러 나오기 바쁘다. 人間이란 사람사이라는 복수적 의미를 담고 있다는데, 이처럼 타인과의 접촉 자체가 부담이 되어버렸다는 사실은 자기 존재에 대한 배반일까. 그나마 여기에 불편함을 느끼는 감수성에 위안을 받아야 하는걸까.
이 공터에 mp3를 꽂고 나왔다면, 역시나 내 옆에 있었던 이 분을 없는 사람 취급해야 할 텐데,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었다. 또한 그 분도 그러지 않아서 다행이다. '대화'란 내가 사람들 사이에 있다는 것을 확인시켜주는 장치인 걸까. 사람이 사람에게 말을 걸어준다는 지극히 단순한 일이 꽤나 기쁘게 다가왔다. 그리고 한참 지나서 생각이 났는데, 이 분은 요즘말로 '타인'이지만, 개념은 남았는데 요즘들어서 어디 적용해서 부르기는 쉽지 않게 되어버린 단어 '이웃' 이었다.
# by | 2008/10/06 01:25 | 생활 | 트랙백 | 덧글(19)



